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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조양호 회장의 채워지지 않은 단추

중앙일보 2015.01.09 00:05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승현
JTBC 정치부 차장대우
그의 양복은 앞섶이 열려 있었다. 사건 발생 1주일 뒤인 지난해 12월 12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번쩍이는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사과문을 읽었고, 여섯 차례 머리를 숙였다. “애비로서 국민 여러분의 너그러운 용서를 바란다”는 호소에 마음이 짠했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일문일답까지 4분여. 하지만 그의 양복 단추는 끝까지 채워지지 않았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지난 7일 구속기소되고 수사도 마무리된 지금, 조그마한 단추 하나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다. 조 회장의 단추를 관찰한 한국의 ‘갑남을녀’들이 느꼈을 갑갑함을 말하고 싶어서다. 처음 만난 이와 통성명 할 때는 물론이고 친한 직장 동료와 새해 인사를 나눌 때에도 습관적으로 양복 앞섶을 여미는 것이 평범한 직장인들의 정서라는 말이다.



그들이 조 회장의 자리에 서게 됐다면 옷 매무새를 다듬고 단추를 단단히 채웠을 것이다. 하지만 조 회장은 그런 생활 습관은 잘 모르는 듯했다. 지켜보는 이들의 기대와 달리 단추를 잘못, 아니 안 끼웠다. 생전 경험하지 않은 황망한 일에,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 수도 있다. 어찌됐든 사과의 진정성은 평가절하됐을 가능성이 크다.



 새해 벽두부터 청와대에서 들려오는 말에 ‘조 회장의 단추’와 묘한 데자뷰를 느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시무식에서 언급했다는 고사성어 ‘파부침주(破釜沈舟)’ 때문이다.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배를 가라앉힌다.”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이 말은 장군 항우가 병사들을 결사적으로 싸우게 하려고 내린 명령이었다. 청와대 문건 유출 파문과 비선 실세 의혹으로 만신창이가 된 비서실이 대통령과 국민을 위해 배수진을 치고 열심히 일하겠다는 반성문인 셈이다.



 대통령 비서실장의 진심은 과연 국민에게 전달됐을까.



 몇몇 지인으로부터 “고사성어 뜻을 듣자마자 가라앉은 그 배, 세월호가 떠올랐다”는 말을 들었다. 40대 직장맘은 “왜 하필 그런 비유를…”이라는 반문도 했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대통령 비서실장의 새해 첫 메시지는 예상치 못하게 지난해 4월 16일 이후 국민 가슴에 응어리진 슬픔을 건드렸다. 사고 당시 소통의 위기를 몸소 체험했던 청와대 대변인은 이 아슬아슬한 맥락을 예측하지 못했을까.



 조양호 회장의 사과와 김기춘 비서실장의 각오를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평범한 눈과 귀에 거슬리는 언행으로 소통을 방해하는 선택들이 아쉽기만 하다. 작아 보여도 그 폐해가 생각보다 클 수 있어서다. 양복 단추 하나 때문에 간절한 부정(父情)이 안하무인의 기업인으로 비춰질 수 있고, 고사성어 몇 글자 때문에 오롯한 충정(忠情)이 국민을 외면한다는 오해에 직면할 수 있다. 누구나 가지는 보통의 생각, 인지상정(人之常情)을 놓친 소통은 공허하고 우스꽝스럽다. 잘못 끼운 첫 단추처럼….



김승현 JTBC 정치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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