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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포터 받으려면 석달 … 깊어가는 불황

중앙일보 2015.01.13 00:01 경제 2면 지면보기


최근 중소기업을 퇴직한 40대 가장 김상철(47)씨는 올 4월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잡화점을 열 계획이다. 상점 자리를 가계약한 다음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현대자동차의 1t 소형 트럭인 포터Ⅱ를 계약한 것. 계약을 서둘렀지만 빨라야 3월 중순 이후에야 차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당분간은 비슷한 가게를 운영하는 선배의 차를 빌려서 상점을 내는데 필요한 물건들을 조금씩 들일 계획이다. 그는 “포터 대기 물량이 많다는 얘길 듣고 계약을 서둘렀는데, 석달 씩이나 기다려야 하는지는 몰랐다”며 “그래도 잔고장이 적고, 혹시 나중에 중고차로 팔 때에 차 값도 좋다고 하니 조금 기다려도 포터를 구입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1월 대기 물량 1만9000대 … 불경기에 영세 자영업자 증가 상징
작년 9만6000대로 쏘나타와 비슷
봉고도 5만5000대 팔아 사상 최대
기름 덜 먹는 수동 변속 차량 인기



 현대자동차의 소형 트럭인 포터(포터Ⅱ 2015·이하 포터)와 기아자동차 봉고3(2014 봉고3)의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서 이들 차종의 판매 상황은 불황인지 여부를 가늠하는 일종의 척도로 여겨진다. 이들 차량이 필요한 자영업자의 증감에 따라 그만큼 수요가 늘거나 줄어들어서다. 현대자동차그룹 내부에선 포터와 봉고 계약 대수 추이를 놓고 ‘포터 지수’란 말도 쓰인다. 포터 출고 대기 물량이 많으면 많을 수록 그만큼 불경기이고, 출고 대기 물량이 줄어들면 그만큼 경기가 나아졌다는 의미에서다.



 12일 현대·기아차에 따르면 현대자동차의 포터는 올 1월 현재 대기 물량이 1만9000대를 넘어선 것으로 파악됐다. 파업 때가 아닌 평상시를 기준으로 포터의 대기 물량이 1만9000대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포터를 찾는 이들이 늘면서 지난해 연간 판매량은 9만5698대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현대차가 내수에서 단일 차종으로 가장 많이 판매한 쏘나타(10만8014대)의 판매 대수에 육박하는 수치다.





 기아자동차의 봉고3 역시 대기물량이 3500여대를 넘어섰다. 지금 계약하면 적어도 3주 이상 기다려야 차를 받을 수 있다. 봉고3는 지난해 5만5107대가 팔리며 사상 최대 판매 기록을 갱신했다. 현대 포터와 기아 봉고3의 지난해 판매 대수를 합하면 15만805대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국산 자동차 메이커 중 3위를 차지한 한국GM(15만4381대 판매·점유율 9.4%)의 판매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GM의 경상용차인 라보를 찾는 수요도 꾸준하다. 라보 역시 계약은 이뤄졌지만 아직 출고가 이뤄지지 않은 차량이 500여대를 헤아린다. 지금 계약해도 한 달은 기다려야 차를 받을 수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소형 트럭을 필요로 하는 자영업자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서인지 당분간은 수요에 공급을 맞추기 힘든 형편”이라고 전했다.







 포터와 봉고, 라보의 인기는 역시 불황과 관계가 깊다. 이는 통계청의 자영업자 통계 등에서도 확인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5년 488만명이던 소상공인은 2008년 520만 명을 기록한데 이어, 2012년엔 550만 명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들 자영업자 대부분이 금전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영세 자영업자로 볼 수 있는 소규모 자영업자의 누적 부채규모가 2011년 말 174조4000억 원에서, 2년 만인 2013년 말 215조5000억원으로 41조1000억원(23.6%)이나 급증했다. 그만큼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경제력이 악화된 것이다.



 이같은 현실을 반영하듯, 이들 소형 트럭 시장은 일반 자동차 시장에서 볼 수 없는 특징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수동 변속기 장착 모델의 인기가 자동 변속기 모델의 인기를 압도한다. 현대차 측에 따르면 현재 포터Ⅱ의 대기 물량 중 1만대가 수동 모델, 9000여대가 자동 모델이다. 수동 모델이 자동 변속기 모델보다 1000대 가량 더 많다. 현재 현대·기아차가 판매하는 승용차의 95% 가량이 자동 변속기를 장착하고 있다는 점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소형 트럭 시장에서 수동 모델이 인기가 더 많은 것은 소형 트럭 차주들이 철저히 경제성을 따진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사실 운전이 다소 불편할 뿐 경제성은 수동 모델이 자동 모델보다 훨씬 더 낫다. 우선 포터의 경우 자동 변속기 모델을 선택하면 차 값으로만 112만원을 더 내야 한다. 연비도 수동이 자동보다 더 뛰어나다. 포터(2.5디젤 초장축 일반캡 기준) 수동 변속기 모델의 1L 당 연비는 10㎞인데 반해 자동 변속기 모델의 연비는 L당 9.2㎞로 수동 변속기의 연비가 11.5% 더 좋다.



 유독 중고차 인기가 좋다는 점도 이들 소형 트럭의 특징이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가 운영하는 중고차 경매장터인 오토옥션에 따르면 포터Ⅱ 슈퍼캡 초장축(09년식)의 평균 낙찰가는 지난해 2분기까지 700만원선을 유지했다. 2015년형 모델이 출시된 지난해 4분기에 들어서야 평균 낙찰가가 600만원 선으로 조금 내려 앉았다. 지난해 말 새로 출시된 2015년형 포터의 중간급(골드) 모델 가격이 1700만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중고차 값이 상당히 강한 편이다. 기아차 봉고3 킹캡 중고차(09년식)도 지난해 내내 550만~600만원 선을 유지했다. 중고차 수요도 꾸준하다. 현대글로비스 오토옥션의 지난해 평균 낙찰률이 56%선이었던데 반해, 포터Ⅱ의 낙찰률은 60%선을 기록했다. 현대글로비스 강성곤 과장은 “오토옥션은 중고차 딜러들을 중심으로 수요층이 이뤄져 있는 C2B(소비자-사업체) 시장으로 딜러들은 절대 팔리지 않을 차를 사놓지 않는다”며 “전체 평균 낙찰율을 4%나 웃도는 것은 그만큼 포터Ⅱ의 수요가 탄탄하기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현대·기아차 역시 이들 차량의 공급을 늘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기아차는 지난해 광주 3공장의 생산능력을 키우면서 봉고의 시간당 생산대수(UHP)를 23.1대에서 올해 25.1대로 늘렸지만 여전히 수요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 역시 포터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특근이 한창이다. 현대차그룹 측은 “포터나 봉고는 서민의 생계를 위한 대표 차종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중소 자영업자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도 이들 차종의 차 값은 최대한 안정적으로 유지하자는 공감대가 그룹 내에 형성돼 있다”고 전했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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