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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의 노트 10권 … 잠자고 있던 시 100편 빛을 보다

중앙일보 2015.01.02 01:06 종합 8면 지면보기
수십 년간 낡은 습작노트 안에 갇혀 있던 미당(未堂) 서정주(1915∼2000) 시인의 미발표시 100여 편이 세상 빛을 본다. 그의 타계 15주년, 탄생 100주년이 되는 을미년 새해를 맞아서다.


2000년 타계 후 자택에 있던 노트
1950~99년 썼던 미발표작 담겨
애제자 윤재웅 동국대 교수가 발굴
"탄생 100주년 … 이제 공개할 때 됐다"
본지, 작품성 뛰어난 시 골라 연재

 미당의 미발표작들은 그가 남긴 10권의 습작노트 안에 들어 있었다. 미당 타계 직후 자택이던 서울 남현동 ‘봉산산방(蓬蒜山房·마늘과 쑥을 먹는 방이란 뜻·현재 미당 서정주의 집)’에서 애제자인 동국대 윤재웅(54·국어교육과) 교수에 의해 수습됐으며, 그동안 미당이 생전에 교편을 잡았던 동국대 도서관 미당자료실에 보관돼 왔다.



 윤 교수는 지난해 12월 25일 “내년은 선생님이 태어나신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니만큼 이제는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노트 안의 미발표시들을 본지에 공개했다. 또 전체 100여 편 가운데 문학성이 뛰어난 시를 가려 본지에 매주 연재하기로 했다. 시 전문(全文)을 소개한 뒤 ‘미당 전문가’인 윤 교수가 짧은 해설을 덧붙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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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당은 습작노트를 한국전쟁이 발발한 50년부터 타계 한 해 전인 99년까지 기록했다. 10권에 담긴 시편은 모두 300∼400편가량이다. 그중 120편 정도가 전집 등에 실리지 않은 미발표작이지만 20편가량은 그동안 한두 편씩 소개돼 실제 공개된 적이 없는 미발표작은 100편 정도다.



 윤 교수는 “미발표작들은 시기별로 고루 쓰여졌지만 전쟁 중이던 50년대 초반과 말년인 95년 이후 쓰인 작품이 비교적 많다”고 소개했다.



 천성이 예민한 시인이었던 미당은 한국전쟁 중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미발표작들을 검토한 인하대 최현식(국문과) 교수는 “당시 쓰인 미발표작들의 경우 비참한 생존 환경으로 인한 시인 내면의 심리적 압박감을 짐작하게 해 훌륭한 미당 연구자료가 될 것 같다”고 평가했다. 또 “아마 성에 차지 않아 발표하지 않은 작품이 상당수겠지만 미당 같은 대가(大家)의 경우 낙수(落穗)나 태작(<99C4>作·졸작)에서조차 특유의 예술적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미당의 미발표시가 담긴 습작노트들. 은행 다이어리 등 다양한 노트를 활용했다. [사진 동국대]
 미당은 10대 중반 시 습작을 시작해 99년까지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1000편이 넘는 시를 썼다.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다작이다. 그러면서도 한국어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정점에 이른 것으로 평가받는 명시를 많이 남겼다. ‘시의 정부(政府)’ ‘부족 방언의 마술사’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최 교수는 “습작노트 안의 미발표작들은 미당이 자신의 작품 수준에 대해 그만큼 엄격했음을 보여 주는 증거”라며 “그랬기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는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윤 교수가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미당기념사업회는 올해 20권이 넘는 미당전집 출간을 시작한다.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펴낸다. 윤 교수는 “미발표작들만 추려 별도의 단행본 출간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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