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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작 - 와일드, 스틸 앨리스

중앙일보 2015.01.18 00:01


와일드 Wild

[매거진M] 2015 아카데미 후보 국내 미개봉영화 ②

감독 장 마크 발레

출연 리즈 위더스푼, 로라 던, 토머스 새도스키

개봉 1월 22일



절망의 나락에 빠진 여자, 길 위에서 희망을 되찾다. ‘와일드’ 의 주인공 셰릴 스트레이드(리즈 위더스푼)의 이야기다. 셰릴은 인생의 전부였던 엄마(로라 던)를 잃고 방황의 세월을 보낸다. 헤로인에 중독되고, 섹스에 집착한 그는 결국 남편(토머스 새도스키)과 이혼하고 인생의 밑바닥으로 추락한다. 그리고 자신의 처량한 상황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기나긴 여정에 나선다. 그가 선택한 곳은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미국 서부를 종단하는 장장 4285㎞에 달하는 구간이다. 셰릴은 인생의 오점을 훌훌 털어 버리기 위해 배낭 하나에 의지한 채 새로운 인생을 준비한다. 하이킹 과정에서 수많은 고비를 겪지만, 낙오하지 않고 걷고 또 걷는다. ‘와일드’는 셰릴 의 도전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극 중 주인공의 모델인 셰릴 스트레이드의 자전적 동명 회고록이 원작이다.



셰릴을 연기한 리즈 위더스푼(39), 그의 데뷔는 화려했다. ‘대니의 질투’(1991, 로버트 멀리건 감독)에서 그는 이웃집 소년과 사랑에 빠지는 시골 소녀 대니를 연기했다. 위더스푼은 이 영화에서 소녀의 풋풋한 감성을 오롯이 표현했고, 당시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리즈의 극 중 첫키스는 내 평생에 본 영화 중 몇 안 되는 완벽한 장면”이라며 극찬했다. 이후 위더스푼은 로드 무비 ‘칼라하리의 모험’(1993, 미카에 살로먼 감독), 범죄 스릴러 ‘프리웨이’(1996, 매튜 브라이트 감독) 등 다양한 장르에서 필모그래피를 쌓으며 연기력을 다졌다. 그리고 전 세계 흥행 수입 1억4000만 달러를 기록한 ‘금발이 너무해’(2001, 로버트 루게틱 감독)를 시작으로 전성기를 맞는다. 로맨틱 코미디 ‘스위트 알라바마’(2002, 앤디 테넌트 감독)가 1억8000만 달러, 코미디 ‘4번의 크리스마스’(2008, 세스 고든 감독)에서 주연을 맡아 1억6000만 달러의 전 세계 흥행 수입을 거두며 명실공히 할리우드 흥행 보증 수표로 부상했다. 그리고 마침내 ‘앙코르’(2005, 제임스 맨골드 감독)로 제7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배우로서 흥행력과 연기력이 검증된 이 시기가 리즈 위더스푼의 황금기다. 하지만 이후 리즈 위더스푼의 몇몇 영화는 평단에서 엇갈린 평가를 받았고, 흥행 성적도 저조했다. 그중 ‘에브리씽 유브 갓’(2010, 제임스 L 브룩스 감독)은 1억2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자했지만 전 세계 극장 수입은 4800만 달러에 그쳤다. 개인으로서 힘든 시기도 보냈다. 2007년 배우 라이언 필립과 이혼했고, 2013년엔 음주 운전 시비에 휘말리는 등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리즈 위더스푼의 제2의 전성기는 ‘와일드’를 기점으로 다시 시작된 듯하다. 영화 전문지 버라이어티 영화평론가 저스틴 창은 “가슴을 울리는 인내와 자기 발견의 이야기”라고 호평하는 등 외신 반응도 뜨겁다. ‘와일드’에 ‘금발의 미녀’ 위더스푼은 없다. 극 중 위더스푼은 화장기 없고, 헝클어진 머리다. 초췌하고 피곤한 모습이지만 눈빛엔 오히려 생기가 넘친다. 허물을 벗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뱀을 연상케 할 정도다. 위더스푼이 이 영화의 제작과 주연을 맡으며 애착을 보인 건 셰릴이 희망을 되찾아 가는 모습에서 자신을 보았기 때문 아닐까. 극한의 여정을 마치고 한층 단단해진 셰릴의 모습에서 배우로서 새로운 에너지를 발견한 듯하다.



지용진 기자



스틸 앨리스 Still Alice

감독 리처드 글랫저·워시 웨스트모어랜드

출연 줄리앤 무어, 알렉 볼드윈, 크리스틴 스튜어트, 케이트 보스워스

개봉 상반기 예정

줄리앤 무어(55)가 첫 번째 오스카 트로피에 도전한다. 이미 너댓 번은 수상한 느낌이지만 아카데미는 이상하리만큼 그에게 인색했다. 네 차례 수상 후보에 오르긴 했으나 10년도 더 된 이야기다. 오랜 기다림에 화답하듯 올해 무어는 ‘스틸 앨리스’로 가장 유력한 여우주연상 후보로 꼽히고 있다. “줄리앤 무어의 영화 이력 중 최고의 연기”라는 외신의 호들갑스런 칭찬과 함께 수상 가능성은 날로 높아지는 중이다.



‘스틸 앨리스’에서 무어는 주인공 앨리스를 맡았다. 앨리스는 언어의 기원과 구조를 연구하는 50세의 유능한 언어학자다. 다정한 남편(알렉 볼드윈)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삼남매를 훌륭히 키워냈다. 영화는 일과 가정, 어느 하나 부족한 게 없어 보이는 앨리스의 평온한 인생에 조발성 알츠하이머라는 비극을 드리운다. 젊은 날 지적 능력을 모두 소진해서일까. 앨리스는 언어를, 기억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잊어버린다. 그 상실의 속도는 거세고 급격하다.



연출을 맡은 워시 웨스트모어랜드 감독은 캐스팅 과정에서 감정의 진폭이 큰 앨리스 역할에 줄리앤 무어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지적이고 복잡한 언어학자와 연약하고 순진한 알츠하이머 환자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배우 중에 무어만한 사람이 없었다. 캐릭터가 무너지는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라고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영화는 기억 상실의 고통과 절망을 묘사하는 데 힘을 쏟지 않는다. 대신 질병에 맞서 자신을 지키려는 앨리스의 눈물 나는 싸움에 집중한다. 그는 기억의 끈을 놓치 않으려 독서를 하고 퍼즐을 맞추며 암기 연습을 한다. 스마트폰에 “나의 딸의 이름은?” “내가 사는 곳은?” 등의 질문을 적고, 스스로 답을 적어 내려간다. 그가 죽음을 예비하는 과정은 담담하고 담백하다. 줄리앤 무어는 앨리스와 완벽하게 밀착돼 있다. 카메라는 앨리스의 얼굴을 정면에서 자주 클로즈업한다. 대사 없이 눈빛만으로 감정을 표출해야 하는 장면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기억해내기 위해 부단히 머리를 굴리고, 기억해내지 못함에 허탈해한다. 무어의 에메랄드 눈빛엔 삶의 의지와 피로, 분노와 공허가 수시로 교차한다.



무어는 대본이 나오기 전, 동명 원작 소설만 읽고 출연을 결정했다. 촬영 4개월 전부터 알츠하이머 환자·연구원·병원 클리닉 관계자를 만나 자문을 구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알츠하이머 진행 과정에 따른 신체의 미묘한 변화를 정확히 표현하려 노력했다. 알츠하이머 기억력 테스트도 받았는데 그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이 실제 환자처럼 무척 두려웠다”고 말했다. 영화가 종반으로 갈수록 앨리스의 표정은 진공 상태에 가까워진다. 하지만 그는 ‘스틸 앨리스(여전히 앨리스)’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딸(크리스틴 스튜어트) 앞에서 더듬거리며 끈질기게 단어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한 인간이 존엄을 유지하며 죽음으로 향하는 숭고한 여정이다.



‘스틸 앨리스’의 기품 있고 절제된 연기는 지금껏 줄리앤 무어가 쌓아온 연기 내공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 옴니버스물 ‘공포의 3일밤’(존 해리슨 감독)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인 이후, 그는 25년간 5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스크린을 압도하는 연기로 무수히 많은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무어처럼 불혹을 넘어서도 다채로운 연기를 해내는 여배우는 많지 않다. 그는 멜로부터 코미디, 스릴러, 공포, 시대극까지 자유자재로 변용이 가능한 배우다. 로버트 알트먼, 코엔 형제, 구스 반 산트, 폴 토머스 앤더슨, 토드 헤인즈 등 예술 감독이 즐겨 찾는 배우이면서 ‘어쌔신’(1995, 리처드 도너 감독) ‘쥬라기 공원2:잃어버린 세계’(1997,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한니발’(2001, 리들리 스콧 감독) 같은 오락영화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지난 1년만 돌아봐도 ‘스틸 앨리스’를 비롯해 블럭버스터 ‘헝거게임:모킹제이’(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맵 투 더 스타’ 에 출연했다. 무어는 한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수시로 전학을 다녔다.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자주 변신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배우로서 캐릭터를 관찰하고, 해석해서 창조하는 능력을 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연기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것은 그가 파격을 즐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는 일탈이다. 제도권에서 이미 일탈해 있거나, 억압에 못 이겨 일탈을 감행하는 역할을 즐겨 맡았다. 우아하게 웃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창백한 피부 너머엔 불안과 위태로움, 고독이 웅크리고 있다. 최신작 ‘맵 투 더 스타’를 보자. 그는 어린 시절 학대받은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한물간 여배우를 연기하며 내면까지 벌거벗은 통제 불가능한 인간상을 보여줬다. 대표작인 ‘파 프롬 헤븐’을 비롯해 ‘디 아워스’ ‘세이프’(1995, 토드 헤인즈 감독) ‘매그놀리아’(1999,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 등에선 가정에 속박된 주부가 짓눌린 욕망 앞에서 갈등하며 인간의 불완전함을 깨닫는 과정을 생생하게 구현해냈다. 무어는 한 인터뷰에서 “왜 문제 있는 여성을 주로 연기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다. 영웅이 될 수도 없다. 인간은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없다. 내가 나의 적이 되기도 하고, 나의 비극을 만들기도 한다. 그것이 인간이며 그런 영화에 끌린다.”



이야기가 훌륭하다면 노출 연기도 꺼리지 않는다. 그는 누드로 인간의 민낯을 보여준다. 냉소적인 예술가로 출연한 ‘숏 컷’(1993, 로버트 알트먼 감독)에서 하반신을 그대로 드러낸 채 신경질을 부리는 장면은 그를 배우로서 각인시킨 결정적 순간이었다. 이 대범하고 실험적인 배우에게 3대 주요 국제 영화제는 연기상을 수여했다. 2002년 ‘파 프롬 헤븐’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2003년 ‘디 아워스’로 베를린국제영화제 그리고 지난해 ‘맵 투더 스타’로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3대 영화제를 석권한 건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62) 이후 두 번째다.



다시 ‘스틸 앨리스’로 돌아가보자. 어찌 보면 앨리스는 그가 지금껏 연기했던 수많은 캐릭터 중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지성적인 인물이다. 내면의 폭발을 밖으로 분출하기보다 스스로 방어막이 되어 안고 가길 택한다. 하지만 불완전한 자신을 인정하고 순간에 충실한 용기 있는 인물이란 점은 변함 없다. 이 영화에서 가장 뭉클한 순간은 앨리스가 알츠하이머 환자들 앞에서 짧은 연설을 하는 장면이다. 마치 배우로서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제가 고통받는다고 느끼지 마세요. 저는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애를 쓸(Struggle)뿐입니다. 이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 예전의 나로 남아 있기 위해서 순간을 살라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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