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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사람도 파리도 오징어도 … 생존 위해 눈을 만들었다

중앙선데이 2015.01.18 02:03 410호 25면 지면보기
잠자리의 겹눈. 눈마다 3만 개 이상 있는 렌즈가 각각 만든 상(像)이 모자이크를 이뤄 잠자리에게 세상의 풍경을 보여 준다. 곤충의 겹눈엔 척추동물의 눈에 존재하는 수정체가 없다.
“들판을 걷다가 시계를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시계의 출처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21> 눈은 창조와 진화 중 누구의 작품인가?

시계가 자연에서 저절로 생겨났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계는 누군가가 떨어뜨린 것이다. 그리고 그전에 누군가가 설계하고 만들었다. 아주 명확한 사건이다.

그렇다면 시계보다 훨씬 복잡한 생명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1802년 영국의 성공회 신부이자 자연사학자인 윌리엄 페일리는 시계의 비유를 통해 구조가 엄청 복잡한 생명체는 자연에서 저절로 생겨난 게 아니라 신의 직접적인 개입하에 창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소위 창조과학 진영의 사람들은 페일리의 시계 변증을 즐겨 인용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예는 바로 ‘눈’이다.

2% 부족한 사람의 눈
눈의 가장 바깥층엔 흰자위에 해당하는 공막과 검은자위에 해당하는 각막, 두 기관을 덮고 있는 결막이 있다. 중간층엔 빛의 양을 조절하는 홍채, 카메라의 렌즈에 해당하는 수정체, 망막에 상(像)이 정확히 맺히도록 수정체의 두께를 조절하는 모양체, 눈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카메라의 어둠상자 역할을 하는 맥락막이 있다. 눈의 가장 안쪽엔 카메라의 필름과 같은 망막이 있다. 여기에 물체의 상이 맺힌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안와(眼窩·눈구멍) 안엔 눈을 움직이는 12개의 근육이 자리 잡고 있다.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의 초점은 자동적으로 일치한다. 사람이 여러 줄로 서 있으면 아무리 좋은 카메라로 찍어도 모든 사람에게 완벽한 초점을 맞출 순 없다. 하지만 사람의 눈은 아무리 여러 줄로 서 있어도 모든 사람을 초점을 제대로 맞춰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한 부분이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시력이 떨어지거나 눈이 멀게 된다. 사람에게 눈처럼 복잡하고도 정교한 구조가 또 있을까!

창조주의자들은 “이렇게 복잡한 구조의 눈이 어떻게 저절로 생겼겠느냐”고 묻는다. 눈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눈의 각 구조가 완벽하게 배치돼야 하는데, 이것은 어떤 절대자의 의도에 따라 탄생한 창조물이 분명하다고 한다. 물론 여기서 절대자란 기독교의 유일신이다.

난 여기서 신의 존재 유무를 따지려는 게 아니다. 그것은 논외의 문제다. 신의 존재와 설계를 전제해야만 눈의 복잡성을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다. 신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고도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면 그 설명을 따르는 것이 ‘오컴의 면도날’ 방식의 명쾌한 사고가 아닐까. ‘오컴의 면도날’은 14세기 영국의 논리학자이며 프란체스코회 수사였던 윌리엄 오컴(william Ockham)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2개의 주장이 있다면 간단한 쪽을 선택하란 뜻이다.

우선 창조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사람의 눈은 절대로 완벽한 구조가 아니다. 지구엔 다양한 종류의 눈이 존재한다. 첫 번째 눈은 지금부터 약 5억4300만 년 전에야 겨우 탄생했다. 생명의 역사 38억 년을 1년으로 축소한다면 11월 3~4일께이니 지구사적으로 눈은 극히 최근에야 생겨난 셈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삼엽충이었다.

삼엽충의 겹눈. 삼엽충의 수정체는 지구에 가장 흔한 광물인 방해석으로 구성돼 있다. 쉽게 말해 투명한 돌이다. 미국에서 방해석으로 삼엽충의 눈을 모방해 사진을 찍어 봤는데 괜찮은 상이 맺혔다.
사람의 눈에 존재하는 맹점, 오징어엔 없어
삼엽충의 눈은 복잡하지 않았다. 삼엽충의 수정체는 맑은 방해석이었다. 방해석은 탄산칼슘 결정체로 지구에서 가장 흔한 광물이다. 석회암과 대리암도 주성분은 방해석이다. 대리암의 다양한 무늬는 불순물의 결과일 뿐이다. 결국 삼엽충의 눈은 투명한 돌이었던 것이다. 삼엽충의 눈엔 한 개에서 수천 개에 이르는 방해석 렌즈들이 미묘하게 다른 방향으로 놓여 있었다. 각각의 렌즈가 만들어 낸 상이 모자이크 돼 삼엽충은 고생대의 바다 환경을 볼 수 있었다.

삼엽충의 눈은 아주 단순한 구조였지만 지구 생명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동물들은 그 후 빛에 반응해야 했다. 눈은 가장 강력한 진화의 압력으로 작용했다. 가만히 있으면 몸에 있는 구멍을 통해 들어온 플랑크톤을 소화시키고 다시 그 구멍으로 배설하는 등 그야말로 우연에 맡기는 생존전략을 채택하던 동물들은, 눈의 탄생 이후 목표를 명확히 정하고 추격하는 포식자와의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워졌다. 눈의 등장은 진화의 가속페달이 됐다. 포식자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몸에 위장 색을 가져야 했고, 포식자의 추격을 피할 수 있을 만큼 능란한 헤엄 실력을 갖춰야 했으며, 정 안 되면 바다 바닥에 깊은 굴을 파서라도 몸을 숨겨야 했다.

그런데 과연 삼엽충은 돌멩이 눈으로 제대로 볼 수는 있었을까? 궁금하면 직접 해 보면 된다. 1972년 미국의 스미스소니언협회는 방해석으로 삼엽충의 눈을 모방해 사진을 찍어 봤다. 나름대로 괜찮은 상이 맺혔지만 현생 곤충의 겹눈 성능보다는 한참 떨어졌다. 절대자는 왜 같은 절지동물인데 현생 곤충과 삼엽충의 눈에 차별을 뒀을까?

그렇다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의 눈은 어떨까? 인간은 시력이 굉장히 좋은 편이다. 사람의 카메라 눈은 복잡하긴 하지만 완벽과는 거리가 먼 구조다. 포유류의 카메라 눈에서 상이 맺히는 필름 역할을 하는 부위는 망막이다. 상식적으로 망막에 있는 혈관과 신경 다발은 망막 뒤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망막 앞쪽에 있다. 시(視)신경을 뇌와 연결하려면 어쩔 수 없이 망막에 구멍이 나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맹점’이다. 필름에 구멍을 뚫어 놓은 셈이다. 당연히 맹점엔 상이 맺힐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 조금씩 다른 각도로 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눈을 가볍게 흔들고 있다.

오징어·문어·낙지의 눈엔 맹점이 없다. 창조주의자들의 주장이 맞는다면 절대자는 사람보다 오징어의 눈을 더 상식적이고 효율적으로 만든 셈이다.

‘눈을 만들어라’란 명령은 공통적
오징어와 같은 연체동물과 달리 사람의 눈에 맹점이 있는 까닭은 사람이 걸어온 진화 경로와 관련 있다. 눈이라곤 없는 세계를 상상해 보자. 곤충의 눈도 없고 물고기의 눈도 없고 포유류와 인류의 눈도 없는 세계 말이다. 동물들은 몸이 부드러운 벌레 모습으로 바다 밑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다. 동물들은 느릿느릿 움직이는 단백질 덩어리 같았다. 이때도 자연선택은 냉엄하게 작동했다. 눈이 없는 동물들도 생존 경쟁을 벌였으며 환경에 적합한 것들만 선택됐다.

어떤 동물에게 아주 우연한 기회에 희미하게나마 빛을 인식할 수 있는 세포막이 생겼다. 이 동물은 먹잇감의 위치를 어렴풋하게라도 파악할 수 있었다. 자연은 이런 동물을 선택했다. 망막의 맹점은 모든 척추동물의 공통 문제다. 척추동물의 눈은 태곳적 조상 동물의 투명한 피부 밑에 있던, 빛에 민감한 세포로부터 발달했다. 이 세포에도 세포와 신경이 연결됐고, 이 연결은 꽤 합리적이었다.

수억 년이 지나면서 빛을 수용하던 세포는 점차 함몰되기 시작했다. 시야가 좁아지면서 더 분명한 상을 얻을 수 있었다. 마침내 닫힌 공간이 형성됐고 광(光)수용체는 망막으로 변했다. 그리고 수정체와 각막이 추가됐다.

파리와 사람의 눈은 완전히 다르게 생겼다. 곤충의 눈은 겹눈이고 척추동물의 눈엔 수정체가 있다. 하지만 최신 학문인 진화발생생물학에선 “모든 동물에게 눈을 만들도록 통제하는 혹스(Hox) 유전자의 기원이 같다”고 말한다. ‘눈을 만들어라’란 명령은 모든 동물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된다는 얘기다.

눈의 진화는 초점이 명확해지는 과정이었다. 눈의 진화 과정에 등장하는 모든 형태의 눈은 현재 생물계에 존재한다. 이것은 진화는 바로 자연선택의 과정임을 말해 준다.

『종의 기원』을 쓴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비글호 항해를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윌리엄 페일리의 변증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란 아이디어를 얻은 뒤엔 페일리의 변증을 버렸다. 『종의 기원』 제2장 ‘자연 상태에서 발생하는 변이’엔 이에 대한 다윈의 논평이 실려 있다. 좀 길고 복잡하지만 인용해 보자.

“여러 가지 생물의 거의 모든 부분도 그 복잡한 생활조건과 극히 미묘한 관계를 갖고 있다. 어떤 부분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완성된 상태로 갑자기 태어났다고 하는 것은, 어떤 복잡한 기계가 완성된 상태로 발명되는 것과 같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페일리의 시계 비유에 빗대어 말하면 “시계가 어떻게 처음부터 복잡한 모양으로 발명됐겠는가? 단순한 구조에서 차츰 발달해 복잡한 시계가 됐듯이, 눈도 자연선택에 의해 서서히 복잡한 구조로 진화했다”는 말이다. 창조주의자들은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눈의 진화를 설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그들이 책을 읽지 않았든지 아니면 의도적인 왜곡이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

영국의 동물행동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사람의 눈처럼 어수룩한 구조를 ‘눈먼 시계공’에 비유한다. “망가진 시계를 갖고 수리점에 갔는데, 수리공이 눈이 멀었다면 과연 그 시계를 제대로 고칠 수 있겠는가? 우리 눈은 숙련된 시계공이 설계하고 수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눈먼 시계공이 고쳐 보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무수히 실패를 거듭하다가 요행히 똑딱거리면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137억 년 전 우주와 함께 빛이 탄생했다. 그리고 불과 5억4300만 년 전에야 삼엽충이 눈을 떴다. 그 결과 포식성이 등장하고 생태계의 구성요소들이 비로소 갖춰지게 됐다. 그 후 엄청난 속도로 진화했다. 수십억 년 동안 별다른 변화가 없던 지구가 단 5억여 년 만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만약에 눈이 없었다면 지구의 자연은 지금처럼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밤하늘의 별과 우주에 대해서도 그 어떤 찬사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눈의 탄생은 생명의 역사, 그리고 우주의 역사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다. 지구 생명체의 눈은 창조주의자들이 말하는 어떤 절대자의 완벽한 창조물이 아니라 자연선택이란 ‘눈먼 시계공’의 서투른 작품이란 것이다.



이정모 연세대 생화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본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나 박사는 아니다. 안양대 교양학부 교수 역임. 『달력과 권력』 『바이블 사이언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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