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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과거는 과거다

중앙일보 2015.01.07 00:05 종합 31면 지면보기
느닷없이 SNS에 대학 동기들의 단체 채팅방이 생겼다. 십수 년간 연락이 끊겼던 친구들이 “반갑다”며 분주하게 인사를 주고받는다. 새해라 그런가 보다 하다가 지난 주말 방송된 MBC 무한도전 ‘토토가(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로 생각이 뻗어나갔다. 1990년대 중반 학번, 노래방의 전성시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다. 이날 방송에 나온 노래를 들으며 그때 친구들을 떠올린 건 나뿐이 아니었구나.



 김건모·엄정화·김현정·SES·쿨·터보 등 90년대 최고 가수들이 출연해 당대 히트곡을 선보인 ‘토토가’는 7년 사이 이 방송 최고 시청률 22.2%(닐슨코리아 집계)를 기록했다. 이들의 노래로 도배된 음원사이트를 보고 있자니 마치 20년 전으로 타임슬립한 느낌이다. 친구들과의 인사는 “다음에 노래방 한번 가자”로 바뀌었다. 나 역시 대부분의 노래를 자막을 보지 않고 따라부르며 “어 아직도 가사를 다 기억하고 있네” 스스로 놀라워했다. 즐겁고 신났지만 순간순간 울컥하기도 했다. 아마 그리움 같은 거였을 게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이 방송에 쏟아지는 높은 관심에 대해 “현실이 불만족스러우니 과거에 집착하는 것”이라 정색하거나 “추억팔이”니 “퇴행(退行) 정서”니 하는 말로 분석하는 건 어딘가 억지스럽다. 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8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국제시장’에 대한 날 선 비판과 아전인수격 해석도 비슷하게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주인공이 세계 역사의 현장을 종횡무진하는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읽는 느낌으로 ‘국제시장’을 보면 안 되는 건가. 이 영화를 봤다고 갑자기 아버지·할아버지 세대에 대한 존경과 감사가 무럭무럭 솟아오르며 새로운 대한민국의 역군이 되기를 다짐할 리 없지 않은가.



 우리는 과거의 산물이다. 재일한국인 학자인 강상중 세이가쿠인대(聖學院大學) 교수가 『살아야 하는 이유』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분명한 것은 과거는 신도 바꿀 수 없을 만큼 확실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내 인생이라는 것은 내 과거이니 나는 과거로소이다 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러니 과거를 잊고 미래로 향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더 좋은 과거를 만들기 위해 오늘을 충실히 살자는 이야기였다. 나의, 우리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과거를 이런저런 관점으로 성찰하며, 즐거운 과거는 되새김해 즐기면서 살아가면 될 일 아닐까. 과도한 해석과 불필요한 논쟁이 추억을 소비하는 즐거움을 자꾸 빼앗는 것 같아 하는 말이다.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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