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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접수번호 104번 … 2시간 넘게 줄 섰다

중앙일보 2015.01.21 00:01 강남통신 1면 지면보기
사진=김경록 기자



왜 한식 뷔페에 열광하나

“이렇게 공부했으면 하버드를 갔겠어.”



8일 오전 10시, 한식 뷔페 ‘올반’ 센트럴시티점 입구 앞에 줄을 서 있던 50여 명 중 누군가가 한숨 쉬며 내뱉은 말입니다. 기자도 줄을 섰습니다. 번호표를 받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분, 번호표에는 ‘24번’이라고 찍혀 있었습니다.



이 매장의 좌석은 196석. 자리에 앉아있는 196명이 식사를 마치고, 제 앞에 줄을 선 23개 팀이 들어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2시간30분을 하염없이 기다렸습니다. 결국 매장에 들어간 시간은 낮 12시40분, 배가 고팠습니다. 밥 먹는 데 걸린 시간은 한 시간이 채 안됐지만 일부러 두 시간 동안 자리를 지켰습니다. 기다린 시간이 억울해서요.



나흘 뒤인 12일 오전, 또 다른 한식 뷔페인 ‘계절밥상’ 용산점에 갔습니다. 이번에는 30분 빠른 오전 9시30분에 매장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습니다. 오전 10시30분 개장을 기다리면서요. 한 주부는 굳게 닫힌 셔터를 바라보며 “너 아니어도 사람 많다는 거냐, 이렇게 마냥 기다려야 하냐”며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습니다. 오전 10시가 되자 문이 열리고 직원이 줄 선 사람들에게 번호표를 나눠줬습니다. 이번에 받은 번호표에는 4번이라고 찍혀 있었습니다. 입장까지 다시 30분을 기다렸습니다.



지난 18일 다시 계절밥상 용산점에 갔습니다. 오전 11시50분에 받은 번호표에 104번이라고 찍혀 있더군요. 직원은 제 앞에 55개 팀이 대기 중이라며 “2시간 넘게 기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요즘 뜬다는 한식 뷔페, 대부분 1~2시간은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다고들 합니다. 대체 왜일까요.



글=송정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이번엔 한식 뷔페다.



맛 한 번 보려 2시간 넘게 기다려야 하지만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층 뿐 아니라 백발의 어르신도 줄 서 기다리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일부 매장은 5개월 후인 6월 예약이 마감됐다. 재료가 많이 들고 손이 많이 가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한식이 뷔페라는 옷을 입고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패밀리 레스토랑 빈 자리 채우는 한식 뷔페



토니로마스, 씨즐러, 마르쉐…. 1990년대 큰 인기를 끌다가 사라진 패밀리 레스토랑들이다. 현재 한 곳도 남아있지 않다. 지난해 12월 토니로마스 광화문점을 끝으로 쓸쓸히 퇴장했다. T.G.I.프라이데이스(92년), 베니건스(95년),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97년)는 지금까지도 패밀리 레스토랑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인기나 매출 모두 예전 같지는 않다.



2000년대 초반은 고기 뷔페, 2000년대 중반은 해산물 뷔페 ‘토다이’의 전성시대였다. 그리고 다음은 샐러드 뷔페형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이 때 등장한 빕스·애슐리·세븐스프링스 등은 샐러드 뷔페와 패밀리 레스토랑을 결합시켜 손님들의 발길을 끌었다.



샐러드 뷔페는 최근 한식 뷔페로 진화했다. 2만~3만원대 파스타·스테이크 등의 메뉴 대신 다양한 한식 위주로 차렸다. 각 매장마다 최소 70가지의 메뉴가 있다. 죽·샐러드·묵무침 같은 식전 음식부터 고추장 삼겹살구이·닭갈비 등의 메인 요리, 호떡·붕어빵·팥죽 같은 디저트까지 다채롭다.



1만원이 조금 넘는 가격으로 뷔페를 즐길 수 있는 건 한식 뷔페의 가장 큰 인기 비결이다. 계절밥상·자연별곡·올반 3곳의 점심 가격은 평균 1만3900원이다. 고가의 한정식집과 5000~6000원 내외의 일품요리 백반집으로 양분화 돼 있던 한식 시장의 틈새를 공략한 것이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파는 대부분의 메뉴가 3만~4만원대인 점을 감안하면 절반도 안되는 가격이다.



합리적인 가격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 메뉴 구성이 기존의 뷔페와 다르다. 레스토랑 가이드북『다이어리알』 이윤화 대표는 “한식 뷔페는 일반 뷔페에 비해 고기나 해산물의 가짓수가 적은데다 대부분 양념한 메뉴들이다”라고 말했다. 한식 뷔페라 고기 메뉴가 많지 않아도 사람들의 불만이 적다.



한식 뷔페를 운영하는 CJ·이랜드·신세계 3곳 모두 대규모 외식 유통업을 하고 있는 대기업이기 때문에 식자재 단가를 낮출 수 있다. 범상규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식 뷔페에 뛰어든 대기업들은 모두 음식과 관련된 사업을 해온 곳들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구매력을 이용해 다양한 식재료를 적절한 장소에서 구매하고,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촌스러운 이미지, 세련되고 건강하게 바꿔



한식 뷔페는 이전부터 있었다. 다만 전혀 다른 이미지였다. 이윤화 대표는 “기존의 한식 뷔페는 만원 이하의 저렴한 가격에 여러 가지 음식이 널려 있는 촌스러운 이미지였다”고 말했다. 요즘도 직장인이 많은 지역에선 다양한 한식 메뉴를 차려놓고 원하는 대로 가져다 먹는 점심 뷔페 식당이 많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한 끼 해결하기 위한 공간일 뿐 유행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반해 한식 뷔페는 세련된 인테리어로 ‘한식=촌스럽다’는 편견을 깼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 김서연 선임연구원은 “한식 뷔페는 한식이라는 전통의 콘텐트는 갖고 있으면서 공간은 서양식으로 꾸며 동선이 편리하다고 있다”고 분석했다.



‘로컬’ ‘제철’을 내세워 건강한 이미지도 더했다. 식재료를 국내산으로만 표기하지 않고, 국내 어느 지역에서 온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그뿐 아니라 매장에서 직접 도정한 쌀을 사용하거나 직접 만든 두부를 내놓는다. 계절밥상은 매장에 텃밭을 꾸며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한다는 이미지를 내세웠다. 계절밥상·올반 모두 매장 입구에 농작물직거래 장터를 운영해 사용하는 식재료를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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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 부르는 입소문



2~3시간씩 대기해야 하는 한식 뷔페의 줄서기 풍경은 사람들을 부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요즘 트위터·페이스북·블로그 등 온라인 미디어에는 한식 뷔페 대기표와 입장 인증샷 등이 자주 올라온다. 다녀와야 ‘트렌드를 아는 사람’이 된다. 입장을 기다리며 길게 늘어선 줄은 생각 없이 지나던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남들이 다 하는데 나만 하지 않을 때’ 느끼는 사회적 고립감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범상규 교수는 “한식 뷔페가 인기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자신의 기호와 무관하게 한번쯤 방문해 보는 이들이 늘고 있다”며 “반드시 먹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고객들은 사전 예약을 하거나 평일 방문을 계획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식 뷔페의 이런 명성은 특히 30~40대 이상 여성의 입소문에서 기인했다. 지난 8일 오전 10시쯤 올반 센트럴시티점에서 대기표를 받으려 서 있던 100여 명 중 80% 이상이 40대 이상 여성이었다. 박미영(42·반포동)씨는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식 뷔페 한번 안 가본 사람은 유행에 뒤처진 걸로 보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새로움 없으면 ‘반짝 관심’ 그칠 수도



‘한식’이라는 메뉴는 장점이자 단점이다. 일부 전문가는 “한식이 한국인의 고유한 음식이므로 유행을 타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반대로 “익숙하기 때문에 쉽게 질려 지금의 인기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의견도 있다. 범상규 교수는 “한식은 모두 좋아하지만 그동안 맛보지 못했던 메뉴라야 관심을 유지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비슷한 메뉴라면 쉽게 식상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존 고기·씨푸드 뷔페가 ‘반짝’ 인기를 누렸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트렌드가 자주 바뀌는 만큼 새로운 트렌드가 나타나면 쉽게 인기가 꺾일 수 있다. 뷔페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도 있다. 사람들이 ‘가짓수는 많지만 정작 먹고 나면 뭘 먹었는지 모르는 곳’이라는 뷔페의 이미지 말이다. 요리연구가 문인영씨는 “뷔페 자체가 어떤 요리를 메인으로 먹은 게 아니라 주섬주섬 먹는 거여서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뭘 먹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당분간 한식 뷔페의 인기는 쉽게 줄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집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데다 한류와 더불어 한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이 올 상반기 효소를 활용한 한식 뷔페 ‘별미가’를 론칭하며 한식 뷔페시장에 뛰어들어 기업간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송정·심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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