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봉 5084만원 넘으면 수당 없애자는데 …

중앙일보 2015.01.15 00:01 경제 4면 지면보기
화이트칼라 근로자에게 초과근무 수당을 주지 않는 화이트칼라 이그젬프션(exemption·예외)이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쟁점으로 부상했다. 고용노동부가 13일 연구개발(R&D)과 사무직 중 근로소득 상위자를 재량근로 대상에 추가하는 방안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하면서다. 재량근로는 근로시간 유연화를 위해 1997년 도입됐다. 업무수행방법을 근로자 재량에 위임할 필요가 있는 업무에 적용된다. 재량근로 대상자에게는 연장·야간·휴일 근무 때 수당이 지급되지 않는다. 다만 회사의 구체적인 업무지시에 따라 초과근로를 한다면 수당을 받는다.


고용부 재량근로 대상 확대 추진
사무·R&D 근로자 181만명 해당
노동계 "장시간 근로 정당화" 반발
경영계 "성과·능력따라 평가 가능"

 재량근로를 도입한 지 17년이 지났지만 재량근로제를 도입한 기업은 2011년 현재 5.1%에 불과하다. 재량근로에 대한 세부 기준이 없고, 적용 대상도 방송 프로듀서(PD)나 연구개발직 중 신상품이나 신제품 개발업무를 하는 직종으로 제한돼 있어서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가 사무직과 R&D 직종에 근무하는 근로자 중 소득 상위 25%에 재량근로를 적용할 수 있도록 개선키로 했다. 적용대상이 되는 직종과 명확한 소득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이들이 재량근로 대상이 되면 초과근무수당을 받을 수 없다. 미국에서 시행 중인 화이트칼라 이그젬프션과 같다.



 정부가 소득 상위 25%에 이그젬프션을 적용키로 한 근거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있다. 이 법 시행령 제3조 4항에 기간제법 제외대상으로 ‘근로소득 상위 100분의 25에 해당하는 자’라고 명시돼 있다. 이들은 계약직으로 일하더라도 기간제법에서 정한 각종 보호 대책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시간에 따른 보수가 아니라 성과에 따라 임금이 결정된다는 취지에서 이들을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화이트칼라 이그젬프션의 취지와 같다.



 그렇다면 정부가 제시한 소득 상위 25%의 기준을 산업현장에 적용하면 얼마나 많은 사무·R&D 종사자가 이그젬프션 대상이 될까. 현대경제연구원 우광호 연구위원이 2011년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를 재분석한 결과 14.24%가 이그젬프션의 적용을 받게 된다. 181만명이다. 2011년 연봉을 기준으로 5084만원 이상을 받는 사무·R&D 근로자다.



 미국은 1930년대 대공황을 겪으면서 일자리 나누기를 촉진하기 위해 화이트칼라 이그젬프션을 도입했다. 주급 455달러, 연봉 10만 달러 이상 받는 사무직 근로자가 대상이다.



 일본은 내년 봄에 화이트칼라 이그젬프션을 도입키로 했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일환이다. 연봉 1075만엔(9940만원)이상 고소득 전문직이 대상이다. 일본 정부는 87년 재량근로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일본도 한국처럼 재량근로 허용업무가 매우 제한적이어서 실효성이 낮았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2006년부터 화이트칼라 이그젬프션 제도 도입을 추진했지만 노동계의 반발 때문에 번번이 무산됐다.



 한국도 정부의 구상대로 화이트칼라 이그젬프션이 도입되려면 노동계를 얼마나 설득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한국노총 강훈중 대변인은 “장시간 근로를 정당화시키는 발상”이라며 “임금을 깎는 정책보다 총 근로시간부터 확 줄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계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김판중 경제조사본부장은 “업무상 재량권이 많은 직무는 근로시간 길이가 아닌 성과나 능력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며 “그런 면에서 사실상 화이트칼라 이그젬프션이라 볼 수 있는 사무·R&D직종으로의 재량근로 확대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