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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국민 디자이너'라면

중앙일보 2015.01.15 00:05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
국민 여동생, 국민 가수처럼 국민 디자이너도 있다. 이상봉이다. 과거 그를 인터뷰하던 날 이를 실감했다. 대화가 이어질 수 없을 만큼 함께 사진 찍어 달라, 사인해 달라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중 대다수는 10~20대였다. 2006년 예능 프로 ‘무한도전’ 출연을 계기로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 덕에 연예인 못잖은 인기를 얻은 덕분이었다. 여기에 한글 디자인을 패션에 접목해 세계 무대에 선보이며, 앙드레 김 이후 한국 대표 디자이너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그런 그가 한순간에 젊은이들에게 공공의 적이 됐다. 의류업체 인턴과 패션디자이너 지망생 등으로 구성된 패션노조와 청년유니온이 그를 ‘청년착취대상’ 수상자로 뽑은 것. 주로 의상학과 전공자들이 학점 이수를 대체해 오는 견습생에게 월 10만원, 정규직 채용을 전제로 한 인턴에게는 월 30만원, 정직원에게는 최저임금 이하의 월급을 지급했다는 이유다. 야근수당과 교통비·식비까지 포함된 가격이다. 패션노조 측은 수상자 선정 이후 이씨와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해명과 대안을 요청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아직은 말할 때가 아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할 말은 많지만 나중에요. 지금 말을 더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패션계 전체로 봐도 좋을 리 없어요. 그저 이런 일을 통해 더 나아져야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중입니다.”



 언론의 뭇매를 맞는 심정이야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놓치고 있는 것은 스스로의 위치다. 한 회사의 대표가 아니라, 한국의 대표 디자이너라는 점이다. 수사만이 아니라 실제 그는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라는 단체의 회장이기도 하다. 그 무게감만으로도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오해가 있다면 무엇인지 알려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과연 앞으로 어떻게, 무엇을 바꿀 것인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제안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적어도 패션계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패션계 내부의 민심이 그 필요성을 더해 준다. 현업에 있는 이들은 대다수가 ‘원래 다 그렇게 시작하는 일 아니냐’는 이야기를 한다. ‘나 일할 땐 아예 무급이었다’라는 고백도 들을 수 있었다. 한 원로 디자이너는 ‘옷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우리가 오히려 가르쳐주는 거 아니냐’는 주장도 폈다. 여기에는 노동의 공급이 수요보다 많은 상황, 그러니까 패션을 하고 싶다는 이들은 많고, 국내 시장은 그 고용을 창출할 수 없으니 임금이 낮은 게 당연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잘못된 관행은 ‘원래 그런’ 일들을 다시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에게 책임감을 좀 더 부여하고 싶다. 단지 패션계만이 아니라 ‘국민 디자이너’이기에 여론이 잠잠해지길 기다리기 전에 업계에 논의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정당한 임금과 휴식을 주는 일,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일이 우선 순위다. 환상과 욕망으로 생존하는 패션 산업이 밥벌이도 안 되는 비루한 동네로 자리매김해서야 되겠나.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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