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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럭비 20년 버팀목 쓰러지나

중앙일보 2015.01.07 00:10 종합 25면 지면보기
10년 연속 전국체전에서 우승하는 등 한국 럭비를 대표해 온 삼성중공업 럭비팀. [중앙포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럭비 사랑은 남달랐다고 한다. 이 회장은 럭비 명문인 서울사대부고와 와세다대를 다녔다. 레슬링 선수로 뛰었던 그는 럭비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가 삼성그룹을 맡고 야구·럭비·골프를 ‘3대 스포츠’로 지정했으며, 럭비에서 투지와 추진력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이건희 회장이 직접 창단 지시
삼성, 선수 재계약 안 해 해체 위기
럭비협 "한국럭비 몰락" 긴급 호소
삼성증권 테니스단 해체설도 돌아

 1995년 삼성중공업 럭비단이 창단됐다. 영국의 기업인으로부터 “삼성 같은 대기업에서 럭비단을 운영하지 않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이 회장이 창단을 지시했다는 일화가 있다. 한국인 최초로 일본 럭비 실업팀에서 뛰었던 한동호 대한럭비협회 이사는 “창단 준비 과정에서 일본 럭비에 관한 자료를 삼성에 전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90년대 중반 삼성그룹 내에선 20여 개의 동호인 럭비팀이 자체 리그를 치렀다.



 삼성중공업 럭비단이 해체 위기에 놓였다. 대한럭비협회는 6일 서울역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중공업 럭비단 해체 중단을 호소했다. 박태웅 럭비협회 사무국장은 “기존 선수들의 재계약과 신인 선수 선발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 해체 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삼성중공업 측은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해체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럭비 관계자는 “감독과 선수들에게 해체 통보가 있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삼성중공업 럭비단은 연간 16~17억원 정도의 비용으로 운영된다. 경비절감을 위해 해체 논의가 나온 것으로 럭비협회는 파악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저유가와 저가 수주로 지난해 상반기 1002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올해 전망도 좋지 않다. 2010년부터 4년간 삼성중공업 감독을 맡았던 정삼영 국가대표팀 감독은 “지금보다 더 어려웠을 때도 잘 운영했는데 무척 당혹스럽다”고 했다.



 삼성그룹은 현재 야구·축구·농구(남·여)·배구 등 프로 스포츠와 럭비·배드민턴·탁구·테니스·태권도·육상·레슬링 등 아마 종목 팀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계열사로 흩어져 있는 스포츠단을 제일기획에서 통합·운영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축구와 남·녀 농구팀은 운영 주체가 제일기획으로 넘어갔다. 삼성은 럭비단뿐 아니라 테니스단(삼성증권) 해체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빙상팀을 만들 거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김재열 제일기획 스포츠총괄사장은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을 맡고 있다.



 삼성중공업 럭비단이 생긴 이후 한국 럭비는 1998년과 2002년 아시안게임 15인제와 7인제에서 2관왕에 오르는 등 전성기를 달했다. 원종천 협회 부회장은 “ 삼성중공업이 해체된다면 여파가 크다. 럭비가 몰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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