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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 부드러운 박근혜가 지친 박근혜 살린다

중앙일보 2015.01.21 00:10 종합 31면 지면보기
이하경
논설주간
단정한 원피스를 입은 박근혜가 ‘새마을 노래’를 불렀다.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이 작사·작곡했고, 1970년대를 지배한 화두인 근대화를 상징하는 노래였다. 아버지와 서울대 음대생인 여동생 근영, 중앙고에 다니는 남동생 지만, 사촌형부 김종필·장덕진도 따라 불렀다. 75년 1월 22일 외할머니 이경령 여사의 80회 생일잔치는 그렇게 치러졌다. 이 여사는 다섯 달 전인 74년 8월 15일 재일교포 문세광에게 암살당한 육영수 여사의 어머니이자, 박정희의 장모다.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이공학부 수석으로 졸업하고 파리에서 유학 중이던 박근혜는 학자의 꿈을 접고 귀국해 어머니 대신 퍼스트레이디가 됐다. 충격으로 “한동안 산송장처럼 지냈다. 생리가 끊기고 면역력이 떨어졌다”고 자서전에 적었다. 생일잔치에서 박정희는 ‘짝사랑’을 불렀다. 아내를 잃은 비통함이 비쳐졌다. 근영은 수줍어하면서 ‘비둘기 집’을 불렀다. 그러나 스물두 살의 퍼스트레이디는 생일잔치라는 지극히 사적인 자리에서조차 감정을 드러낼 여유가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주의 신년 기자회견을 망쳤다. 문고리 3인방을 내치지 못했다. 내 사람, 내 스타일을 고집했다. 2년 전 대통령선거 때 ‘행복을 주는 사람’을 불렀던 감성적인 모습은 사라졌고, 40년 전의 ‘새마을 노래’ 모드로 돌아갔다. 문건 파동에 대해 “송구하다”는 표현을 썼지만, 진정한 사과는 아니었다. 화난 민심과의 거리는 더 벌어졌다. 40%대의 콘크리트 지지율이 무너진 것은 이런 경직(硬直)의 결과다.



 탈진한 박근혜 정권이 기력을 회복하려면 단순한 변화 이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경직된 스타일이 유연해져야 한다. 입장이 다른 타인의 아픔도 내 아픔이 될 수 있다는 따뜻한 공감의 시선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너와 나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하나가 될 수 있다. 부족한 나를 송두리째 개혁하고 전환할 수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부드럽다. 사람도, 짐승도, 물고기도 심지어 나무도 뻣뻣하면 이미 죽은 것이다. 새로워지기 위해서도 반드시 부드러워야 한다. 뱀은 자신을 보호해주는 껍질을 목숨을 걸고 벗는다. 건강할수록 자주 벗는다. 탈피(脫皮)를 멈추는 순간 껍질은 나를 가두고 죽이는 감옥으로 변한다. 살기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해야 하는 모순을 유연하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생전의 스티브 잡스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내가 하려는 일을 과연 할 것인가”라고 자문했다. 애플의 모든 기술을 내놓고라도 소크라테스와 한나절을 보내고 싶어 한 것은 스스로를 개혁하기 위한 신의 한 수가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도대체 소크라테스는 어떻게 전환의 각성을 얻었는가. 그는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군인으로 스파르타와 사활을 걸고 싸운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세 번 참전했다. 500만 명의 대군을 동원한 페르시아의 외침을 50년간 막아낸 뒤의 그리스에서 벌어진 처절한 동족상잔의 내전이었다. 사람이 살기 위해 인육을 먹는 지옥을 소크라테스는 경험했다. 아테네 사람들은 어느 날 군인 소크라테스가 선 채로 무언가 생각에 잠겨 밤을 새우는 장면을 목도했다. “숙고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깨우침은 이렇게 출구 없는 아포리아(aporia)의 절망과 혼돈 속에서 탄생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위기를 겪을 때마다 청와대 참모인 박형준과 이동관이 나섰다. 원활한 국정 수행을 위한 최소 지지율 40%를 확보하려고 ‘중도 강화론’을 들고나왔다. ‘부자 정권’이라는 불리한 프레임에서 벗어나려는 적극적인 시도였다. 두 사람뿐 아니라 다른 참모들도 기회만 주어지면 “정책의 유연성을 갖고 중간층을 포용하겠다”고 역설했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은 박형준도 이동관도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청와대 참모들은 집안싸움을 벌이고, 새누리당은 친박과 비박이 으르렁거린다. 결국 대통령 혼자의 힘으로 위기를 벗어나야 하는데 결코 쉽지 않다. 아포리아의 상황이다.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2400년 전의 아테네처럼 한국도 외침과 내전의 생지옥을 겪었다. 해방이 됐지만 분단의 세월은 70년에 이르렀다.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으로 여기지 못하는 비정상의 역사다. 전환을 위한 유일한 방법은 너와 나의 경계를 넘나드는 유연함뿐이다. 그래야 세계의 변화를 읽어내고, 나를 개혁하고, 이해관계가 다른 세력과 화해하고 통합을 이룰 수 있다. 강대국의 논리를 뛰어넘는 창의적인 접근으로 남북 관계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에게 남은 시간은 3년뿐이다. 박근혜가 살려면 박근혜를 뛰어넘어야 한다. ‘새마을 노래’는 깨끗이 잊어버리고 ‘행복을 주는 사람’을 부르는 부드러운 박근혜로 돌아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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