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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정치인들, 민생 문제 감각 부족 … 난방열사법·칼퇴근법 배틀 실험"

중앙일보 2015.01.10 00:42 종합 13면 지면보기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달 말 시작하는 법안 경연 프로젝트 ‘나는 정치다’를 주도하고 있는 이범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 당 혁신위원이기도 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정치인들이 ‘배틀’(경연)을 한다. 특정 미션 해결에 누구 법안이 더 좋은지를 놓고서다. 선택은 국민이 한다. 이기는 의원은 자기 법안을 당론으로 만들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을 갖게 된다.

연봉 18억 수능강사서 야당 싱크탱크로 간 이범씨



 이런 별난 실험을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번 달 말부터 시작한다. 이름하여 ‘나는 정치다’다. 경연의 1차 주제로는 ‘난방열사법’이 정해졌다. 배우 김부선씨 덕에 공론화된 아파트 관리비 왜곡 문제를 입법 경연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다. 연예기획사의 ‘갑질’을 막자는 ‘JYJ법’도 엄연한 별도 주제다. 대형 연예기획사 SM이 만든 그룹 동방신기 출신으로 탈퇴 후 다른 그룹을 만들었지만 SM의 눈치에 TV 지상파 음악방송에 출연하지 못하는 JYJ 문제에서 착안했다. 이후에도 ‘칼퇴근법’ ‘급발진·에어백법’ ‘부산수호법’ 등이 줄줄이 예고돼 있다.



 고리타분한 정치권에서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 이는 이범(45)씨다. 사교육계를 주름잡던 스타 강사(과학탐구 영역) 출신이다. 한때 연봉이 18억원에 달했던 그가 석 달 전 새정치연합 싱크탱크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으로 영입됐다. 당 혁신위원으로도 임명됐다. 12일로 활동한 지 100일을 맞는 그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났다.



 - 정치인이 된 건가.



 “아니다. 적성에 안 맞는다. 직업적 정치인은 안 한다.”



 - 스타 강사나 정치인이나 비슷하지 않나.



 “남한테 얼굴 드러내는 일을 많이 했지만 성격은 내성적이다.”



 - 그럼에도 정치에 뛰어든 이유는.



 “열 받아서다. 세월호 참사로도 드러났지만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한국 상황이 열 받게 만든다.”



 - 여의도 정치를 경험해 보니 어떤가.



 “장벽 같은 게 있더라. 새정치연합뿐 아니라 새누리당, 정의당 사람도 만나봤는데 마찬가지다.”



 - 어떤 장벽인가.



 “국민들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정치인들은 모른다. 이공계, 여성, 세대 장벽이 원인인 것 같다. 정치권 사람들은 거의 다 문과다. 고교 이과 비율이 40%인 걸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된다. 이공계는 수치로 되느냐 안 되느냐를 판단하는데 여의도 정치판에선 계산이 잘 안 나온다. 젠더 장벽도 있다. 여성 의원이 너무 적다. 학부모 상담을 하면서 다양한 엄마들과 이야기해 봤는데 여성은 세계관이 다르다. 세월호 참사 때도 여성들이 받은 충격이 더 컸잖나. 그런데 여의도 정치는 그 감수성을 따라가지 못한다. 세대 장벽도 있다. 20, 30대가 별로 없어 386출신인 486, 586이 젊은 축으로 취급받는데 심각한 문제다. 그런 장벽들이 있으니 민생 문제를 의제화하는 감각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 구체적으로 어떤 감각이 떨어지나.



 “사교육, 관리비, 비정규직을 자기 문제로 인식하지 못한다. 민생 의제를 주변적인 것으로 만드는 80년대 이념의 관성이다. 난 69년생으로 386세대의 마지막 학번이다. 386세대의 ‘민중’ 개념에 의구심을 갖고 있었는데, 십여년간 상담을 해오면서 민중이 뭔지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스타 강사는 상위권뿐 아니라 중위권·하위권 학생에게도 인기가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아이를 만났다. 가출한 아이,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까지. 엄마들도 다양했다. 아이 교육을 걱정하는 엄마는 남편 몰래 산 부동산까지 털어놓더라. 그런데 정치인의 주류는 그런 소통을 안 하니 보통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에 공감하지 못하고 해결책도 내놓지 못한다. 그래서 바닥에서부터 토론해 보자는 생각에서 ‘나는 정치다’를 생각했다.”



 - 그게 뭔가.



 “우선 의원들이 법안을 놓고 경연한다. 난방열사법, JYJ법 주제에 대해선 이미 의원 2명씩 할 의사를 밝혔다. 잡음이 생길까 봐 은밀하게 의사를 타진해 봤더니 반응이 괜찮더라. 우선 난방열사법과 관련해 한 의원은 아파트 관리비를 투명화하도록 정보 공개에 초점을 맞추고, 또 다른 의원은 관리비 책정 때부터 사전 규제를 철저히 하자고 한다. JYJ법과 관련해서도 한 의원은 공정거래법 개정을, 또 다른 의원은 방송법 개정을 주장하더라. JYJ법은 한 그룹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슬로건은 ‘방송이 공정해야 한류가 발전합니다’다. 국민에게 정책 제안도 받을 거다. 첫 주제는 ‘미생법’이다. 최근 비판을 많이 받은 정부발 ‘장그래법’(비정규직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과 달리 미생들로부터 해결책을 들어보자는 거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순옥 의원이 미생들을 향해 그런 방안을 제시해 달라고 제안할 거다. ‘2010년대의 청계천이 미생’이란 문제의식에서다. 이런 것들은 결국 당론을 국민에게 맡기자는 건데, 정당 역사상 없던 일이다. 영국 노동당이 국민의 정책 제안을 심사한 뒤 전직 의원을 멘토로 붙여 당론화를 진행하지만 우리 것은 인터넷 미디어와 결합해 당론을 국민이 만들도록 하는 거라 다르다. 그동안은 의원들이 기득권을 중시해 당론을 의원총회에서 정했잖나. 3월부터는 TED(미국 유명인사 강연)처럼 의원·일반인이 하는 15분짜리 강연도 만들 거다.”



 - 법안 경연 주제로 뭐가 더 있나.



 “동거 커플 보호법도 검토했는데 프랑스와 달리 한국에선 동거 커플이 자신을 드러내는 데 소극적이니 고민이 더 필요하다. 점차 무거운 주제로 들어갈 거다. 3월에는 고리 원전의 수명 연장과 관련해 ‘부산수호법’을 할까 한다. 고리는 부산에 있다. 이런 탈핵 이슈는 향후 정의당, 녹색당 같은 진보정당과의 연대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해경은 해체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해경 성공법’도 고민하고 있다. 세월호 1주기도 다가오는데 안전사고 재발 방지 의지를 담아내는 게 목표다. 집단소송제가 증권 분야에서만 허용되고 있는데 다양한 소비자 영역에 도입하자는 ‘급발진·에어백법’도 있다.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민생 문제는 일자리 문제 아닌가.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칼퇴근법’도 가능하다. 남북 경협을 통한 일자리 창출도 중요하다. 새정치연합은 북한에 대한 태도가 명쾌하지 않다는 말을 듣는데 남북 경협이 청년 세대에 소구력이 있는 대북 정책일 수 있다. 일자리는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때도 주요 화두여야 한다.”



글=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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