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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의 자연, 그 비밀] 빌딩풍 위력 … 풍속 3배 빨라져 사람 날아갈 수도

중앙일보 2015.01.08 00:54 종합 12면 지면보기
7일 오전 시민들이 어깨를 움츠린 채 서울 세종로 거리를 걷고 있다. 기상청은 오늘(8일)도 서울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9도까지 떨어지겠다고 예보했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더 낮을 전망이다. [뉴시스]
지난 1일 오후 4시 남대문이 건너다 보이는 서울 중구 태평로 신한은행 빌딩 앞. 탁 트인 이곳에서 1분 동안 기온과 풍속을 측정한 결과 기온은 영하 3.4도, 순간 풍속은 초속 1.5m까지 측정됐다. 체감온도는 5.7도로 계산됐다.


좁은 통로 지나며 강풍으로 돌변
같은 도심이라도 체감온도 6도 차
선진국, 빌딩 설계 때 바람길 고려

 잠시 후 이곳에서 불과 300m 정도 떨어진 빌딩 사이 골목에서는 기온이 영하 5.1도, 풍속은 최대 초속 6.3m에 달했다. 낮은 온도와 강한 바람 탓에 골목의 체감온도는 영하 12도로 나왔다.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체감온도가 6도 이상 차이 났다.



 국립기상연구소 남경엽 연구관은 “도심 빌딩으로 인해 공기(바람)의 흐름이 뒤바뀌면서 나타나는 이른바 빌딩풍(風), 혹은 도시 협곡풍 때문이다. 넓은 공간을 천천히 지나던 바람이 빌딩 사이 좁은 공간에 집중되면서 속도가 빨라진다”고 말했다.



 도시에서 줄지어 길게 늘어서 있는 빌딩들이 마치 거대한 협곡의 절벽처럼 작용하고, 그 빌딩 숲 사이를 지날 때 바람도 더욱 강해지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를 도시 협곡풍이라고 부른다. 유체가 흐를 때 단면적이 큰 곳에서는 흐름이 느리고 압력이 높지만 단면적이 작은 곳에서는 흐름이 빠르고 압력이 낮아진다는 베르누이의 원리 가 작용한 탓이다.



 도시 협곡풍은 빌딩이 높고 골목이 좁을수록 더 거세진다. 높은 빌딩이 햇볕까지 차단하면 더 춥다. 더욱이 바람이 빌딩에 부딪히면 공기 흐름이 여러 갈래로 나눠지고 빌딩 뒷면에서는 소용돌이 현상도 나타난다.





 강한 도시 협곡풍은 보행자들이나 자전거 이용자의 안전을 위협한다. 빌딩을 타고 내려오는 하향풍이 생기면 풍속이 2~3배로 증가하기도 한다. 건강한 성인이 견딜 수 있는 풍속 임계치는 초속 24m 정도로 알려져 있다. 초속 10m의 바람이 빌딩 숲에서 초속 20~30m의 강한 협곡풍으로 바뀐다면 사람이나 간판까지 날려버릴 수 있다. 초속 17m가 넘으면 태풍급 바람이다.



 서울에서는 드물지만 겨울에도 초속 10m 넘는 바람이 분다. 지난해 12월 17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예장동이나 마포구 망원동에서는 초속 11~12m의 바람이 관측됐다. 이 정도의 바람은 ‘풍력 계급’ 13단계 중 7단계인 ‘된바람(Strong Breeze)’에 해당한다. 큰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전선이 울리는 수준이다.



 독일·캐나다 등 선진국에서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도시계획을 구상할 때 협곡 현상도 고려한다. 모의 실험을 통해 도시의 바람 길이 확보되도록 도시와 빌딩을 설계하는 것이다. 사람을 위한 도시를 지을 때에도 공간 일부를 자연에 양보하는 것이 결국은 사람에게도 이롭다는 점을 새겨둘 필요가 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베르누이의 원리(Bernoulli’s Principle)=유체역학의 기본 법칙 중 하나로 18세기 스위스 과학자인 다니엘 베르누이가 밝혀냈다. 점성이 없는 기체·액체가 좁은 곳을 통과할 때에는 속력이 빨라지기 때문에 압력이 감소하고, 넓은 곳을 통과할 때에는 속력이 느려지기 때문에 압력이 증가한다는 내용이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따라 유체의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의 합이 일정하다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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