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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전략] YS·DJ 브랜드 파워 … 신한민주당은 창당 성공의 교과서

중앙선데이 2015.01.18 02:48 410호 28면 지면보기
김대중·김영삼 양김 지원으로 창당한 신한민주당(신민당)의 1985년 1월 18일 창당대회 모습. 기존 야당인 민주한국당(민한당)이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국정에 반영하지 못하자 이에 만족하지 못한 유권자가 대거 신민당으로 돌아섰고, 신민당은 단숨에 제1야당에 올랐다. [중앙포토]
대한민국 정당체제는 늘 가변적이다. 2015년 벽두도 예외가 아니다. 진보진영의 신당 창당, 그리고 제1야당의 당명 변경이 추진되거나 거론되고 있다. 민주화 이후 아직 30년이 채 지나지 않은 한국 정당체제의 변화는 어느 민주국가보다도 복잡하다. 창당, 분당, 합당이 매우 잦다. 현재 가장 오래된 정당이라고 해봤자 그 나이는 2~3세에 불과하다. 원내의석을 가진 정당 가운데 당명 기준으로 가장 오래된 정당은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통합진보당이었다. 2011년 12월에 창당한 통합진보당은 3년을 넘기자마자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해산됐다. 통합진보당이 사라진 현재에는 2012년 2월 출범한 새누리당이 가장 오래된 정당이다.

⑨ 창당의 전략

한국 정당사에서 가장 성공적 창당
정당의 등장과 소멸이 빈발한 한국 정당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창당은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인 1985년 1월 18일 신한민주당(신민당) 창당이다. 신민당의 주 구성원은 84년 12월 정치활동 금지에서 해제된 정치인들이었다. 김대중과 김영삼, 이 양김씨가 신민당 창당에 큰 역할을 수행했다. 당시 제1야당 민주한국당(민한당)은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국정에 반영하지 못했다. 이런 요구를 배경으로 해서 신민당은 창당됐다. 신민당은 정강정책으로 반민주적 요소 제거, 대통령직선제, 군의 정치적 중립, 언론 자유 등을 채택했다.

창당 후 20여 일 만에 치른 85년 2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은 제1야당으로 등극했다. 한 지역구에서 두 후보를 선출한 중선거구제하에서 신민당은 여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보다 당선자가 적었지만 서울과 부산에서는 민정당보다 당선자가 많았으며, 대구와 인천에서는 민정당과 당선자 수가 같았다. 선거 이후 민한당 소속 당선자 대다수는 신민당에 입당해 민정-신민의 양당구도가 형성됐다.

[그림]은 세 정당과 아홉(A~I) 유권자의 입장을 하나의 스펙트럼상에 표시한 것이다. 유권자 G, H, I는 자신들과 유사한 입장의 민정당에 투표했고, 유권자 D와 E는 민한당에 투표했다. 민정당과 민한당 사이에 있는 유권자 F는 두 정당에 대해 차별성을 느끼지 못해 기권했을 수도 있다. 유권자 A, B, C는 민정당보다 민한당에 더 가까운 입장이지만 민한당과도 차이가 크기 때문에 신민당이 없었던 선거에서는 무소속 후보에게 투표했거나 기권했을 수 있다. 신민당은 민주화를 갈망하던 유권자 A, B, C의 지지로 제도권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

실제 민정당의 85년 득표율 35.2%는 81년에서 불과 0.4%포인트 감소한 수준이었다. 민한당은 81년 22%, 85년 20%를 득표했고 한국국민당(국민당)은 81년 13%, 85년 9%를 얻었다. 85년 선거의 신민당 득표율 29%는 여러 야권 지지층에서 온 것인데, 특히 85년 무소속 득표율 3%가 81년의 11%에 비해 많이 줄었다는 사실에서 신민당의 지지자 상당수가 무소속 지지층에서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한국 유권자들에게 지지하는 정당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보기가 가장 많이 선택된다. 이는 무소속연대와 같은 당명이 사용되기도 하는 이유다.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유권자를 다 끌어모을 수만 있다면 제1당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더구나 기존 정당의 지지자 가운데 신당으로 이탈할 유권자까지 감안하면 창당에 대해 매우 낙관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런 낙관이 늘 현실화하는 것은 아니다. 유권자는 자신의 입장과 가장 유사한 정당이라고 해서 그 정당에 무조건 투표하지는 않는다. 파급력과 흡입력이 있는 정당에 투표하려 한다. 신민당의 경우 양김씨가 표를 끌어모으는 일종의 브랜드였다. 창당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정당이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창당 바람이 선거 때까지 지속됐고, 이에 신민당 공약에 공감한 유권자들은 지지를 주저하지 않았다.

신당 출현 가능성은 기존 정당의 행동에 큰 영향을 준다. 미국처럼 양당제가 정착된 곳에서는 좌파 정당의 우클릭과 우파 정당의 좌클릭으로 양당이 중도로 수렴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신당 출현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기존 정당은 만일 신당이 자신의 지지기반을 잠식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면 중도로 옮겨가는 것을 자제한다. 새로운 정당의 진입 가능성은 비슷한 정책이념을 표방해 온 기존 정당이 중도로 변화하는 것을 억제시킨다.

기존 정당들은 신당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먼저 신당과 유사한 기존 정당은 자신의 입지가 약화될 것을 우려한다. 민한당은 신민당의 창당 가능성에 대해 미리 대처하지 못했다. 신민당의 선거 참여는 제1야당 민한당 의석을 81석에서 35석으로 만들어버렸고, 그마저도 민한당 당선자 대다수가 신민당으로 이적함으로써 민한당을 다시 3석의 군소정당으로 추락시켰다. 이는 신당(신민당)이 기존 정당(민한당)을 대체한 대체재라는 의미다.

신당은 대체재뿐 아니라 보완재 속성도 지닌다. 최근 허니버터칩이라는 과자가 출현해 인기를 얻자 경쟁 제과업체들의 첫 반응은 자사 제품 매출액 감소 우려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경쟁업체들은 유사 제품을 내놓아 매출액 증가라는 혜택을 공유했다. 이는 낙수 효과로도 불린다.

민한당을 탈당한 당선자 16명이 1985년 4월 3일 신민당에 입당했다. [중앙포토]
30년 전 당시, 여당 민정당은 신민당 창당이 야권 분열로 연결돼 자신의 국정 운영에 오히려 도움이 될 거라고 전망했던 것 같다. 그러나 신민당 창당은 결과적으로 민한당 세력까지 통합한 강한 야당을 출범시켰다. 신민당의 돌풍을 예측하지 못한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 전신) 책임자는 선거 직후 경질됐다. 민한당 입장에서 신민당은 민한당을 대체한 정당이겠지만, 민한당 소속 국회의원 당선자 입장에서는 신민당이 낙수효과로 자신의 입지를 결국 보완해 준 정당이었을 것이다. 실제 한 지역구에서 두 의원을 선출하는 85년 선거에서 민한당 후보와 신민당 후보는 민주화를 위해 동반 당선돼야 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정치문화에 따라 진화된 창당 행태
창당 효과는 신당만 누리는 것이 아니다. 기존 정당도 당명 변경으로 창당 효과를 볼 수 있다. 심지어 해산된 정당도 헤쳐모여식의 창당을 모색한다. 정당을 음식점에 비유하면, 유권자는 손님에게 비유된다. 각 음식점(정당)은 더 많은 손님(유권자)을 유치하려 한다.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던 음식점에 갑자기 손님이 줄기 시작했거나 아니면 근처에 새로운 음식점이 개업했다면 인테리어를 바꿔보기도 하고, 더러운 주방이 노출되지 않게 또는 반대로 깨끗한 주방이 노출되게 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엔 풍수지리를 활용해 보고,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기도 한다. 또 종업원, 더 나아가 주방장을 교체하기도 한다. 정당도 당사 건물이나 후보 자택을 풍수지리가 좋다는 곳으로 이전하기도 하고 정책, 당직자, 후보 등을 교체하기도 한다.

이런 정도의 노력으로 매출(지지)이 늘지 않을 때에는 다른 음식점(정당)과 연대해 체인점으로 운영하기도 하고 기존 음식점(정당)을 완전 폐업시킨 후 같은 위치에 새로운 이름의 음식점(정당)을 개업하기도 한다. 이름이 바뀌면 과거와의 단절은 좀 더 쉬워진다. 새로운 당명의 사용 여부는 과거 당명의 브랜드 가치, 즉 기존 당명에 투표할 지지자 수 그리고 새로운 당명에 투표할 지지자 수를 비교해 결정해야 한다. 단순 지지자 수보다 경쟁 정당 지지자 수와의 차이가 더 중요함은 물론이다.

음식점의 기존 위치가 소비자들이 더 이상 몰리지 않는 동네라면 다른 동네로 이전할 수도 있다. 소비자(유권자)들이 여기저기 몰려다니는 문화에서는 매출(지지)을 극대화하기 위해 떴다방 식으로 여러 곳을 돌면서 개점(창당)과 폐업(소멸)을 반복하기도 한다. 물론 너무 멀리 옮기면 정치인의 평판에 악영향을 끼친다. 그렇지만 같은 장소, 같은 간판을 고집한다고 해서 다수의 소비자(유권자)가 선호하지는 않는다. 한국정치사에서 10년 이상 존속한 정당이 네 개에 불과한 이유도 바로 유권자의 정치문화 때문이고 동시에 정당의 미미한 브랜드 가치 때문이다.

창당의 성공 여부는 기존 정당들을 지지하지 않던 유권자들이 다수이고 이들을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다른 정당 지지자를 뺏어오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기존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의 지지를 확보하고 또 그 잠재적 지지자를 투표하게 만드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신당은 기존 정당이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는 곳을 공략해야 성공할 수 있다. 그 대표되지 못한 시장이 작으면 틈새시장이고, 크면 블루오션이다. 정권 쟁취를 목표로 하는 기성 정치인은 블루오션에서만 창당할 것이고, 더 작은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인에게는 틈새시장도 창당의 동기가 된다. 틈새시장인지 블루오션인지는 민심의 분포를 정확히 헤아려야 알 수 있다.



김재한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로체스터대 정치학 박사. 2009년 미국 후버연구소 National Fellow, 2010년 교육부 국가석학으로 선정됐다. 정치 현상의 수리적 분석에 능하다. 저서로는 『동서양의 신뢰』 『DMZ 평화답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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