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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나의 성생활'과 '나랑 상관없음'?

중앙일보 2015.01.10 00:05 종합 28면 지면보기
김연수
소설가
프랑스 소설가 모니카 사볼로의 『나랑 상관없음?』을 읽다 보니 카트린 밀레의 『카트린 M의 성생활?』이 떠올랐다. 연애를 주제로 했다는 점 외에도 실제 등장인물들과 관련한 사진들이 수록됐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진을 수록하지는 않았지만, 마찬가지로 자신의 실제 연애담을 그만큼이나 적나라한 문장으로 담았다는 점에서 또 다른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도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소설 속 주인공 MS가 실연한 뒤 받은 ‘위로의 선물’ 목록 중에는 그 소설도 들어 있었다.



 내친김에 『카트린 M의 성생활?』을 들춰보려고 책을 찾았으나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했더니 성인자료이므로 로그인하라고 했다. 로그인하니 다시 전화인증을 요구했다. 어떤 책이었는지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성인인증까지 하려니까 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거기서 포기. 대신에 책을 팔겠다는 인터넷 서점이 이 정도로 까다롭게 굴 정도로 사진의 수위가 높다는 점만 확실하게 확인했다.



 그런 밀레에 비하면 사볼로의 소설에 나오는 MS의 연애는 차분하다 못해 경건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MS가 2011년 12월 5일부터 2012년 3월 1일 사이에 XX와 신체적 접촉이 있기를 바라며 착용한 회색 스웨터 사진을 그대로 수록한 139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주석이 달려 있다. “2011년 12월 5일부터 2012년 3월 1일 사이에 MS와 XX가 성관계를 가진 횟수 : 0”?



 소설에는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사진과 함께 인터뷰 내용이 나오는데, 잡지 편집자인 사볼로가 실제로 그를 만났으리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소설 속 등장인물 MS를 작가 사볼로로, 소설 역시 실제 경험담을 그대로 옮겼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1971년생인 사볼로와 1948년생인 밀레 사이의 세대차이가 확연하게 느껴진다.



 두 책의 제목을 약간 비튼다면, 그건 ‘나의 성생활’과 ‘나랑 상관없음’의 차이쯤 될 것 같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이라는 책에는 ‘사토리 세대’, 즉 득도한 세대라는 표현이 나온다. 지금 일본의 젊은 세대는 행복이 외부에 있지 않고 자기 내면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사람들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 세대의 특성이 바로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며 산다는 점이다. 그런 관점에서 『나랑 상관없음?』의 스웨터 장면은 인상적이다. 이들에게는 어떤 스웨터를 입느냐가 누구와 자느냐만큼이나 중요한 것처럼 보이니까.



 국가경제의 관점에서는 이들은 ‘욕망하지 않는 세대’, 더 정확하게는 ‘돈 쓰지 않는 세대’로 정의된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득도라는 긍정적 표현 대신에 포기라는 부정적 표현을 넣어서 이들을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라고 부른다. 이 ‘삼포세대’에 대해 기성세대들은 진보와 보수를 가릴 것 없이 모두 부정적이다. 이들은 경제성장의 동력도, 사회개혁의 중심도 되지 못하고 별다른 목표도 없이 그저 자기만의 가치에 함몰돼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볼로의 소설을 읽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MS가 너무 안 하는 게 아니라 카트린 M이 너무 많이 한 게 아닐까? 삼포세대의 성장률이 너무 낮은 게 아니라 70, 80년대 성장률이 너무 높았던 게 아닐까? 스태그플레이션의 시대란 어쩌면 ‘너무 많이 하던’ 시절의 종말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게 연애든, 경제성장이든, 개인의 행복이든 크고 많기만을 원하던 시절은 이제 모두 끝났다. 우리 앞에는 이제 소소한 이윤을 위한 생산, 소소한 만족을 위한 소비, 소소한 행복을 위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미래가 끔찍하게 여겨질 때 우리는 과거의 젊은이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살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건 완벽한 착각이다. 유신 시절의 젊은이와 삼포세대 중 하나를 택하라면 나는 스마트폰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삼포세대를 택할 것이다. 권위주의, 일상적인 폭력, 불합리한 시스템, 제한된 정보 등 70, 80년대 젊은이들이 직면했던, 고도성장 이면의 사회적 고통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착각에서 깨어나야 지금의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모습이 제대로 보일 것이다.



김연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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