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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박정희 vs 기시, 박근혜 vs 아베

중앙일보 2015.01.15 00:05 종합 28면 지면보기
오영환
논설위원
박정희 대통령은 집권 18년 동안 한 번도 일본을 공식 방문하지 않았다. 5·16 쿠데타 반년 만인 1961년 11월 도쿄에 30시간 체류한 게 전부다.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당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러 방미하던 길이었다. 박 대통령은 72년 11월 국빈 방일할 계획이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그 직전의 10월 유신 후속 작업으로 취소했다. 당시 수행원에는 장녀 박근혜 대통령도 포함됐다. 재임 기간이나 일본과의 긴 연(緣)에 비춰 보면 방일 회수는 의외다. 국내 반일 감정,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 사건(73년), 재일동포 문세광의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74년)과 맞물려 있을지 모른다.



 61년 박정희 방일은 65년 한·일 국교정상화의 길을 열었다. 난제였던 대일 청구권을 일본의 경제협력 방식으로 하는 틀에 합의했다. 이케다 하야토 총리와의 회담에서였다. 이 합의는 이듬해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오히라 마사요시 외상 간 비밀각서(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의 모태가 됐다. 박정희가 타결을 서둔 것은 경제와 안보 때문이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자금·기술을 확보하고, 일본을 전시 후방보급기지로 활용한다는 생각이었다. 김일성은 그해 7월 소련·중국과 ‘상호원조조약’을 체결했다.



 박정희는 방일 당시 아베 신조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를 비롯한 자민당 실력자도 두루 만났다. 기시는 한·일 수교의 최대 지원자였다. 파벌 총수로서 총리 퇴임 후에도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애초 한·일 국교정상화에 소극적이던 이케다를 압박했다. 한·일 수교 당시 총리 사토 에이사쿠는 기시의 친동생이고, 시이나 에쓰사부로 외상은 그의 오른팔이었다. 기시는 전후 일본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만주국 고관, 도조 전시내각의 상공상을 맡아 A급 전범으로 체포됐다 풀려나 반공, 친미의 길을 걸었다. 기시는 그 한편으로 자주 헌법제정론자였고, 일본의 아시아맹주 신봉론자였다. 막부 말기 존왕양이(尊王攘夷)와 메이지 유신의 본산인 조슈번(야마구치현) 출신 DNA 그대로다. 묘하고도 모순적이다. 쇼와(昭和)의 요괴(妖怪)로 불릴 만하다.



 한·일 국교정상화의 다른 막후 주역은 미국이다. 51년의 한·일 1차 예비교섭은 도쿄 연합군총사령부 회의실에서 미 당국자 배석 하에 열렸다.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 “회담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다”고 했다. 한·일 수교는 미국의 냉전 전략과 떼놓을 수 없다. 박정희 방일·방미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한·일 국교정상화가 박정희-기시의 후손들이 집권한 가운데 올해 50주년을 맞았다. 미국의 한·일 관계개선 요구가 냉전 후 최고조인 점도 공교롭다. 하지만 한·일 관계 빙하기는 3년째다. 연말 연초 양국 움직임을 봐서는 외교적 서프라이즈가 있을 것 같지 않다. 위안부 문제 해결이나 정상회담 여건을 보는 시각이 판이하다. 아베 총리의 종전 70주년 담화도 변수다. 아베가 담화 역사인식에 대해 “(종전 50년) 무라야마 담화를 포함해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로서 계승하겠다”고 한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지켜봐야 한다. 아베는 무라야마 담화 당시 크게 반발했다. 역사인식 문제가 한·일 관계를 지배할 수도 있는 국면의 연속이다.



 한·일 관계 타개로 가든, 관리로 가든 두 가지가 서로에 필요할 듯싶다. 첫째는 블레임 게임(Blame Game)의 종식이다. 양국은 상대방 입장에 일일이 대응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세계를 무대로 한 외교적 대결은 소모전에 불과하다. 양국은 98년 개발도상국 원조 분야에서의 협력까지 합의하지 않았던가. 일본의 역사인식을 세계의 상식, 일본의 국격, 일본인의 양심에 맡겨볼 필요가 있다. 블레임 게임은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에 힘을 보태줄지 모른다.



 둘째는 역지사지의 태도다. 일본은 한국에서 과거사가 현대사의 일부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현재의 고통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한국은 전후 일본의 평화주의를 평가해야 한다. 과거만 봐서는 새 미래가 열리지 않는다. 양국 역사에서 불행한 시대는 우호의 시대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한·일 양국은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을 공유하는 이웃나라다. 새 반세기의 비전을 찾고 관계를 개선해야 하는 원점은 여기에 있다.



오영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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