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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10가지, 이해인 수녀에게 묻다

중앙일보 2015.01.02 07:11




이해인 수녀는 해방둥이다. 광안리 수도원에서 새해를 맞은 그에게 10가지 물음을 던졌다. 지난 삶에 대한 소회를 풀어낼 때는 문득문득 영화‘국제시장’의 풍경들이 겹쳤다. 해방둥이로서 공유했던 역사의 생채기들, 이해인 수녀 역시 그 길을 헤쳐왔기 때문이다. 답변 말미에는 암투병 중에 수도자로서 더 깊게 깨달아가는 ‘일상의 신비’도 고백했다.





1. 해방 70년이다. 1945년에 태어났다.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나?

“어머니 고향인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났다. 아기가 아주 순하고 착했다고 한다. 3일 만에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 아기를 영세시킨 아일랜드 구신부님(나중에 주교가 되심)이 “이 아기는 코도 예쁘고 이목구비가 또렷하네? 수녀 되면 좋겠네?”하셨다”고 어머니가 종종 이야기하셨다. 태몽도 두 가지다. 하나는 산에서 어머니가 순금을 캐서 앞치마에 담는 것, 또 하나는 아름다운 달 속의 선녀를 본 것이다.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자주 말씀하셨다.”



2. 70년 살면서 가장 감격스런 순간과 안타까웠던 순간은?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은 여섯 살 때 일이다. 1950년 9월이었다. 아버지(이대영)는 그때 금융조합에 다녔다. 식량을 구하러 경기도에 있는 숙부님댁을 다녀오시다가 납치돼 행방불명됐다. 아직도 소식을 모른다. 어디선가 돌아가셨을 거지만.

가장 감격스런 순간은 6ㆍ25전쟁 때다. 고모ㆍ삼촌들과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살았다. 어머니는 동생을 데리고 다른 친척들과 함께 피난길에 올랐다. 몇 달 만에 부산에서 어머니를 상봉했을 때가 제일 감격스러웠다.”



3.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우리나라 위인 중에는 충무공 이순신이다. 『난중일기』를 읽으면서 좋아하게 됐다. 성인 중에는 어린 나이에도 덕성과 지성을 고루 갖춘 김대건 신부님이다. 그리고 현재는 늘 약자를 배려하고 인간을 깊이 사랑할 줄 아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다. 인간미와 지성미, 그리고 종종 쓴소리도 할 줄 아는 용기와 지혜, 유머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4. 대한민국이 당면한 숙제는?

“나날이 높아지는 이혼율과 자살률, 빈부격차, 각종 부패와 비리, 성폭행, 아동과 노인학대, 외모지상주의, 다문화가족 차별 등. 한 마디로 사랑까진 아니더라도 인간으로서 지켜야할 기본 의무와 도리, 도덕이 무너지고 있는 것 같다. 온국민이 각자 나라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지니고 바른 양심과 도덕을 회복하는 노력을 구체적으로 해야 할 것 같다. 나라의 리더들 조차도 계속 남의 탓만 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5. 처음 시인이 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어린 시절 막연히 시인의 꿈을 꾸긴 했다. 어릴 적부터 읽고 쓰는 것 자체를 좋아했다. 여중 시절에는 글이 인정도 받고 시인이 돼도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가졌다. 그다지 강한 욕심을 가지진 않았다. 수녀원에 입회하고 나서는 워낙 비움과 포기의 길이라 꿈을 접었다. 우연한 기회에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6. 나의 시 중 딱 한 편 고른다면.

“아무래도 잊을 수 없는 첫사랑처럼, 반세기전 아직 견습수녀 시절에 쓴 ‘민들레의 영토’를 뽑고 싶다.”



7. 나의 시집 중 딱 하나 고른다면.

“수십 권의 책을 냈다. 시집도 역시 첫번째 시집 『민들레의 영토』(1976년 2월 초판)다. 수도자로 평생을 살겠다는 종신서원식과 맞물려서 나온 이 책이 세상에 첫선을 보였고, 이후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아직까지 이 첫시집의 제목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참 많더라.”



8. 해방둥이로 태어난 소회는.

“저는 여섯 살에 전쟁을 경험했다. 무의식적인 우울증이 좀 있는 것 같고, 그러다보니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철학적 사고도 있는 것 같다. 작고한 최인호 작가와는 해방둥이인 것만으로도 서로 감정이 통하기도 했다.”



9. 암투병을 통해 내가 깨달은 가장 큰 것 하나는.

“하루 한 순간을 헛되이 살면 안된다는 것, 행복은 가까이 있다는 것, 함께 사는 이들에겐 최선을 다해 깨어있는 사랑을 해야한다는 것 등이다. 평범한 삶에 대한 황홀함을 새롭게 느낀다. 사소한 것들에 대한 새로운 감사도 절절하다. 어느 신문사에서 소제목을 단 것처럼 ‘사랑 더 애틋해지고 감사 더 깊어지고 기도 더 간절해졌습니다’에 답이 있는 것 같다.”



10. 요즘 하루 중 가장 행복할 때는.

“아침에 광안리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다시 한 번 ‘해 아래 사는 기쁨’을 느끼면서 성당으로 향할 때. 하루의 일과를 다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 때. 그리고 수녀원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통해서 내가 쓴 시 한 톨이 어떤 사람에겐 큰 기쁨과 희망과 위로가 되었음을 들을 때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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