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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들, 토론회 열면 어린이집 원장 눈도장 찍으러 ‘우르르’

중앙선데이 2015.01.18 00:24 410호 8면 지면보기
아동 학대가 이슈가 될 때마다 정부와 정치권은 해묵은 대책을 쏟아낸다. 16일 오후 서울 평창동의 종로생명숲어린이집 어린이들이 이불을 정리하는 모습. [뉴시스]
인천 어린이집 아동 학대사건 파장이 커지고 있다. 피해자 엄마뿐 아니라 한국의 모든 부모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네 살배기 아이가 보육교사의 거친 손찌검에 맥없이 나가떨어지는 모습, 자지러지게 울어야 할 아이가 오뚝이처럼 일어나 반성하듯 뱉어 낸 김치를 줍는 모습…. 폐쇄회로TV(CCTV)에 찍힌 이 장면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성격장애가 있는 한 보육교사의 일탈로 치부할 수 없는 한국 보육시스템의 민낯이 또다시 드러난 것이다.

재탕·삼탕 정부 보육대책 왜

정치권과 정부는 성난 민심을 달래고자 지난 16일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았다. ▶모든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 ▶아동 학대 적발 시 어린이집 폐쇄 ▶법 위반 어린이집 명단 공개 ▶보육교사 인성교육 강화 등이다. 하지만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이 같은 대책은 가깝게는 2013년 5월 안심보육대책에서 그대로 차용한 것이고, 멀게는 10년 전부터 논의돼 온 해묵은 대책이다. 익명을 원한 한 어린이집 원장은 “어린이집은 정치권에 입김이 센 거대한 이익단체라고 보면 된다”며 “CCTV 설치 의무화는 10년 전부터 논의가 있었지만 어린이집의 반대를 의식한 정치권에서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아 번번이 무산됐다”고 말했다.

CCTV 도입 반대 앞장선 국회
어린이집 CCTV 도입 의무화는 아동 학대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거론됐던 내용이다. 2005년 이런 내용의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발의됐고 2013년에 19대 전반기 국회에서도 논의된 바 있다. 하지만 여야는 이구동성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거나 ‘보육교사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처사’라며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결국 영유아보육법 개정안 여러 건이 한데 합쳐져 병합 심사를 한 결과 2013년 7월 본회의에선 이 조항이 빠졌다. CCTV 설치는 필수가 아닌 어린이집의 선택에 맡기는 걸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보육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어린이집 원장들에게 휘둘리고 있다고 분석한다. 서울 소재 대학의 보육학과 교수는 “어린이집 원장들은 세포조직처럼 결속력과 단결력이 강하다”며 “동네 빅마우스로 통하는 원장들이 학부모 등 지역 여론과 표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정치권이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국회에서 보육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면 보건복지위 위원들이 대거 참석해 원장들에게 눈도장을 찍는다”며 “어린이집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는 패널은 원장들로부터 심한 야유와 모욕적인 이야기를 듣기 일쑤다”고 했다.

가장 모범적으로 CCTV를 도입한 사례는 정부 관료들의 자녀가 다니는 세종시청사 어린이집이다. 청사 내 아이온어린이집은 자체적으로 CCTV를 부모들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생중계한다. 내 아이가 어디서 무얼 하고 있고,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이 흔치 않다. CCTV를 설치한 대다수의 어린이집은 CCTV를 설치만 했을 뿐 부모가 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도 CCTV 설치를 의무화하겠다는 명문화 조항만 있을 뿐 어떻게 부모에게 보여 줄 수 있는지는 언급하지 않아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대책만 요란, 정치권 쇼에 실망
법을 위반한 어린이집 명단을 공개하겠다는 대책도 이미 시행 중인 제도다. 이 제도 역시 부실하게 운영돼 학부모들은 지역 내 어느 어린이집이 좋은지, 또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4월 8개월 된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낼 계획인 김모(32·여)씨는 최근 보건복지부와 어린이집 정보 공시 사이트에 들어가 본 뒤 분통을 터뜨렸다. 복지부 홈페이지엔 위반 어린이집이 전남 목포 소재 A어린이집 한 곳에 불과했다. 정보 공시 사이트엔 A어린이집과 경남 거제의 B어린이집 두 곳만 덩그러니 공개돼 있었다. 김씨는 “해당 사이트에 ‘보호자들이 보다 안심하고 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있도록…’이란 표현을 보고는 화가 치밀었다”며 “정치권이 생색내기용 보육정책만 늘어놓았지 제대로 시행되는 것은 거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에만 265건(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어린이집 아동 학대가 발생했는데, 기껏 한두 곳의 명단만 공개되고 이마저도 사이트별로 제각각인 것이다.

새누리당과 정부는 “어린이집에서 아동 학대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거창하게 대책을 내놓았다. 학대 사실이 적발되면 어린이집을 폐쇄하고 원장과 보육교사도 영구 퇴출하겠다고 했다. 이른바 ‘원 스트라이크 아웃(One strike out)’ 제도다. 하지만 이 제도 역시 예전부터 있던 것이다. 영유아보육법에 따르면 아동 학대를 하다 적발되면 원장과 보육교사의 자격을 10년간 제한한다. 사실상 영구 퇴출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도 당정은 새 제도처럼 포장을 한 것이다. 당장 문제의 어린이집을 닫으면 아이들이 갈 곳이 없어 그에 대한 대책 등을 면밀히 세워야 한다는 게 엄마들의 지적이다.

보육교사 처우 개선 등 실효성 높여야
보육교사 보수교육 강화와 근무환경 등 처우 개선도 아동 학대가 터질 때마다 줄곧 언급돼 왔던 이야기다. 한국보육학회장인 여주대 이미정 보육과 교수는 “보육교사로 취업하려는 상당수가 상대적으로 쉬운 사이버대학이나 개인이 설립한 평생교육원 등을 통해 자격증을 따고 있다”며 “이번에도 아동 학대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국민적인 관심이 높아졌지만 이 같은 문제는 계속 지적됐다”고 말했다. 부산의 한 대학교수는 “무상보육이 전면 실시되며 양적 팽창을 하면서 질 관리가 안 되고 있는 것은 끊임없이 제기된 문제”라며 “정치권이 어린이집에 휘둘리다 문제가 생기니 새삼 특단의 대책을 내놓는 ‘쇼’를 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회장 정광진)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보육정책 개선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합회는 “정부와 여당이 발표한 아동 학대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와 영구 퇴출, 보육 교직원의 자격 관리 강화, 평가인증제도 개선 등의 대책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며 “관련 법령 개정에도 앞장서겠다”고 했다.


장주영 기자 jy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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