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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급진좌파연합 집권해도 유로존에 남을 것

중앙선데이 2015.01.18 01:41 410호 21면 지면보기
딱 한 주 남았다. 25일 그리스의 새 총리가 결정된다. 지지율 차이는 말 그대로 박빙이다. 2.5~3%포인트 차이다. 시리자(급진좌파연합)가 중도 우파인 신민당을 앞선다. 이대로 승부가 결정된다면 알렉시스 치프라스 시리자 당수가 권력을 쥘 수 있다. 그가 누구인가. 유럽연합(EU)·국제통화기금(IMF)·유럽중앙은행(ECB), 즉 트로이카의 긴축처방을 거부하는 인물이다. 서유럽 정치계의 이단아인 셈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치프라스 집권 가능성 때문에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했다. 유로존은 유로화를 사용하는 19개국을 말한다. 서둘러 세계적인 통화이론가인 찰스 굿하트(사진) 영국 런던정경대학(LSE) 석좌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인터뷰했다.

영국은행 통화정책위 설계한 찰스 굿하트

-치프라스가 집권하는 것인가.
“여론조사에서 시리자가 신민당을 3%포인트 정도 앞선다고 나온다. 이런 추세는 최근 몇 달간 이어졌다. 그렇다고 시리자가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연정을 하게 될 것이다.“

-선거 직후 승자가 연정을 구성하지 못해 재선거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정치에선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지지율 차이가 박빙이다.”

-선거 직후 글로벌 시장은 어떨까.
“시리자가 이긴다면 시장이 겁을 먹을 수 있다. 반면 신민당이 이긴다면 안도할 게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과민 반응일 터다. 사실 시리자가 승리하더라도 (시장이) 두려워할 만한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또 신민당이 이긴다 해도 그리스 정부가 장차 몇 년간 트로이카들과 해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들은 여전하다. 그리스의 문제는 누가 승리하느냐와 관계없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치프라스의 첫 번째 공약이 구제금융 조건의 재협상이다. 그는 “트로이카가 살인적 처방으로 그리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재정긴축 요건을 완화해 경제가 성장하도록 해 실업률을 낮추자는 쪽이다.

-메르켈 등이 재협상 요구를 받아줄까.
“어느 정도의 협상은 가능하다고 본다.”

-시리자는 2차 부채탕감(Haircut)을 요구할 텐데.
“그리스는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있다. 이런 빚을 줄이지 않으면 경제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누가 이기든 타협 가능성은 있다. 관건은 독일 정부가 주도한 트로이카가 양보할 수 있는 최대치와 그리스 총선 승자가 수용할 수 있는 최소치가 서로 접점을 찾을 수 있느냐다.”

글로벌 시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는 트로이카-그리스 협상이 실패해 그렉시트가 일어나는 경우다. 그리스 총선이 아직 실시되지도 않았는데 이 나라 10년 만기 국채 금리(만기 수익률)가 연 10%를 넘나들고 있는 까닭이다. 이 금리가 2010년 7%를 넘어서자 그리스는 두 손 들고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치프라스가 협상 실패 뒤 유로존 탈퇴를 선언할까.
“아니다. 치프라스는 한 번도 유로존 탈퇴를 얘기한 적이 없다. 특정한 조건하에서 퇴출당할 수 있다고 했을 뿐이다. 치프라스와 그리스는 유로존에 남아 있고 싶어 한다. 다만 그렉시트가 벌어질 순 있다. 치프라스가 감정적으로 통과시킨 재정 조치를 트로이카가 받아들이지 않고 그리스 은행에 투입했던 구제금융을 회수하는 경우다.”

-최악의 상황으로 들린다.
“그러면 그리스 시중은행이 곧 지급불능 상태에 빠진다. 치프라스가 시중은행을 되살리기 위해 유로존을 탈퇴하는 상황에 몰리는 것이다(유로화 자금이 고갈돼 결국 옛 통화인 드라크마를 찍어내 시중은행에 공급하는 상황에 몰린다는 얘기다).”

-그렉시트 이후 불안이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등으로 전염되지 않을까.
“키프로스를 빼곤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내 생각엔 그리스가 떠난다면 키프로스도 같이 떠날 것이다. 하지만 여타 국가로 번질 것 같지 않다.”

굿하트 교수는 영국 중앙은행(BOE)의 통화정책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통화정책위원회는 기준금리를 조정하는 권한을 가진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실물경제에 대한 감각을 갖춘 그의 눈에 유로존 물가 상황이 어떻게 비칠지 궁금했다.

-지난해 12월 유로존 소비자물가가 한 해 전보다 0.2% 떨어졌다. 디플레이션의 시작일까.
“꼭 그렇게 판단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유가 붕괴와 원자재 등 가격이 상당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이로운 일이다.”

-일본식 장기불황을 걱정하는 전문가도 있다.
“유로존의 내수가 너무 위축됐다는 게 문제다. 특히 그리스의 경우다. 그래서 상당히 많은 이가 그리스에 처방된 긴축정책이 지나치다는 시리자의 주장에 남몰래 동조하고 있기도 하다.”

-ECB의 마리오 드라기 총재가 양적완화(QE)를 실시할까.
“당장 하진 않을 것이라고 본다. 현재 장단기 채권의 금리가 아주 낮다. 나는 그가 지금 당장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쪽이지만 ECB 통화정책위원회 직후 그리스 총선이 있다. 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드라기가 ‘유럽의 금융 시스템에 유동성을 투입하는 추가 조치를 취할 때라는 게 통화정책위원의 생각’이란 말을 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정확한 세부사항이나 구체적인 조건들이 몇 주 내에 발표되지는 않을 것이다.”

-ECB가 QE를 실시하면 효과가 있을까.
“어느 정도는 있을 것으로 본다.”
요즘 미국 경제 전문가들은 올 한 해 미 경제가 둔화 조짐을 보이는 유럽·중국 등과 탈동조화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굿하트 교수는 “미국이 홀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왜 그렇게 보나.
“안 그럴 이유가 있나. 미국 경제는 효율적이고 생동감이 있다. 특히 유가 등 에너지가격 하락으로 미국 경제가 혜택을 보고 있다. 한국도 유가 하락 덕을 보고 있지 않나.”



찰스 굿하트 영국 이튼칼리지와 케임브리지대를 거쳐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은행(BOE)의 통화정책위원회(MPC) 구조를 설계했을 뿐만 아니라 1997~2000년엔 MPC 위원으로 활동했다. 한국은행 초청으로 2013년 한국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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