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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발표작 시기별로 골고루 … 미당 시의 생로병사 보여줘"

중앙일보 2015.01.02 01:07 종합 8면 지면보기
미당의 미발표시를 공개한 윤재웅 동국대 교수. 미발표작이 실린 습작노트를 손에 들고 있다. 윤 교수 뒤로 미당의 흉상이 보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미당이 지상에서 쓴 마지막 시는 본지에 실렸다. 2000년 1월 1일자 53면에 실린 ‘2000년 첫날을 위한 시’라는 작품이다. 공식적인 마지막 발표시는 시 전문지 ‘시와 시학’ 2000년 봄호에 실린 ‘겨울 어느 날의 늙은 아내와 나’이다. 하지만 이 시는 미당의 1999년 습작노트 안에 들어 있다. 2월 3일에 쓴 것으로 돼 있다. 진작에 써 둔 작품을 이듬해 발표한 것이다.


윤재웅 교수가 밝힌 습작노트
건축가 김원, 배우 윤정희 등
팬·제자들에게 복사본 나눠줘

‘2000년 첫날을 위한 시’는 당시 본지 문학담당 기자였던 문학평론가 이경철씨가 99년 말 미당 자택을 몇 번이나 찾아가는 삼고초려 끝에 어렵사리 받아낸 것이다. 당연히 더 나중에 쓴 시다.



 그로부터 15년 만에 새해 벽두를 그동안 잠자던 미당의 미발표시 ‘1995년 올해에는’으로 시작한다. 묘한 인연이다. 세월의 순환 같은 느낌마저 든다. 윤재웅 동국대 교수는 “중앙일보는 선생님이 타계한 이듬해인 2001년 미당문학상을 제정해 그 문학세계를 기려왔다. 그 때문에 미발표작들은 중앙일보 지면을 통해 소개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미발표작이 들어 있는 노트들을 수습한 직후 복사본을 대여섯 부 제작했다”고 밝혔다. 건축가 김원씨, 미당의 열성팬이었던 배우 윤정희씨, 제자인 방송작가 전옥란씨 등에게 한 부씩 나눠줬다. 창작의 고통스러운 흔적이 남아 있는 육필 원고를 소장할 만한 이들이라고 판단해서다.



 - 탄생 100주년이라 미발표작 공개가 더 의미 있다.



 “미발표작 중에는 미당이 이름 없는 잡지에 발표하고는 그 사실을 잊어버려 그간 나왔던 미당전집에서 빠진 작품들이 있다. 당신이 발표하지 않았던 작품들이라 그간 공개가 꺼려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세상에 내놓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미당 같은 큰 시인을 기억하고 기리는 방식은 단지 문인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한 나라의 문화 수준 전체와 관련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서다.”



 - 미발표작 전체를 아우르는 특징이 있다면.



 “미당은 인생도 그렇지만 평생 쓴 시 세계도 파란만장하다. 끊임없이 변모했다. 시기별로 골고루 쓰인 미발표작들은 그런 점에서 미당 시의 ‘생로병사’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가령 말년에 쓴 시들은 어린아이가 쓴 것처럼 기교 없이 자연스러워 노년의 경지를 보여준다. 젊었을 때와 달리 손을 떤 흔적도 보여 특히 애틋하다.”



 윤 교수는 “올해 미당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미당 시를 활용한 무용극과 판소리극 등 각종 공연을 제작하려 한다”고 소개했다. 뉴욕에서 ‘서정주 문학의 밤’을 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미당 시는 방대하기 때문에 단행본이나 전집의 판본에 따라 맞춤법이나 구두점 표기가 통일돼 있지 않은 것도 문제다. 미당 전문가인 이남호 고려대 교수, 최현식 인하대 교수, 이경철씨 등으로 구성된 전집 편집위원회에서 큰 방향을 잡고 전옥란씨가 꼼꼼하게 판본 대조작업을 벌여 정본을 확정할 계획이다. 건축가 김원씨가 홍기삼 전 동국대 총장에 이어 기념사업회의 새 이사장으로 내정됐다. 2월 공식 임명되면 기념사업 추진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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