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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명확성 불분명 … 공무원 먼저 적용 뒤 대상 늘려야”

중앙선데이 2015.01.18 01:09 410호 15면 지면보기
국회 정무위원회가 지난 12일 전체회의를 열어 ‘김영란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본회의 통과 전에 가다듬을 부분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경빈 기자
“영화 ‘이유 없는 반항’(1955년작) 봤어요? 거기에 ‘치킨런’ 게임(낭떠러지를 향해 차를 몰다가 가장 늦게 차에서 내리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 나오죠. 정치적 득실만 따지다 여야 모두 낭떠러지에 떨어진 셈이죠. 치킨(속어로 겁쟁이란 뜻)이 되기는 싫으니까.”

법사위로 넘어간 김영란법 … 논란과 과제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을 의결한 지난 8일, A국회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A의원은 “마치 우리나라의 부정부패를 일소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처럼 여론이 밀려가는 상황에서 제동을 걸 수 있는 사람은 어느 쪽에도 없었다”고도 했다.

 그동안 언론과 학계는 물론 시민단체까지 한목소리로 김영란법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주문해 왔다. 하지만 정작 정무위가 이 법을 통과시키자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전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과잉 입법이란 주장에서부터 처벌 범위가 불분명한 위헌적 법률이란 비판도 나온다.

 전 국민적 지지를 받던 김영란법은 왜 ‘치킨런’이 됐을까.

 정무위안에 따르면 이 법의 적용 대상은 1800만 명이 넘는다. 원안에 있던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 공직 유관단체 직원과 공무 수행업무를 하는 민간인에 사립학교 교원과 유치원 교사, 언론인을 더해 184만 명가량이 직접 대상이다. 여기에 금품의 우회 수수를 막기 위해 민법상 ‘가족(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배우자의 직계혈족, 배우자의 형제자매 등)’에 해당하는 10명을 곱한 수치(1840만 명)다.

 김영란법은 기본법인 형법으로 규율하지 못하는 경우를 상정해 만든 일종의 특별법이자 포괄입법이다. 그런데 대상이 우리나라 경제인구(2500만 명)의 3분의 2에 달하는 것은 과잉 입법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대상 범위가 너무 넓어 실효성을 갖추기 힘들다는 주장도 있다. 금품 우회 수수를 막기 위해서라지만 형법상 자기책임 원칙은 물론 헌법이 금하고 있는 연좌제에 해당한다는 비판도 있다.

 김영란법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법관을 지낸 김영란(59) 서강대 석좌교수가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있던 2011년 원안을 만들었다. 2012년 8월 입법 예고된 이 법안은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이 100만원 이상의 금품을 받았을 때 직무 연관성이 없더라도 형사처벌할 수 있게 했다. 그동안 공무원들이 금품을 받더라도 직무 연관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피해 가는 허점을 보완하겠다는 취지였다. 형법상 뇌물죄가 있음에도 강력한 ‘특별법’을 제안한 건 우리나라의 부정부패가 근절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였다.

 2013년 정부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진척은 없었다. 대가성 없는 금품 수수까지 처벌하게 한 데 대한 저항도 적지 않았다. 8개월 넘게 잠자던 김영란법을 깨운 건 세월호 침몰사고였다. ‘관피아’ 논란이 거세지자 지난해 5월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김영란법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요구했다. 국회는 여론의 압박 속에 법안 심사를 시작했다.

 문제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김 석좌교수가 내놓은 초안 자체에 허점이 있다는 데 있었다. A의원의 말대로 법안 심사를 맡은 정무위 소속 의원들은 볼멘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대상이 어디까지인지 애초부터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은 탓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지역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초안을 보고 대법관까지 지낸 분이 만든 법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법적 완결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좋은 취지라 해도 과잉 금지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지, 명확성의 원칙을 충족하는지 등 최소한의 법적 요건은 갖춰야 했다”고 덧붙였다.

 국회가 대상 범위를 확대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정치권은 불만이 많다. 정무위 야당 간사였던 김기식(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법 원안도 대상자가 1500만 명이 넘었다. 원안에 사립학교 교원이 없었다지만 국공립학교 교원과 같은 업무를 하는 데다 비리는 사학이 훨씬 심하다. 오히려 불분명한 대상 범위를 국회가 명확히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안 심사 초기 정무위 소속으로 참여했던 김종훈(새누리당) 의원은 “김영란법은 애초부터 과잉 요소가 많았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는 “여론이 원하는 것과 법 사이에 간극이 있었다”며 “자신이 하는 일이 적법한지 위법한지를 상식선에서 판단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법은 그런 부분이 명확하지 않다”고 했다. 강석훈(새누리당) 의원도 “2000만 가까운 국민이 행동을 할 때마다 사법 당국에 운명을 맡겨야 한다면 얻을 수 있는 법익에 비해 부작용이 너무 큰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법사위로 넘어간 김영란법이 다듬어지지 않으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법의 취지는 살리되 흠결을 보완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김대환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무원 신분인 내게 학생들이 상담하러 올 때 음료수를 사 갖고 오면 위법인가,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김 교수는 “국민이 상식에 부합되게 살면 특별히 사법 판단을 받지 않아야 하는데 일일이 법 위반인지 되돌아보게 하는 것은 좋은 법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공직자 비리를 차단한다는 법의 좋은 취지를 살리려면 법적인 완결성을 보충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하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너무 포괄적으로 법을 적용하면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첫 단계에서는 공직 종사자로 대상을 한정하고 법을 시행하면서 조금씩 개정해 대상을 확대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한 전직 고위 법관 역시 “자주 만나는 법조인들끼리 이 법을 이야기할 때 여론이 거세니 결국 법 제정은 되겠지만 헌재에 가면 유지되기 어렵겠다는 걱정을 한다”고 말했다.

 반면 법의 부작용을 너무 겁낼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정무위 소속 민병두(새정치연합) 의원은 “범위가 넓다곤 하지만 예를 들어 지역시니어클럽 수납직원에게 금품을 제공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나. 크든 작든 이권이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실제 법 적용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1800만 명이 모두 3만원 이하의 밥만 먹어야 한다면 문제겠지만 법에 정한 대로 ‘고유한 사회경제적 관계’로 통념상 허용되는 선물은 예외로 하고 있어 부작용이 생각처럼 크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 의원은 “법사위 논의가 남아 있기 때문에 언론에서 공포심을 확대해 보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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