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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세속화, 꼭 부정적이진 않다

중앙선데이 2015.01.18 02:41 410호 27면 지면보기
프랑스의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에서 벌어진 테러 사건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사실 이슬람 테러는 우리에게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슬람 테러의 여파를 우리도 여러 방식으로 느끼고 있다. 해외여행을 할 때 신발까지 다 벗어 검사를 받아야 하며, 액체를 들고 탑승할 수 없는 불편함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테러 시대의 현실이다.

이슬람 테러는 종교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종교인이라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상황이 어찌 이토록 악화됐을까. 종교가 인간의 유익을 위하는 줄로만 생각했는데, 오히려 종교가 인류를 불편하게 하고 심지어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었다는 건 “종교는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리처드 도킨스의 말에 설득력을 실어줄지 모른다.

타 종교를 존중하고 모든 종교가 서로 사이좋게 지내자는 말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이해할 수도 없다. 이슬람 테러는 근본적인 원인을 잉태하고 있다. 하나는 세속화 시대 종교의 역할이며, 다른 하나는 서구화와 종교의 관계다.

먼저 세속화 시대 종교의 역할을 생각해 보자. 대한민국은 서구 문명을 받아들일 때 세속화와 기독교가 동시에 들어왔기에 둘 간의 갈등이 존재하지 않았다. 즉 잘 먹고 잘 살자는 세속화와 그리스도의 영성이라는 복음화가 동시에 진행됐다. 그 결과 정치와 종교가 분명히 분리되었고, 종교는 국가나 제도적인 권위로 강요할 수 없이 각 개인의 양심에 맡기는 사적인 영역이 됐다. 이는 매우 바람직한 모델이었다. 기독교 신앙은 원래부터 누가 강요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스스로 거듭나지 않는다면 전통이든 문화든 국가든 어느 것도 사람을 기독교인으로 만들 수 없다. 세속화 시대에 비로소 종교는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고, 국가의 힘을 빌리지 않고 그 진리 자체로서 승부해야 한다.

이슬람 국가들은 세속화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세속화란 반드시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터키는 오래전에 세속국가가 되기를 결정했다. 그 말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한다는 뜻이다.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종교에 유익하지 않다. 과거 중세 유럽 국가들은 그 사실을 경험했다. 종교는 그 자체로 힘이 있다. 국가의 힘까지 더해지면 위선과 거짓과 타락을 낳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힘이 아닌 인간의 힘을 사용하게 된다.

또 하나는 서구화다. 서구화의 물결은 이 시대에 거부할 수 없는 물결이다. 대다수 나라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서구적 가치에 기초한다. 개인의 자유, 권리, 다수에 의한 결정, 약자에 대한 배려 등이 서구적 가치의 산물이다. 이미 이슬람 국가들도 재스민 혁명을 통해 이런 가치의 유익함을 인정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왕국도 그 권력의 내부에서는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승계가 결정되고 있다. 이런 추세는 이미 수백 년 전 시작됐으니, 이슬람 국가들도 더 이상 중세의 가치관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변화와 혁신만이 살길이라고 인정하는 시대에 만일 이슬람 원리주의자들만이 중세의 방식을 고수한다면, 그것은 자신에게 손해가 될 뿐이다. 이슬람 신앙을 과거의 유물로 전락하게 만들 뿐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변화를 모두 거부하고 과거의 방식만을 고집하실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그게 아니라면 하나님은 위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신 이유는 사람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길을 내고, 사람이 생각해낼 수 있는 것보다 더 뛰어난 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김영준 소망교회 부목사를 지낸 뒤 2000년부터 기쁜소식교회 담임목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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