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재일기] 변호사 없이는 소송하지 말라고요?

중앙일보 2015.01.09 00:05 종합 29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노진호
사회부문 기자
대한변호사협회장 선거(12일)가 이제 3일 앞으로 다가왔다. 변호사 2만 명 시대를 맞아 후보 4명이 모두 ‘생존’을 구호로 내세웠다. 최근 로스쿨과 사법시험을 통해 연간 1500~2000명의 변호사들이 법률 시장에 진입하면서 ‘폐업’ ‘실직’에 내몰린 변호사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워진 현실을 감안해도 변호사들의 생존을 위해 법률 소비자인 국민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선거공약은 문제가 있다. ‘변호사 강제주의 확대’가 대표적이다. 변호사 강제주의란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는 소송을 낼 수 없도록 하는 제도다. 일종의 ‘나 홀로 소송 금지법’이다. 현재 중요 형사사건과 헌법재판소 사건에만 해당되는 것을 민사소송으로 전면 확대하자는 게 골자다.



 후보들은 “변호사 강제주의가 국민의 재판 받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줄 수 있다”는 명분을 내걸고 있다. 하지만 자신들의 ‘밥그릇’을 위해 소송비용 부담을 떠넘긴다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또 변호사를 선임할 능력이 없는 서민은 민사 소송을 할 수조차 없어져 ‘재판받을 권리’ 자체를 제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후보는 국가가 국선 변호사를 선임해 주자는 대안을 제시한다. 문제는 사인(私人) 간의 다툼인 민사 사건에 정부 예산을 쓰는 게 적절하느냐다. 헌법소원 등 헌법재판소 사건은 그 결과에 따라 법률이 바뀌는 등 모든 국민의 기본권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공적인 필요성이 인정된다. 형사사건도 국가의 형벌권으로부터 피고인 인권 침해를 막아야 할 필요성이 크다. 구속사건, 미성년자, 70세 이상 피고인 등으로 그 대상을 제한하고 있다.



 민사소송에도 국선 변호사를 지원하려면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현재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소송 당사자는 소송구조 제도를 통해 변호사 비용 일부를 지원받을 수 있다. 한 헌법학 교수는 “변호사 강제주의는 국민의 부담을 키워 득보다 실이 많다”고 지적했다.



 매년 배출되는 변호사를 줄이겠다는 공약도 다르지 않다. 수요자인 시민들의 입장보다 공급 규모 감축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한 후보가 “1000명으로 줄이겠다”고 외치면 다른 후보가 “700명으로 줄이겠다”고 나선다. ‘변호사 업계가 어렵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한국의 변호사법은 다른 나라들보다 두텁게 변호사의 직역(職域·직업영역)을 보호하고 있다. 변호사의 공적 역할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변호사법 제1조는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고 못박고 있다. 그러한 변호사들의 대표를 뽑는 선거에서 ‘생존권 사수’의 깃발만 나부끼고 있다.



노진호 사회부문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