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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보은의 마음으로 … 학교 38개 복구했죠

중앙선데이 2015.01.18 00:46 410호 12면 지면보기
필리핀에 파병된 아라우부대가 1년간의 임무를 마치고 지난해 12월 귀국했다. 아라우부대는 학교ㆍ병원 등 공공시설 재건을 비롯해 중장비 교육, 한국어 교습 등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사진은 한국어를 배운 학생들이 감사의 뜻을 표하는 모습. [아라우부대]
‘피의 희생을 땀으로 보답한다’.

필리핀 태풍 복구 마치고 돌아온 이철원 아라우 부대장

2013년 11월 8일 필리핀을 강타한 수퍼태풍 ‘하이옌’의 피해 복구 임무를 수행한 한국군 아라우부대의 모토였다. 1년간의 복구 임무를 마치고 지난달 귀국한 이철원(대령·아래 사진) 아라우 부대장은 이 모토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처음 필리핀에 도착했을 당시 현지 분위기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외국군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 게 바로 이 모토였다. 필리핀이 6·25전쟁 때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파병한 나라이기 때문에 갑(甲)의 입장에서 을(乙)을 돕는 자세를 버리겠다는 뜻이다.”

태풍 하이옌으로 필리핀에선 6111명이 사망하고 1779명이 실종됐다. 또 가옥 110만 채가 붕괴돼 이재민 수백만 명이 발생했다. 재해 복구 여력이 부족했던 필리핀은 우리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아라우부대는 2013년 12월 300여 명 규모로 창설돼 피해가 가장 컸던 레이테주에 파견됐다. 1992년 미군이 필리핀 수비크만에서 철수한 이후 필리핀에 주둔한 첫 외국군이었다. 6개월 단위로 1, 2진으로 나눠 1년 동안 복구작업을 벌였다.

아라우는 현지어로 희망 또는 태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난 15일 이 부대장을 만나 아라우부대가 필리핀에서 벌인 활동에 대해 들어봤다.

-필리핀에 처음 도착했을 당시 상황은.
“지옥이 있다면 바로 여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끔찍했다. 전쟁이 한창이던 이라크에 파병된 적은 있었지만 레이테만큼 처참하진 않았다. 길거리에는 미처 수습되지 못한 시신들이 즐비했다. 태풍과 홍수로 인해 일부 콘크리트 건물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다. 시신과 쓰레기 더미만이 널려 있던 절망의 땅이었다. 수십·수백 구의 시신을 한곳에 모아 놓고 신원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채 매장했다. 시신들의 부패로 인한 전염병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현지인들의 호감을 얻기 쉽지 않았다는데.
“필리핀은 400년 넘게 스페인과 미국의 식민지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군에 점령당했다. 이 때문에 자존심이 강한 필리핀인들은 외국군을 경계하는 태도가 역력했다. ‘어떻게 이들과 밀접한 관계를 구축해 복구작업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졌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6·25전쟁이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도와주 러 온 게 아니라 은혜를 갚으러 온 것’이라고 현지인들을 설득했다. 그러자 점차 현지인들의 마음도 열렸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우선 6·25 참전용사 지원과 무너진 초등학교 및 병원 재건사업 등에 역점을 뒀다.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참전용사들을 수소문했다. 4명을 찾아냈다. 이들을 만나 깍듯이 예우했다. 우선적으로 이들의 집을 수리해 주고 손자·손녀들에게는 장학금을 지급했다. 예를 들면 타클로반 지역에서는 현지에 거주하는 참전용사 도밍고 라가스(89)의 집을 재건했다. 그는 6·25전쟁 때 포병장교로 참전했다. 그를 만나 예를 갖춰 군대식으로 그에게 거수경례를 하며 작업 시작을 보고했다. 이런 소문이 퍼지자 현지인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한국군이 진심으로 은혜를 갚기 위해 왔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일종의 ‘감동전략’이 성공한 것이다. 또 초등학교 재건사업에 역점을 뒀다. 교육이 중단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38개 학교를 다시 지었다.”

-가장 보람을 느꼈던 때는.
“중장비 직업학교 졸업식에 이매뉴얼 조엘 빌라뉴바 기술교육부장관이 참석했다. 그는 축사에서 ‘태풍이 지나간 뒤 해변 모래사장으로 밀려온 불가사리들은 다시 물에 들어가지 못하면 죽는다. 한국군은 이 불가사리들을 다시 바닷물로 던져 준 사람이고, 여러분(직업학교 수료생)은 운이 좋은 불가사리다. 한국군은 우리를 살릴 가치가 있다고 믿기에 땀 흘리며 우리를 도왔다. 언젠가 보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빌라뉴바 장관의 축사에 졸업식장은 숙연해졌다. 그때 우리 부대가 ‘정말 보람 있는 일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산 경공격전투기 FA-50 12대를 필리핀에 수출하게 된 데도 우리 부대 활동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예기치 않는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다. 우선 작업 중 안전사고 예방에 만전을 기했다. 또 현지에서 비난받을 수 있는 부대원들의 불미스러운 행동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부대원들이 젊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오후 6시 이후에는 외출을 금지시켰다.”

-아라우부대의 활동을 자평한다면.
“우리 부대의 이름처럼 모든 것을 잃은 현지인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고 싶었다.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던 것 같다. 아라우부대의 활동이 그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고 재기의 발판이 됐으면 한다. 이를 위해 중장비 직업학교는 부대 철수 후에도 국제기아대책본부의 지원으로 계속 운영키로 했다. 또 현지에 ‘아라우 농업 지도자 양성학교’를 한국의 국제농업개발원과 협력해 개교할 계획이다. 한국어 교실도 지속된다. 이외에 아라우부대 출신들이 ‘아라우장학재단’을 설립해 레이테주 정부가 추천하는 학생 50명에게 매년 장학금도 지원할 계획이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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