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슬픔을 담을 때 더 아름다운 그녀

중앙일보 2015.01.07 05:00
활짝 웃는 얼굴에 눈이 가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마음을 뒤흔드는 배우도 있다. 마리옹 코티아르(40)는 후자다. 누군가의 맹목적 이유가 되거나 스스로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역할에 그가 유독 맞춤한 듯 어울리는 건 그래서가 아닐까. 초기작 ‘택시’ 시리즈(1998~2003)나 ‘러브 미 이프 유 데어’(2004, 얀 사뮤엘 감독)에서 보여준 발랄한 이미지를 벗어 던진 코티아르를 진정한 배우의 얼굴로 기억하게 해준 일곱 캐릭터를 모았다. 코티아르가 이들을 연기하며 남겼던 인상 깊은 말도 함께 덧붙인다.


[매거진M] 마리옹 코티아르의 일곱 가지 얼굴

‘내일을 위한 시간’(1월 1일 개봉, 장 피에르·뤽 다르덴 형제 감독) 산드라




결코 포기하지 않는 여자‘내일을 위한 시간’(1월 1일 개봉, 장 피에르·뤽 다르덴 형제 감독) 산드라



산드라는 그 어느 때보다 힘겨운 주말을 보내야 한다. 월요일이 되면 그녀의 복직 문제를 두고 투표가 벌어질 참이다. 동료들은 병가를 마친 산드라의 복직에 한 표를 던질 것이냐, 아니면 1000유로의 보너스를 택할 것이냐를 결정해야 한다. 산드라는 주말 동안 동료들을 설득하기 위해 일일이 만나러 다닌다. 틈만 나면 안정제를 입에 털어 넣고 “난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울며 자학하던 산드라가 용기를 내 자신의 삶을 위한 투쟁을 시작한 것이다. 이 쉽지 않은 여정 속에서 그는 곤욕스러운 상황에 놓이기도, 연대를 통한 작은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 모든 과정은 산드라의 ‘내 일(My Job)’에 관한 시간이자 ‘내일(Tomorrow)’을 위한 시간이 된다.



산드라가 느끼는 모든 감정은 오르락내리락하는 곡선이 되어 코티아르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의 표정은 연약한 슬픔과 두려움, 단단한 의지와 용기 사이를 적확하게 오간다. 잠시 주저앉더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나름의 값진 성취를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한다. 카메라가 인물로부터 철저한 거리를 유지하는데도 관객이 인물에 한층 가깝게 다가가게 하는 힘은 여기서 나온다. 스타 배우와 작업하지 않기로 유명한 다르덴 형제 감독은 “스타가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코티아르가 필요했다”고 말한 바 있다.



“산드라는 현실 세계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도전이었죠.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는 것은,

미묘한 변화를 표현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거든요.”







‘러스트 앤 본’(2012, 자크 오디아르 감독) 스테파니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건져 올리는 여자 ‘러스트 앤 본’(2012, 자크 오디아르 감독) 스테파니



조련사 스테파니는 그렇게도 사랑하던 범고래 때문에 두 다리를 잃는다. 깊은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던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자신을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 삼류 복서 알리(마티아스 쇼에나에츠)와 교감하면서 조금씩 달라진다. 알리의 등에 업혀 수영을 하고, 두려움을 딛고 수족관에서 범고래를 마주하고, 예전처럼 다시 허공에 팔을 뻗어본다. 마침내 스테파니가 절망을 딛고 일어섰을 때, 그곳은 전에 없던 빛과 희망이 가득한 아름다운 세상이다.



“스테파니는 자신의 일부를 잃은 이후에 오히려 자신의 삶에 더 많은 것을 채우게 돼요. 이렇게 강렬한 여성 캐릭터가 또 있을까요?”





‘라 비 앙 로즈’(2007, 올리비에 다한 감독) 에디트 피아프




노래로 마음을 울리는 여자 ‘라 비 앙 로즈’(2007, 올리비에 다한 감독) 에디트 피아프



작고 깡마른 몸, 가느다란 눈썹을 가진 여인은 48년 동안 불꽃처럼 노래하고 사랑하다 생을 마감했다. 구걸하고 몸을 팔며 노래하던 어린 시절을 지나 세계적 가수로 성장하기까지, 또한 진정한 사랑이었던 마르셀(장 피에르 마틴)과 가슴 아픈 이별을 맞이하기까지, 에디트 피아프의 생애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들이 코티아르의 온몸을 통해 전해졌다. 표정과 말투, 손가락의 움직임 하나까지 허투루 연기하지 않은 코티아르에게는 ‘에디트 피아프의 재림’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그에게 2008년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안긴 역할이다.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Non, Je Ne Regrette Rien)’를 부르는 장면을 촬영하기 전, 꿈에서 에디트 피아프를 만난 적이 있어요.

‘도대체 어떻게 부르는 거냐’고 물었죠(웃음). 전 피아프와 제 영혼이 연결되어 있었다고 믿어요. 적어도 제가 그녀를 연기하는 동안에는요.”







‘미드나잇 인 파리’(2011, 우디 앨런 감독) 아드리아나 




과거에 머물고 싶게 만드는 여자 ‘미드나잇 인 파리’(2011, 우디 앨런 감독) 아드리아나 



“저도 아드리아나처럼 새로운 곳으로 여행할 수 있는 모든 길을 사랑해요.하지만 하루 일을 모두 마친 후 침대에 눕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큼 행복한 길은 없죠.(웃음).”







‘인셉션’(2010,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맬




기억할수록 아름다워서 더욱 슬프게 하는 여자 ‘인셉션’(2010,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맬



“나와 약속했잖아.” 누군가의 울음 섞인 한마디가 이렇게까지 고통스럽게 들릴 수도 있다니. 남편 코브(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설계한 꿈의 세계에 영원히 머물기를 택한 가여운 여자. 그런 맬이 등장하기만 하면 코브가 미친 듯이 인셉션에 집착하는 이유가 깔끔하게 설명됐다. 이토록 아름다운 트라우마는 누구라도 쉽게 떨쳐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놀런 감독이 저를 아주 피곤한 배우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캐릭터를 확실하게 이해하려고 끊임없이 질문했거든요. 그러다 놀런이 오래도록 구상한 세계를 모두 이해하려는 게 욕심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무조건 그를 따랐더니, 그제야 답이 보였어요.”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미란다(탈리아)




악당이 사랑한 여자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미란다(탈리아)



개봉 전 ‘스포일러 방지’를 위한 그녀의 깜찍한 거짓말



“제가 연기한 인물은 웨인 엔터프라이즈 이사 미란다 테이트예요. 비중은 아주 작아요. 라스 알굴(리암 니슨)의 딸은 아니랍니다.”





‘나인’(2009, 롭 마샬 감독) 루이자




쓸쓸한 옆모습으로 기억되는 여자 ‘나인’(2009, 롭 마샬 감독) 루이자



성공한 영화감독 귀도(대니얼 데이 루이스)의 곁을 지키는 아내 루이자의 마음은 늘 공허하다. 귀도는 늘 화려하고 아름다운 여인들에 둘러싸여 있다. 평생 ‘최고의 천재와 그의 팬’으로 서로에게 의지할 것 같던 둘의 관계는 삐걱대기 시작한 지 오래다. 두 사람의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루이자가 조용하게 노래를 부르는 순간, 쓸쓸함이 가득 묻어나는 그의 옆모습은 극 중 다른 수많은 여인을 모두 잊게 만드는 마법을 발휘했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8과 1/2’(1963)에서 아누크 에메가 루이자를 얼마나 눈부시게 연기했는지 잘 알고 있었죠.

하지만 그 영화를 다시 보진 않았어요. 똑같이 연기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제 고민은 지적이고 섬세한 루이자의 고통을 어떻게 표현할까, 오직 그거 하나였어요.”









이은선 기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