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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인터뷰] 통일준비위원회 정종욱 민간 부위원장

중앙일보 2015.01.07 00:09 종합 26면 지면보기
정종욱 통준위 부위원장은 “남북관계는 어느 일방의 시혜가 아니라 상호협력을 통한 ‘윈-윈 구조’로 가야만 개선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상선 기자]

남북관계가 을미년 새해 벽두의 화두로 떠올랐다. 지난해 12월 29일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가 북한에 대화를 전격 제의한 데 이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남북 간 고위급회담을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히면서다. 얼어붙은 남북관계가 분단 70주년을 맞아 모처럼 해빙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사이버 테러’를 문제 삼아 새해 업무 일성으로 대북 제재를 발동하는 등 남북의 대화가도엔 예측을 불허하는 장애물이 산적해 있다. 공들여 준비한 대화 카드를 북측에 던지고 응답을 기다리고 있는 통일준비위원회 정종욱 민간 부위원장(75)을 서울 창성동 정부청사 별관에서 만나 전망을 들어봤다.

통일헌장, 북한과 상의해 만들 것 … 과거 남북합의도 계승


-정부가 아니라 민관 합동기구인 통일준비위원회가 지난 연말 돌연 북한에 대화를 제의했다. 배경이 궁금하다.

 “남북 당국이 지난해 10월 말~11월 초 열기로 합의했던 고위급회담에 대해 북한이 해가 바뀌는데도 호응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관 합동기구인 통준위가 나선 거다. 북한과 통준위의 회담은 엄격한 의미의 당국자회담은 아니다. 하지만 신축성이 커서 대화의 물꼬를 트기 쉽다. 또 당국자회담은 의제가 대개 한두 개로 제한되지만 통준위는 경제·사회·문화 등 다루는 분야가 많다. 북한이 관심 있는 의제를 얼마든 논의할 수 있다. 얼어붙은 남북대화를 풀기 위한 새로운 접근으로 보면 된다.”

 -북한에는 통준위 같은 민관 합동기구가 없다. 그런 북한이 굳이 통준위와 대화하려 할까.

 “북한과 통준위가 만나면 민간 부위원장은 경제·문화 교류 등 소프트한 분야만 다루고 정치·군사 분야는 정부 부위원장인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전담한다. 북한이 대화에 어려움을 느낄 이유가 없다. 통준위의 위상도 눈여겨봐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7월 통준위가 출범한 이래 5개월 동안 세 차례나 회의를 주재하고 지시를 내렸다. 대통령 소속 위원회 17개 중 박 대통령이 이렇게 관심을 보여준 위원회는 없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남북 고위급회담 가능성을 시사했는데 통준위의 제안과 관련이 있다고 보나.

 “북한 최고 지도자의 신년사는 발표 직전 변수가 발생하면 내용이 바뀐다. 김 제1위원장이 통준위의 대화 제의를 받으면서 더 큰 카드를 던진 것으로 봐야 한다. 고위급회담 가능성을 언급한 건 대화가 진전되면 박 대통령을 만날 수도 있다고 시사한 걸로 보인다. 그러나 밟아야 할 단계부터 밟은 뒤 정상회담이 이뤄져야지 그렇지 않다면 쇼에 불과하다. 실무대화를 통해 서로의 생각부터 파악해야 한다.”

 -김 제1위원장이 파격적인 제안을 한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김 제1위원장이 아버지 김정일의 3년상을 마치면서 자신의 시대를 열기 위해 통 큰 제스처를 취한 것으로 본다. 북한이 고립과 재정난에서 벗어나려는 상황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제안에 진정성이 있다고 보나?

 “일단 북측을 만나 대화해 봐야 알 것 같다. 바로 답하기는 곤란하다.”

 -김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7·4 남북 공동성명도 언급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배려일까?

 “박 대통령은 의원 시절인 2002년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당시)을 만났을 때 7·4 공동성명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2000년 6·15 와 2007년 10·4 남북 공동성명도 7·4 공동성명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인식이 (남북 양측에) 있다고 본다.”

 -하지만 미국이 새해 들어서자마자 대북제재를 추가로 발동했다.

 “이미 예상했던 조치다. 상징적인 수준의 제재라 본다. 미국도 큰 틀에서 보면 관여 정책으로 대북 노선을 변경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남북대화가 진전되면 껄끄러웠던 북·미 관계도 개선시킬 수 있다.”

 - 그래도 단기적으로는 한·미 간에 북한을 놓고 균열이 일어난 것 아닌가.

 “이번 조치가 (남북대화 무드에) 좋은 건 아니지만 큰 영향이 없기 바란다. 미국이 어떤 후속조치를 할지 궁금하다. 그 경우 우리 정부와 협의해야 할 것으로 본다.”

 -북한은 통준위가 대화를 제안한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 노동신문에서 통준위를 강도 높게 비난했는데.

 “문제의 노동신문 6면 기사는 통준위의 대화 제의 이전에 미리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또 내용을 보면 대화 제의 자체에 대한 비난은 없다. 따라서 이를 두고 북한이 통준위의 대화 제의를 거부했다고 보는 건 속단이다. 그동안 통준위에 한두 번씩 던져 온 부정적 코멘트의 일환으로 보면 될 거다.”

 - 황병서 등 북한 최고위층 3명이 지난해 10월 전격 방남해 남북 고위급회담을 약속하고 돌아갔다. 그럼에도 회담이 열리지 못한 건 정부가 대북 전단 살포를 막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

 “정부로선 법의 테두리 내에선 최선을 다한 걸로 안다. 나름대로 액션을 취한 만큼 북한도 평가할 것이다.”

 - 무슨 액션을 취했다는 것인가.

 “정부가 전단을 뿌려 온 단체들을 나름대로 설득했다. 그 결과 낮에 공개적으로 전단을 뿌려 온 단체는 전단을 살포하지 못했다. 야간에 어느 단체가 날리긴 했지만 언론에 알리지 않고 기습적으로 했다. 정부가 노력했기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 아니겠나. 이제는 우리 국민도 성숙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으로 기대한다. 과거 남북대화를 보면 늘 장애물이 있었다. 그래도 대화가 성사된 전례가 많다. 북한도 우리 특성을 이해하고 좀 대범하게 나왔으면 한다.”

 -북한과 통준위 간에 회담이 열릴 경우 북측 파트너는 누가 되나.

 “통준위가 김양건 통전부장에게 전통문을 보냈으니 대화가 성사되면 그가 나올 것으로 본다.”

 -회담에서 북한이 금강산 관광 재개와 5·24 제재 해제를 요구하면 어떻게 대응할 건가.

 “그 문제들은 정부 측 부위원장인 류 장관이 정부의 입장을 얘기하게 될 거다. (정부가 진전된 입장을 준비 중인가?) 민간 부위원장이라 답변하기가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당시 북한이 (천안함 사건에 대해) 간접적으로 유감 표명 비슷한 걸 한 게 있다. 북한의 공개사과만이 우리가 요구하는 5·24 제재 해제의 전제조건이라곤 보지 않는다. 외교 교섭엔 여러 방법이 있다. 또 남북이 이제는 서로 입장을 잘 안다. 대화를 하면 문제가 풀릴 여건이 조성됐다고 본다.”

 -북한은 통준위가 준비 중인 통일헌장에 대해서도 “북침 야망을 실현하려는 위험한 전쟁문서”라고 비난했다.

 “북한이 그런 오해를 하는데, 대화가 성사되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충분히 설명할 생각이다. 통일헌장이 그리는 미래상은 흡수통일 아닌 합의통일이다. 헌장을 만들기에 앞서 공청회를 열고 여론을 수렴할 것인데, 이와 궤를 같이해 북한과도 상의할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통일헌장 기본 구상을 북한에 설명해 주고 그들의 생각도 수용할 방침이다. 통일 청사진과 로드맵도 그렇게 만들 생각이다. 통준위는 정부의 모든 대북정책은 기존 합의를 승계·발전시킨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7·4 남북 공동성명과 남북 기본합의서, 비핵화 선언, 6·15 등이 그것이다.”

 -통준위가 북한과 성사시키려는 가장 중요한 어젠다는 뭔가.

 “이산가족 상봉이다. 박 대통령이 2002년 방북 때 가장 먼저 거론한 것도 이 문제다. 통준위가 북한에 대화를 제의한 시점(지난달 29일)도 설 전후에 상봉이 이뤄지기를 고려한 것이다. 그밖에 분단 70주년인 올해 중에 열 계획인 세계평화회의와 DMZ 세계평화 공원 건설, 남북 축구시합 등도 중요하다. 이런 이슈는 정치·군사 문제가 풀리지 않아도 얼마든 합의할 수 있다.”

 -5·24 제재를 비롯한 정치적 긴장이 여전한데 소프트한 이슈라고 쉽게 합의될 수 있을까.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어려운 일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대화가 시작되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박 대통령이 즐겨 얘기해 온 ‘밥상론’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서양인은 한 접시 한 접시씩 코스별로 식사하지만 동양인은 밥상에 모든 음식을 올려놓고 먹지 않나. 남북은 동양인이니 모든 의제를 상위에 올려놓고 서로 실천 가능한 것부터 합의하면 된다.”

 -지난 3년간 북한은 도발과 유화책을 반복하는 갈지자 행보를 했다.

 “김 제1위원장은 아버지 김정일의 3년상 기간 중 혈통을 승계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하지만 이것만 갖고는 나라가 발전하기 어렵다는 걸 북한 지도부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북한은 변화를 시도할 것이다. 이미 북은 시장경제와 공존하며 그것을 활용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김정은 정권이 시장 세력을 없앨 수 없을 만큼 시장이 정착된 단계에 들어섰다는 건가.

 “정권이 결심하면 시장을 없앨 수는 있겠지만, 그런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박 대통령의 집권 기반인 보수세력 가운데는 흡수통일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박 대통령이 그런 입장을 무시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내가 알기론 현재 박 대통령 주변에서 북한 붕괴를 믿는 인사는 없다고 본다.”

 -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2015년 북한이 붕괴할 것’이란 지론을 갖고 있지 않았나.

 “잘은 모르지만 남 전 원장이 재직하던 당시엔 남북 간에 워낙 대화가 안 되던 상황이라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닌가 한다. 하지만 흡수통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시도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지금 북한은 안정된 상태다. 또 김정은 체제가 본격적인 가동을 개시했다. 김정은 없는 북한은 체제 속성상 상상할 수 없다. 김정은 체제는 꽤 오래갈 것이고 북한은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우리가 북한과 대화하려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올해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나?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러나 정상회담을 인위적으로 밀어붙이면 성사될 가능성은 적다. 설사 이뤄져도 남북관계 발전에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8월처럼 시한을 정한다든지 남북대화의 모든 움직임을 정상회담과 결부시켜 해석하면 안 된다. 21년 전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다룬 바 있다. 회담이 성사되기 직전까지 갔지만 김일성의 급서로 없던 일이 됐다. 남북 정상회담은 역사가 만들어 주는 것이다.”

 -친박계 정치인 일부는 ‘올해 획기적인 대북지원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될 것’이라 주장하는데.

 “북한에 뭘 준다는 식으로 접근해선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없다. 북한이 우리를 도와줄 것도 있다. 남북관계는 일방 아닌 쌍방통행이다.”

 -박 대통령이 말로는 북한과 대화를 강조하지만 5·24 제재 해제 같은 구체적 행동은 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그의 의식 기저엔 북한 붕괴와 흡수통일이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

 “아니다. 나는 박 대통령이 흡수통일을 거론하는 걸 들은 적이 전혀 없다. 박 대통령 철학의 중요한 부분은 ‘평화통일’이다. 직접 평화통일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통준위도 평화통일을 논의하고 있을뿐 흡수통일은 과제에 전혀 들어 있지 않다. 통준위 내 4개 분과 가운데 사회·문화 분과와 경제 분과가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치·군사 문제는 논의하지 않는다. 북한이 통준위와 대화하면 합의에 이르기 쉬운 이유다.”

 -박 대통령의 지론이 평화통일이라면 그런 생각을 굳히게 된 배경은 뭔가

 “박 대통령은 젊은 시절 청와대에 살면서 분단을 직접 체험한 사람이다. 자서전을 보면 1974년 어머니 고(故) 육영수 여사가 북한과 연루된 재일동포 문세광의 총격으로 숨졌을 때 ‘분단 극복만이 민족적 비극을 종식하는 길이라 생각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또 박 대통령이 2002년 방북 당시 김정일과 대화한 내용을 봐도 통일에 대해 장기간 깊이 있게 생각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김정일에게 이산가족 상봉과 방한을 제안해 원칙적 차원에서 수락을 받아냈고, 1·21사태에 대한 사과도 끌어냈다. 이를 통해 박 대통령은 남북이 대화하면 관계가 풀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을 거다. 그 확신이 현재의 대북정책으로 나타난 거다.”

 -통준위는 부위원장이 정부(류길재 통일부 장관)와 민간(정종욱)의 쌍두체제다. 머리가 두 개인 조직이 잘 굴러가겠느냐는 우려도 있는데.

 “기우다. 이미 언급한 대로 정부와 민간 부위원장 간에는 역할이 분명히 나뉘어 있다. 또 류 장관과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만나고, 수시로 연락하고 있다. 2인 삼각의 공조가 잘 이뤄지고 있다.”

 -통준위가 북한에 대화를 제의한 뒤 미국·중국 등에서 반응을 들은 게 있나.

 “없었다. 주목할 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강력한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남북대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입장이 아닐까.”

만난 사람=강찬호 논설위원
사진=김상선 기자

정종욱 통준위 부위원장은 …

1940년 경남 거창 출생, 65년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75년 미 예일대 전임강사(정치학 박사), 77년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93년 대통령 외교안보수석, 96년 주중 대사, 2010년 동아대 석좌교수, 2014년 인천대 석좌교수 및 중국학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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