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은 디플레 속 그리스 회복 중 … 부채 조금씩 갚으면 된다"

중앙일보 2015.01.21 00:01 경제 3면 지면보기
그리스 총선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글로벌 시장이 선거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수석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왼쪽)와 유로그룹 의장인 예룬 데이셸블룸 네덜란드 재무장관이 서로 다른 전망을 제시했다. [블룸버그, 김경빈 기자]


치프라스(左), 메르켈(右)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회의) 의장인 예룬 데이셸블룸(49) 네덜란드 재무장관은 도버해협 건너편 영국 전문가들과는 달리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최근 한국을 찾은 그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영국 전문가들은 늘 최악의 상황만을 얘기한다(웃음)”고 말했다.

재무장관회의 의장 데이셸블룸
노동시장과 금융구조 개혁 성과
일본의 '나쁜 디플레'와는 달라
물가 떨어지고 리스크는 최소화
그리스 통제 가능 … 유로존 남긴다



 -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그렉시트)를 대비하고 있나.



 “그렉시트는 완벽하게 의제가 아니다. 그런 일은 더 이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유럽연합(EU)과 유로존 리더들은 유로존을 지금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 재정과 금융 통합 등 수많은 개혁 조치들이 취해졌다. 이제 갓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다. 현재 상황은 재정위기가 절정이었던 2년 전보다 훨씬 좋다.”



 - 25일 총선 직후 글로벌 시장이 휘청하지 않을까.



 “예단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민주 국가에 살고 있다. 해마다 유럽에선 선거가 있다. 이번 차례가 그리스일 뿐이다. 때로는 정부가 교체되기도 한다. 현재 내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시리자(급진좌파연합)가 유로존 내에 남아 있으려 한다는 점이다.”



 - 시리자 당수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유럽 정치계에서 이단아다. 그가 이번 총선에서 집권하면 유로존 기성 정치 리더들이 그를 인정하고 받아들일까.



 “선거 결과를 예단하고 싶지 않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선거는 그리스 내부의 문제다. 그리스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우리는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데이셸블룸 장관의 말은 아주 원론적이었다. 요즘 시리자가 여론조사에서 중도우파인 신민당보다 3%포인트 남짓 앞서고 있다. “선거 결과를 예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의 말은 ‘실제 선거 결과는 여론조사와 다를 수 있다’는 뜻으로 비쳤다. 화제를 정치에서 경제 문제로 돌렸다. 그는 유럽 구제금융 펀드인 유럽재정안정화메커니즘(ESM) 의장을 맡고 있다. 그리스뿐 아니라 포르투갈 등에 투입한 구제금융을 관리하는 게 그의 임무다. 그리스에 빌려준 돈을 깎아줄지 말지를 물어보기 알맞은 인물인 셈이다.



 - 런던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그리스 부채를 또 탕감(헤어컷)해줄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더라.



 “그리스의 부채가 아주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빚 부담은 금리와 만기 구조, 경제 성장률 등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다.”



 - 무슨 뜻인가.



 “그리스는 지금 깊은 침체에서 벗어나 되살아나고 있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회복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리스는 구제금융을 앞으로 10년 후 부터 본격적으로 갚기 시작하면 된다. 이는 런던 전문가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다. (데이셸블룸 장관은 그리스가 빚을 충분히 갚을 수 있다고 본다.)”



 - 유로존 디플레이션이 그리스 경기침체를 악화시키고 빚 부담을 키우지 않을까.



 “흥미로운 지적이기는 하지만 정반대다. 그리스뿐 아니라 구제 프로그램을 처방받은 포르투갈과 스페인 등에서도 물가가 하락하고 있다. 노동시장과 금융구조 등을 개혁하는 바람에 물가가 떨어지고 있다. 물가 하락은 구조개혁 정책이 달성하려는 목표 가운데 하나다. 임금과 물가 등이 떨어져 그리스는 수출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 일본을 봐라. 임금을 떨어뜨려 경쟁력이 강화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장기 침체를 겪어야 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늘 일본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무엇이 물가를 떨어뜨리는지를 봐야 한다. 유럽의 경우 두 가지 큰 요인이 있다. 에너지 값 하락이다. 최근 반년 사이에 국제유가가 50% 넘게 떨어졌다. 두 번째 큰 요인은 구조개혁이다. 임금 등 공급 사이드 물가가 떨어진 바람에 경제 전반의 물가가 하락하고 있다.”



 - 그렇다고 디플레이션이 좋은 일은 아니지 않은가.



 “좋은 디플레와 나쁜 디플레가 있다. 유럽의 경우는 좋은 디플레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경제가 나쁜 디플레 소용돌이에 빠지면 소비와 투자를 연기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우리는 이런 사태를 겪을 것으론 보지 않는다.”



 - 너무 독일처럼 구조개혁을 강조하는 게 아닌가. 남유럽 전문가들은 경기 부양을 강조하더라.



 “남유럽 국가들이 경기부양을 하고 싶어도 그럴 만한 돈을 조달할 수가 없다. 현재 금융시장이 그들 나라에 돈을 빌려주려고 하지 않는다. 구조개혁은 독일 사람들의 취미가 아니다(웃음). 어느 나라든 해야 할 일이다.”



 데이셸블룸 장관은 드러내놓고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 완화(QE)를 요구하진 않았다. 유로존 재정정책 조율사로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감 내라 배 내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에서다. 하지만 그는 “ECB가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는 ECB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켜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 재정 차원에서 디플레이션 대응책은 준비하고 있는가.



 “재정 측면에서 우리는 최근 몇 년 동안 재정적자를 줄이는 데 집중했다. 사람들이 허리띠 졸라매기라고 부르는 정책이다. 덕분에 유럽의 재정적자 증가율은 많이 낮아졌다. 더 이상 부채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없다. 이제 공공투자를 늘릴 수 있게 됐다.”



 “다시 말하지만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없다. 이미 시중은행들은 그리스 리스크를 최소화했다. 은행들이 체력 강화를 위해 자본확충 등 많은 일을 했다. 게다가 그리스는 경제와 인구 규모에 비춰 아주 작은 나라다. 그리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우리는 통제 가능하다. 더욱이 우리는 그리스가 유로존 내에 머물도록 할 작정이다. 이는 유로존뿐 아니라 그리스를 위해서도 좋다.”



 - 유로존 경제 성장률이 언제 정상화될까.



 “성장률이 어느 정도 돼야 정상이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 유로존 성장률이 낮지만 지속 가능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보다는 올해가, 올해보다는 내년의 성장률이 더 높아질 전망이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gnang.co.kr



◆예룬 데이셸블룸=네덜란드 노동당 소속 정치인 출신이다. 네덜란드 바게닝언대에서 농업경제학을 공부했다. 그는 2012년 11월 5일부터 네덜란드의 재무장관으로 재직중이다. 유로존 경제정책담당자 사이에서 ‘정직한 브로커’로 통한다. 유로존 재무장관 모임인 유로그룹과 유럽재정안정메커니즘(ESM) 의장으로 독일과 남유럽 사이 의견 차이 등을 중재·조율하고 있어서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