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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1등의 책상] 서울 경기여고 2학년 채시은양

중앙일보 2015.01.21 00:03 Week& 2면 지면보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윤동주의 시(詩) ‘서시’의 한 대목이 아니라 서울 경기여고 2학년 전교 1등 채시은양 얘기다. 그는 이 시구(詩句)처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공부한다. ‘국어 문학작품 3개 끝내겠다’고 마음먹으면 전체 내용 중 모르고 지나가는 게 하나도 없을 정도로 철저히 익힌다. 궁금하거나 이해 안가는 게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완벽하게 했다고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교과서를 꼼꼼히 읽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고, 문제를 풀고 또 푼다.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그가 좋은 성적을 받는 비결인 셈이다.


수학 포기 직전 결심했다, 매일 3시간씩 문제 풀자



최선을 다하기. 말은 쉽지만 행동은 어렵다. 채양도 사실 중학교 때까지는 열심히 공부하는 노력파가 아니었다. 시험 3주 전을 제외하고는 교과서나 문제집을 펴본 적도 없다. 영어 원서 읽기가 주된 일과였다. 노력에 비해 점수는 곧잘 나왔지만 지금처럼 전교 1등을 해본 적은 없다. 대왕중을 졸업할 당시 그의 성적은 상위 5%로 전체 369명 중 15~20등 정도였다. 대부분 과목은 1~2등급으로 최상위권이었지만, 딱 한 과목이 문제였다. 우리나라 전체 학생 중 3분의 1 이상이 포기한다는 수학이다.



 중1 때까지 별 문제 없던 수학성적은 중2 때부터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엄마 정경아(44·서울 일원본동)씨는 불안한 마음에 “학원을 다녀보자”고 딸을 달랬지만 수학 학원은 물론, 사교육 한 번 받아본 적 없었던 채양은 “혼자 할 수 있다”고 고집을 부렸다. 정씨는 아이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시은양의 의견을 존중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대치동 학원에 아이를 보낼 엄두가 안 났던 게 더 컸다. 대치동에는 수학 선행학습이 안된 아이가 다닐 수 있는 학원이 거의 없다는 걸 주변 엄마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기 때문이다. 차선책으로 중3 때 1년 동안 개인 과외를 받았지만 성적은 제자리걸음이었고,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했다.



채양이 자신의 방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다.
 보통 학생이라면 이런 과정을 거쳐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가 된다. 수학은 나선형 과목이라 단기간에 실력을 쌓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채양은 달랐다. 수학을 포기하고서는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후, 집중적으로 수학을 파고 들었다. 일단 공부하는 양을 늘렸다. 사실 중학교 때는 시험 기간에도 수학 교재 한 권 제대로 풀지 않고 시험을 치른 적이 많지만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수학공부에 매달렸다. 평소에는 수학 문제 푸는 데 3~4시간씩 쏟아 부었고, 다른 과목 시험 보기 전날에도 하루 1시간 이상 반드시 수학 문제집을 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1년 동안 다닌 학원도 도움이 됐다. 목표를 세운 후 반드시 지키는 그의 성향에 맞춰 늘 많은 양의 과제를 내줬던 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채양 스스로 독한 마음을 먹고 수학에 집중한 거다. 학원 강사가 “교재 한 권을 3주 안에 끝내자”고 하면 채양은 목표 기간의 절반인 10일 만에 다 풀고 서점에서 다른 교재를 사서 풀었다.



 꾸준히 노력한 결과는 성과로 이어졌다. 중학교 졸업할 때 4~5등급이었던 그의 수학 성적은 고1 1학기 중간고사에서 3등급으로 올랐고 1학년 전체 수학 점수는 2등급이 나왔다. 그리고 2학년 때 드디어 1등급이 됐다. 1년 만에 중위권에서 최상위권으로 껑충 뛰어 오른 거다. 채양은 “수학은 노력하면 무조건 점수가 오르는 과목이라는 걸 알게 됐다”며 “수포자도 눈 딱 감고 하루에 한 시간씩 6개월만 수학 문제 풀이에 집중하면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수학공부 할 때는 그만의 방법이 있다. 핵심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구분 하기다. 일단 채점을 할 때 답을 맞힌 문제와 답은 맞았는데 풀이방법을 잘 모르는 문제, 틀린 문제 등으로 나눈 후 오답과 풀이방법이 확실하지 않는 문제는 따로 정리한다. 처음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실마리 찾는 방법, 문제 풀 때 활용해야 하는 기본 개념, 풀이과정 등을 머릿속에 완벽하게 숙지할 때까지 3~5번씩 반복해 다시 풀기 위해서다.



 수능 대비도 비슷한 방식으로 한다. 최근 10년 치 수능 기출문제를 죄다 모아 풀면서 문제 유형을 익힌 후 답과 풀이과정을 외울 때까지, 아니, 외운 문제도 다시 복습한다. 놓치는 부분이 하나라도 없게 하기 위해서다. 채양은 “공부할 때 ‘이건 안 나오겠지’라고 대충 넘어가는 게 있어서는 안 된다”며 “스스로 ‘최선을 다했느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로 철저히 익힌다. 특히 암기과목은 입으로 술술 말 할 수 있을 때까지 교과서를 읽고 또 읽는다. 중요한 건 머릿속으로 암기하는 게 아니라 인과 관계를 따져가며 전체 흐름을 파악하는 데 있다. 대부분 학생이 세계지리나 한국사 등의 과목을 암기과목이라고 여기는데, 채양의 생각은 다르다. “이해하지 않은 채 외운 내용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잊어버리게 돼 있다”는 얘기다. 그는 “A사건에 대해 물어보면 그 시대적 배경까지 거침없이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히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암기과목 공부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강의하기다. 채양이 집에서 시시때때로 일일 강사가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예컨대 엄마 정씨를 앉혀 놓고 줄줄 설명하는 식이다. 거실과 베란다 사이 유리창에 붙어있는 세계지도에 물백묵으로 판서까지 해가며 가르칠 때도 많다. 중학교 때까지는 화이트보드를 사용했지만, 이제는 온 집안의 창문이 그의 칠판이다. 공부하다 집중이 안 되거나 정리해야 할 내용이 있으면 언제든 물백묵을 꺼내 들고 강의를 시작한다. 채양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건 핵심 개념을 머릿속에 제대로 저장했는지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파악하는 기회도 된다”고 말했다.



 자투리 시간도 잘 활용하는데, 점심시간이 대표적이다. 채양은 학교에서 점심 급식을 먹지 않는다. 고1 4월부터 고구마·샌드위치·사과·죽 등 5~10분 내로 먹을 수 있는 메뉴로 도시락을 싸간다. 밥을 먹기 위해 줄을 서는 건 시간낭비라는 생각 때문이다. “친구와 수다를 떨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잠을 자면 피로가 줄어들지만 줄을 서는 건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거다. 보통 10분 내로 점심을 해결하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시험 기간에는 공부를 하고, 평소에는 영어 원서를 읽는다. 이는 다섯 살부터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미국에 살면서 익힌 영어 실력을 유지하는 방법인 동시에 따로 시간을 내 공부하지 않아도 영어 과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비결이다.



 채양이 고등학교에 올라와 우수한 성적을 받는 데는 부모의 역할이 컸다. 아빠 채경락씨와 정씨는 시은양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 하거나 다그친 적이 없다.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는 것보다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게 더 중요하다는 교육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특히 채씨는 서울대를 다니면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을 많이 봐온 탓에 스트레스 받으며 공부해 좋은 대학 가는 게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강했다. 채양이 중학교 때 우수한 영어 성적을 받았지만, 외고에 지원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상위권 아이들과 경쟁하면서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 아이 스스로 재미있게 공부하는 길을 택할 수 있게 도운 거다. 이는 결국 아이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고, 고등학교 진학 후 전교 1등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글=전민희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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