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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대통령에게 끌려다니는 언론

중앙일보 2015.01.14 00:05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 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은 1년 만에 열린 회견이다. 어느덧 이 나라는 대통령이 회견을 1년에 한 번만 하는 이상한 나라가 되고 말았다. 어쨌든 1년 만에 열린 거라면 긴장감이 팽팽해야 마땅했다. 문제는 쌓였고 압력은 폭발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대통령이 언론의 화살을 막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그런데 긴장은커녕 웃음이 넘쳤다. 대통령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운동장을 마음껏 뛰었다. 반면에 자신에게 불리한 계곡은 훌쩍 뛰어넘었다. 한마디로 언론의 완패다. 이는 회견 방식이 잘못된 데다 언론의 칼날이 무뎠기 때문이다.



 회견이 제대로 되려면 언론은 권력에 따져야 한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왜 그렇게 했느냐”고 물어야 한다. 그런데 그날의 질문은 그렇지 못했다. 기자들은 정해진 순서대로 주제를 제시하며 대통령의 생각을 물었다. 대통령의 생각만을 듣는다면 국정연설과 다를 게 무엇인가. 주제를 던지는 건 사회자가 할 일이지 언론의 몫이 아니다. 이날 기자들은 사회자 같았다.



 가장 큰 문제는 있어야 할 질문이 빠졌고 후속 질문도 없다는 것이다. ‘낙하산 인사’는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에서 내려오는 온갖 낙하산 인사가 공공부문을 흔드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나왔어야 하지 않을까. “선거를 도와줬다는 이유로 대통령은 78세 재미동포 출신 코미디언을 주요 공기업 감사에 임명했다. 이것이 공기업 개혁인가.”



 회견에 후속 질문이 없는 건 더 심각한 문제다. 기자는 분명히 대통령 동생 박지만 회장이 문건 스캔들에 연루된 것을 물었다. 그런데 대통령은 어물쩍 넘어갔다. 그의 입에서 ‘박지만’이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기자가 후속 질문으로 따져야 했다. 지역 편중 문제도 마찬가지다. 호남 지방지 기자가 지역 편중 인사를 거론했다. 박근혜 정권은 역대 어느 정권 못지않게 지역 편중을 보이고 있다. 국무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검찰총장·감사원장은 경남, 국회의장·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과 집권당 대표는 부산, ‘실세’ 경제부총리와 국세청장은 경북이다. 정권 수뇌부가 모두 영남인 것이다.



 국가 지도부가 특정 지역에 쏠리는 건 공무원은 물론 사회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지역감정이라는 탁수(濁水)는 위로부터 아래로 흐른다. 지도부가 편중되면 중·하위직도 쉽게 박탈감을 느낀다. 이런 정서가 생기면 공무원은 개혁에 소극적이 된다. 이런 정서는 가족과 친지를 통해 사회로 퍼진다. 실제적인 피해가 없어도 관련된 사람들은 정서만으로도 대통령에 대해 냉소(冷笑) 세력으로 변한다. 대통령이 옳은 얘기를 해도 듣지 않으려 한다. 이런 점을 잘 알기에 박 대통령도 탕평인사를 공약했던 것 아닌가.



 기자가 묻자 대통령은 편의적으로 답했다. 능력 위주로 사람을 고르다 보니 어떤 때는 어느 쪽, 또 어떤 때는 다른 쪽에 사람들이 몰린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실상과 맞지 않는 대답이다. 이 정권이 출범한 이래 영남 말고 다른 쪽으로 인사가 쏠린 적이 없다. 대통령의 답변은 호남인이 수긍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기자가 후속 질문을 던져야 했다. “영남 말고 다른 쪽으로 쏠렸던 적이 언제 있나요.”



기자들의 후속질문이 없으니 많은 게 그냥 넘어간다. 후속질문을 할 수 없는 것은 근본적으로 박 대통령 때문이다. 대통령이 회견을 1년에 한 번밖에 하지 않으니 시간이 없어 후속질문은 아예 불가능하다. 기자들은 이 문제부터 따졌어야 했다.



 언론이 권력에 밀리는 데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 권력이 두려워하는 언론이 되려면 날이 제대로 서야 한다. 언론의 칼은 사실(fact)로 갈아야 날이 선다. 권력을 추궁할 때는 확실한 근거와 사례를 들이대야 한다. 재판에서 이기려면 검사가 명백한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 것과 같다. 그렇지 못하면 피고는 무죄가 되고 그것이 반복되면 아무도 검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정윤회와 측근 3인 비서관’ 문건 파동에서 언론은 대부분 무능한 검사였다. 정씨와 3인이 1년 넘게 국정을 농단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작은 사례 하나 내놓지 못했다. 과녁을 잘못 고르니 화살은 빗나갔다. 대통령이란 권력은 고래다. 그런데 언론은 작살이 아니라 바늘을 들고 덤볐다.



 박 대통령은 회견에서 “바보 같은 일에 말려들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만 회장이 조응천·박관천에게 놀아난 것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찌라시 사기극에 휩쓸린 언론에 일침(一針)을 가한 것이기도 하다. 찔러야 할 언론이 되레 찔리고 있다. 검보다 강하다는 펜이 이 나라에서는 비실대고 있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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