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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마케팅] 손님 막 대하는 욕쟁이 할머니는 갑일까 을일까

중앙선데이 2015.01.18 01:35 410호 20면 지면보기
리츠칼튼호텔이 직원들의 서비스 의식 고취를 위해 제작한 사내 홍보책자의 표지(왼쪽). 런던 루벤스호텔은 고객의 반려견에게 특수 제작 가구와 맞춤 식단을 제공하는 등 특별 서비스를 한다(오른쪽 위). 뉴올리언스 리츠칼튼호텔이 전날 과음한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숙취 해소 서비스(오른쪽 아래). [사진 각 사]
재즈의 도시 뉴올리언스는 소위 ‘밤 문화(nightlife)’가 발달한 곳으로 유명하다. 거리 곳곳의 재즈 공연은 물론 불꽃축제, 도박, 각종 쇼 등 즐길거리가 다양하다. 뉴올리언스의 화려한 밤을 즐기다 보면 술 한 잔이 어느새 두 잔, 석 잔이 돼 자기 주량을 넘기 십상이다.

⑧ 고객은 갑? 을!

이 도시 리츠칼튼호텔에는 ‘리커버리 컨시어지(Recovery Concierge)’가 있다. 지난밤 과음으로 고생하는 투숙객에게 제공하는 맞춤형 숙취 해소 서비스다. 숙취 전문가가 생강차와 롤 샌드위치, 진통제와 카페인 음료 등 고객의 상태와 취향에 따라 아침식사를 제안한다. 원기 회복에 탁월한 스팀 워터 목욕법도 상세히 설명해 준다. 고객이 원하면 해장술로 블러디 메리(Bloody Mary) 칵테일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업무차 투숙한 고객이라면 “상사에게는 비밀로 하겠다”는 센스 있는 약속도 한다.

호텔 업계의 특별 서비스는 무궁무진하다. 발리 반얀트리는 신혼부부 고객이 완벽한 허니문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로맨스 컨시어지(Romance Concierge)를 고용했고, 런던의 루벤스호텔에는 고객과 동행한 반려동물에게 특수 제작한 가구와 맞춤식 식단을 대령하는 펫 컨시어지(Pet Concierge)가 있다. 리츠칼튼호텔은 투숙객이 침대의 어느 방향을 사용하는지, 접시에 남긴 과일의 종류가 무엇인지 등을 파악해 다음 서비스에 이용하는데, 이 시스템은 고객에게 신비로움을 체험하도록 한다는 의미에서 ‘커스터머 미스티크(Customer Mystique)’라고 불린다.

대접 좋을수록 고객 응석받이 돼
고객 입에서 “와우(Wow)” 소리가 절로 나오게 하려는 서비스 경쟁이 치열하다. 물건만 잘 만들면 되던 제조업체들도 제품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고심한다. 전자업계에서는 구매 전후의 고객접점 서비스가 차별화 포인트로 부상했다. 국내 자동차업체들은 수입차 공략에 맞서기 위해 프리미엄 고객응대 서비스를 개발하거나 특급호텔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기도 한다. 정성을 들여 고객을 섬기는 호텔식 ‘버틀러(Butler·집사)’ 정신이 전 산업으로 이식되고 있다.

서비스 진화는 계속돼야 하지만,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훌륭한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경험한 소비자의 기대치가 점점 더 높아져 기업이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계속 먹다 보면 어느 순간 더는 맛있다고 느끼지 못한다거나, 특별대우를 자주 받을수록 고마움을 망각하는 것과 유사하다. 예를 들면 아메리칸 에어라인이 항공사 마일리지 서비스를 처음 선보였을 때는 모든 고객이 기뻐하고 고마워했지만, 이제는 마일리지 사용과 관련된 작은 불편만 겪어도 강력하게 항의한다. 지금 소비시장은 행복감을 느낄수록 그 기준이 점점 높아져 오히려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른바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 ‘만족의 쳇바퀴(satisfaction treadmill)’에 빠져들고 있다.

기업들의 극진한 대접에 익숙해져 응석받이가 된 일부 고객은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든다며 난동을 부리거나 직원을 폭행하는 등 상식 밖의 행동을 보인다.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의 리처드 셸(Richard Shell) 교수는 “고객당 수익과 비용을 판단해 지나치게 요구사항이 많은 고객은 냉정하게 해고(fire)하라”고 권유한다. 특히 파워를 남용하는 일부 ‘큰손 고객’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특화된 상품 개발과 마케팅, 직원 교육에 드는 경제적 비용, 공격적 고객으로 인해 직원이 겪는 모욕감과 불면증 등 심리적·신체적 손상, 과도한 고객응대 시간, 기회비용 등을 포괄해 가치를 재평가하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한 은행은 VIP 고객으로 규정했던 100만 달러 이상 예치 고객의 가치를 재분석한 결과 다른 고객을 소개하는 등 잠재적 수익 창출 가치를 감안하더라도 상당수가 미미한 정도의 수익을 창출하거나 오히려 초과비용을 발생시킨다는 점을 발견했다. 고객 마음을 얻기 위한 쳇바퀴 경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서비스에 중독된 고객을 양산하고 기업 손실을 키우게 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는 것이다.

의료·교육 분야에선 고객이 을
고객 ‘갑질’ 뉴스로 시끄럽지만 한편에서 고객은 여전히 ‘을’이다. 정보와 권한이 서비스 공급자에게 집중되어 소비자 주권이란 개념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는 곳이 특히 그렇다. 의료·교육 분야가 대표적이다. 물론 이들 산업에서도 서비스 수준은 계속 향상돼 왔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시설을 현대화하고 시스템을 자동화하는 식으로 스피드를 올리고 낭비를 줄이기 위한 하드웨어 개선이 대부분이다.

의료 서비스 현장에서 고객에게 가장 결정적인 순간(moment of truth)은 주차장도 접수처도 아닌 바로 의료진과 대면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단 몇 분의 진료시간이다. 그런데 전국 각지의 고객들이 모여드는 대형병원일수록 소위 ‘3분 진료’를 위해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작동시키다 보면 서비스의 기능성은 높아지지만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감성적 가치 전달은 미흡해질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환자나 보호자가 의사에게 질문하기가 눈치 보이는데 간혹 의료진이 피곤한 기색이라도 드러내면 병원과 고객의 갑을 관계는 더 분명해진다.

교육 현장도 다를 바 없다. 전문지식과 경험을 전수해 주는 선생은 분명 존경의 대상이지만, 학생이 미래를 설계하고 도전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감성적 역할도 다해야 한다. 학교가 서비스 현장으로 인식된다면 폭언·추행 사건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을이 된 고객은 분노와 슬픔을 표출하기보다 참고 속으로 삭이기 쉽다. 민원을 접수해 봤자 상처를 준 당사자에게 제대로 전달되거나 대우가 나아질 가능성이 작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드러나지 않는 고객의 불만, 마음의 상처를 발견하고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면 소비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아 업계를 주도하는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병원 이용객과 자원봉사자의 의견을 모아 개선할 점을 찾는 삼성서울병원의 ‘옴부즈맨 채널’.
1994년 개원한 삼성서울병원은 오랜 관행을 깨는 서비스 개혁으로 업계의 변화를 촉발했다. 그 당시 장례식장은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 밤새 음주와 노름이 벌어지는 곳이었다. 경황없는 유족들을 대상으로 업체가 바가지를 씌우거나 촌지를 받는 경우도 허다했다. 삼성서울병원은 확연하게 다른 장례식장을 선보였다. 미술작품과 조형물로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품질이 보증된 장례용품을 구매 전 직접 확인하도록 해 신뢰도를 높인 것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서비스를 경험한 고객들은 그만큼 눈높이가 높아졌고, 다른 대형병원의 장례식장도 서서히 변화해 지금의 장례 문화가 자리 잡게 되었다. 이 병원은 최근 ‘해피노베이션(Happinnovation)’을 비전으로 선포하며 보다 핵심적인 고객 서비스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의사가 진료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소통 전문가가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점을 찾는 ‘커뮤니케이션 코칭’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환자가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하는 방법은 물론 나쁜 소식을 전하는 법, 환자 이야기를 경청하는 법, 표정이나 눈 맞춤, 대화하는 자세와 뉘앙스 같은 비언어·준언어적 표현까지 조언했다고 한다. 무작정 진료시간을 늘리기보다 소통의 질을 높여 고객이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도록 하니 만족도가 높아짐은 물론 치료 효과도 좋아지게 될 터이다.

리츠칼튼의 경영 모토인 ‘신사·숙녀가 신사·숙녀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문구.
고객이 갑으로 대접받는 곳에서는 기업이 직원들의 마음 관리에 각별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서비스 전문가로 당당하게 업무에 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리츠칼튼호텔은 ‘신사·숙녀가 신사·숙녀에게 서비스를 제공함(We are Ladies & Gentlemen Serving Ladies & Gentlemen)’을 경영모토로 내세운다. 직원과 고객을 동급으로 규정한 것이다. 모든 직원이 고객당 2000달러까지 재량껏 쓸 수 있도록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갑을 관계 언제 뒤바뀔지 몰라
고객이 을이 되는 곳에서는 고객의 서러움을 당연시하지 말고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급변하는 시장 환경 속에서 언제 갑과 을의 위치가 뒤바뀔지도 모르는 일이다. 고객 서비스 경쟁에 불이 붙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퍼지니 불길의 방향을 잡으며 앞서가는 것이 좋다. 슬픔과 분노가 마음 속 상처로 오래 남듯이 기대하지 않았던 친절을 보이는 상대는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존재로 각인된다.

욕쟁이 할머니 식당에서 욕먹으며 식사한다고 서글퍼하는 사람이 있을까. 파워의 비대칭이 없는 상황에서 갑과 을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사실 기업과 고객은 권한이나 지위를 따져 위아래를 결정하는 관계가 아니다. 힘겨루기를 좋아하는 사회에서 상하 관계로 규정할 뿐이다. 고객은 갑도 아니고 더더구나 을도 아니다. 그냥 한 인간일 뿐이다. 인간 관계에서는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만 갖고 있으면 어떤 것도 문제될 게 없다.



최순화 소비자학을 공부했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석사 학위를, 퍼듀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근무했다. 현재 국내외 소비시장 트렌드 분석, 브랜드 관리 전략 등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반감고객들』(2014), 『I Love 브랜드』(공저, 201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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