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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미래 불안했나…해외로 주소 옮긴 '상신' 리카싱

중앙일보 2015.01.15 17:17
코드명 ‘프로젝트 다이아몬드’.



6개월간 이어진 비밀 협상이 베일을 벗었다. 홍콩 최대 기업 청쿵(長江)그룹의 사업구조 개편안이 지난 9일 모습을 드러냈다. 홍콩 최고의 부호 리카싱(李嘉誠·87) 제국의 환골탈태다. 그룹 산하의 부동산 투자회사 청쿵 실업과 항만·통신·소매 사업을 관할하는 허치슨 왐포아를 합병한 뒤 부동산과 비부동산 사업으로 나눠 2개 지주 회사(CK부동산과 CKH지주회사)로 재편하는 게 새 틀의 골자다. 240억 달러 규모의 ‘세기의 합병’이다.



청쿵 실업과 허치슨 왐포아의 부동산 자산은 CK부동산으로 간다. CK부동산은 홍콩에 집중한다. 허치슨 왐포아가 최대 주주인 캐나다 허스키 에너지와 영국 이동통신회사 쓰리 등의 지분은 CKH지주회사로 이동한다. 전세계 50여 개 국의 자회사는 CKH지주회사 밑으로 들어간다. 현재 청쿵 실업의 지분 43.24%를 보유한 리카싱 일가는 합병 이후 CKH지주회사와 CK부동산의 지분을 총 30.15% 갖게 된다.



리카싱의 승부수에 시장은 주가 상승으로 화답했다. 최근 5일간 홍콩증시에서 청쿵 실업 주가는 13.5%나 올랐다. 저평가된 지주회사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고 배당금을 늘릴 것이라는 전망 덕이다. 주가가 급등하며 리카싱은 마윈(馬雲) 알리바바 회장에서 넘겨줬던 아시아 최고 부자의 자리도 탈환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15일 기준 리 회장의 재산은 305억 달러. 세계 억만장자 순위로는 15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1위다.



리카싱은 홍콩에서 살아있는 신화다. ‘상신(商神)’ 혹은 ‘초인(超人·수퍼맨)’으로 불린다. 중국 광둥(廣東)성 차오자오(潮洲)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의 침략을 피해 가족과 함께 1940년에 홍콩으로 이주했다. 아버지를 잃은 뒤 장남인 그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15살부터 외판원으로 일하며 2년 뒤에 최고의 세일즈맨이 됐다. 22살 때인 50년에 청쿵그룹의 모태인 청쿵 플라스틱을 세웠다. 이후 청쿵 실업으로 이름을 바꾼 이 회사는 홍콩 증시에 상장한 1호 기업이 됐다. 79년 영국계 홍콩 기업인 허치슨 왐포아를 사들였다. 이 때부터 홍콩은 ‘리카싱의 도시’로 불렸다. 광둥어로 리카싱의 이름과 ‘이씨 가문의 도시(李家城)’의 발음이 같기도 하지만 청쿵그룹의 막대한 영향력 때문이다. 부동산업체와 왓슨·포트리스 등 소매업체, 통신과 전력업체 등이 청쿵그룹의 우산 아래 있다. “홍콩 사람이 1달러를 쓰면 그중 5센트는 리카싱의 주머니로 들어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번 사업구조 개편으로 ‘리카싱=홍콩’이란 등식이 깨질 위기에 처했다. 청쿵 그룹의 신규 지주법인을 조세회피처인 영국령 케이맨제도에 등록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다이아몬드’가 ‘굿바이 홍콩’의 신호탄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의심을 살 이유는 충분하다. 리카싱은 최근 2년간 중국 본토의 자산을 꾸준히 처분해 왔다. 2013년 7월 슈퍼마켓 체인인 바이자(百佳)를 매각했고 상하이 루자쭈이 오리엔탈파이낸셜센터(OFC)와 베이징의 잉커센터(盈科中心)를 팔았다. 2013년 이후 처분한 부동산 규모만 250억 위안에 달한다. 중국 본토 기업 중 유일하게 투자했던 창위안(長遠)그룹의 지분도 매각했다. 반면에 리카싱은 다른 나라에서는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이미 호주와 아일랜드·네덜란드·캐나다 등에서 기업과 각종 자산을 사들이는 데 300억 홍콩달러를 투자했다.



‘홍콩 엑소더스(탈출)’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2세로의 경영 승계를 위한 포석이란 시각이 우선 나왔다. 중국의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승계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는 풀이다. 특히 중국 부동산 붕괴 조짐이 보이면서 결단을 재촉했다는 분석이다. 부동산 가격 하락의 충격이 다른 부문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선을 긋는 조치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더 주목하는 해석은 베이징과의 파열음 때문이라는 정치적 시각이다. 리 회장은 2013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 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의중과 다른 후보를 지지해 시 주석의 눈 밖에 났다는 설이 있다. 여기에 반부패투쟁에서 홍콩도 무풍지대일 수 없다는 불안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리카싱은 덩샤오핑(鄧小平)과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 등과 인연을 맺으며 사업을 확대했다. 하지만 시 주석이 이끄는 부패 척결의 칼끝이 리카싱과 가까웠던 구 권력층을 향하자 생존을 위한 탈출을 감행한다는 해석이다. 대만 언론은 “리카싱의 탈출은 시진핑 지도부의 강력한 반부패 드라이브로 홍콩 경영활동이 예전같지 않은 탓”이라고 보도했다.



불안한 홍콩의 상황도 이유다. 지난해 민주화 시위 이후 베이징의 영향력이 커지며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일단 경제 부문에서 홍콩의 본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 반환이 이뤄졌던 97년 홍콩의 국내총생산(GDP)은 중국 GDP의 18.6%이었지만 2013년에는 이 비율이 2.96%로 쪼그라들었다. 로이터통신은 이런 현상을 ‘홍콩 경제의 중국 식민지화’라고 보도했다. 금융허브 기능도 상하이로 분산돼 홍콩이 설 자리는 점점 줄고 있다. 중국의 여의주였던 홍콩이 계륵이 될 위기에 처하면서 리 회장이 홍콩을 떠나기로 결심했다는 해석이다.



시사평론가 황스쩌(黃世澤)는 대만 자유시보(自由時報) 칼럼에서 “리카싱이 그룹 본사를 영국령으로 옮긴 것은 중국과 홍콩의 사법제도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표현이자 중국의 일국양제 원칙에 불신임 표를 던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리커싱과 청쿵그룹의 행보는 97년 ‘홍콩 엑소더스’의 데자뷰다. 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두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자 많은 기업이 홍콩을 떠났다. HSBC도 본사를 영국 런던으로 옮겼다. 불안감이 사라진 뒤에야 기업들이 홍콩으로 U턴했다. 이번에도 같은 장면이 연출될 것인가. 아직까지는 알 수 없지만 리커싱의 출구전략이 ‘2차 홍콩 엑소더스’의 바로미터가 될 것만은 확실하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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