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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은 유행이 아니다

중앙선데이 2015.01.18 03:06 410호 31면 지면보기
최근 홍콩의 금융 중심가인 센트럴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났다. 그는 『공산당 선언』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고 했다. 나는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금융인인 그가 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쓴 책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궁금했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대우를 잘 받는 사람이 설마 소득 불평등에 대해 고민하진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빈부격차가 세계적으로 크게 확산되고 있고 홍콩도 예외가 아니다”고 답했다.

그는 미국 뉴욕 출신으로 10년 전쯤 월가에 있는 은행을 방문했다가 그곳의 화려한 분위기에 이끌려 금융인의 꿈을 꿨다. 지금은 홍콩에서 국제금융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이런 그가 소득 불평등에 관심을 갖는 것을 볼 때 이 문제는 이제 핵심적인 글로벌 이슈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4년 전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크게 유행한 적이 있다. 이 책은 한국에서만 100만 권 이상 팔릴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저자인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한국을 방문해 강연을 하는 등 많은 한국인으로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외국 학자가 학계가 아닌 일반인으로부터 이렇게 환영을 받은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러시아에서 이런 사례는 거의 없다.

지난해에도 비슷한 현상을 봤다.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인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빅히트한 것이다. 피케티 역시 한국을 방문해 강연하는 등 큰 인기를 누렸다.

왜 두 학자가 한국인에게 큰 인기를 끌었을까. 개인적으로 한국 중산층의 위축이 그 이유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 중산층은 1990년대까지 꾸준히 커지다가 97년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난에서 벗어난 수많은 사람이 중산층으로 기반을 잡고 경제적 풍요를 구가했던 시기는 90년대 이후 불과 10년이 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 불안한 경제적 지위와 빈부격차의 심화로 한국인은 고민에 빠진 것이다.

러시아의 상황도 좋지 않다. 2000년대 급속한 경제성장을 했지만 가장 소득격차가 큰 나라 중 하나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스위스 금융사인 크레디트 스위스의 분석에 따르면 러시아는 2013년 9월 기준으로 110명이 전체 부(富)의 35%를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환율로 따지면 4200억 달러를 불과 110명이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왜 이런 극심한 빈부격차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인은 소득 불평등에 대해 불만을 갖지 않을까. 그건 아마도 러시아인이 평등한 사회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금 세계 곳곳은 빈부격차에 따른 부작용으로 신음하고 있다. 정치인을 비롯해 경제학자나 언론인은 너도나도 경제적 불평등을 거론하며 대책 마련에 촉구하고 있다.

지난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2014년을 가장 잘 묘사한 단어로 ‘불평등(inequality)’을 꼽았다.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예다.

홍콩에서 일하는 금융인 친구는 “빈부격차의 심화로 인해 공산주의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할 것 같다.

경제적 풍요를 누리는 그가 유행 따라 지적 유희를 위해 읽는 『공산당 선언』처럼 돼선 안 될 것이다. 유행은 말 그대로 일시적이고 너무 빨리 우리 관심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리나 코르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의 국제경제대학원을 2009년 졸업했다. 2011년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의 HK연구교수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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