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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죄 재판 92건 중 실형은 1건뿐 … '식물형법' 기로에

중앙일보 2015.01.02 00:56 종합 14면 지면보기
40대 여성 직장인 A씨는 지난해 남편 B씨에게 간통죄로 고소를 당했다. 시어머니 모시는 문제로 사이가 나빠져 별거했고 이혼을 고려하던 상태였다. 유부녀라는 사실을 숨기고 C씨와 만났고 성관계를 가졌다. 광주지법 형사1부(부장 김춘호)는 지난 9월 A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간통 행위 자체는 인정하고 있는 점, 간통죄의 위헌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A씨 사례는 간통죄가 형벌로서의 실효성을 잃어가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혼인제도 유지 역할 못해" 공감대
형량 '징역 6월, 집유 1년' 이 공식
간통 판결 61%가 '아내의 바람'
헌재 이르면 이달 위헌 여부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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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는 간통죄 처벌 조항(형법 241조)에 대한 헌법소원과 위헌법률심판 사건을 심리 중이다. 당초 지난해 말 위헌 여부에 대한 결정이 선고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으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에 밀려 선고 시점이 미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르면 1월 중 선고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본지는 간통죄 위헌심판을 앞두고 전국 법원에서 지난해 6~9월 선고된 간통사건 판결문 92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실형이 선고된 사건은 간통 혐의와 함께 사문서 위조 혐의 등이 인정돼 징역 10월이 나온 1건뿐이었다. 간통죄가 이미 ‘식물형법’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92건 중 64.1%인 59건은 A씨처럼 집행유예를 받았다. 고소 취하에 따른 공소기각 판결이 28.3%로 뒤를 이었다. 선고 형량은 징역 6월(67.8%)이, 집행유예 기간은 징역 1년(66.1%)이 가장 많았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이 공식으로 굳어져 있는 셈이다. 이 공식은 한 차례 간통을 범한 경우든 50차례 간통이 인정된 경우든 동일하게 적용됐다.



 간통 재판에서 실형이 선고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가벌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법원은 사회상을 반영해 형량을 정하는데, 이미 형벌로 혼인제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08년 헌재의 간통죄 위헌심판에서 5(위헌) 대 4(합헌)의 의견으로 위헌 정족수(6명)에 못 미쳐 아슬아슬하게 합헌 결정이 나온 이후 이런 경향은 가속화됐다. 법원 관계자는 “법의 효력이 살아 있어 무죄를 선고할 수는 없지만 최하형을 선고하는 추세”라며 “상대방을 비하하거나 반성의 기미가 없는 등 죄질이 나쁠 때만 실형이 선고된다”고 설명했다. 현대판 ‘주홍글씨’로 낙인 효과만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본지의 간통 판결 분석에서 남편이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며 고소한 사건이 60.9%에 이른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성 개방 풍조가 확산되면서 간통죄가 더 이상 ‘여성의 무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대법원 관계자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난 데다 남성 쪽이 배우자 불륜에 대해 끝장을 보려는 경향이 강해진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간통죄는 1905년 대한제국 법률 제3호로 공포된 형법대전에 포함된 이래 한국 사회에서 110년간 유지해왔다. 당시엔 유부녀와 그 상대방만을 대상으로 했지만 광복 후인 53년 형법을 제정하면서 남녀 쌍벌주의가 도입됐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아내가 남편을 간통죄로 고소한 후 합의금을 받고 고소를 취하하는 사례가 많았다”며 “90년 재산분할 제도가 도입되기 전만 해도 여성이 바람 피운 남편을 응징할 수단은 간통죄 고소 말고 없었다”고 설명했다.



 헌재가 2008년 합헌 결정 후 7년 만에 간통죄의 위헌성에 대한 다섯 번째 판단을 내리게 됨에 따라 이번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예측이 나온다. 하지만 ‘시기상조’라는 반대 목소리도 여전히 유효하다. 배금자 변호사는 “최근 대법원이 ‘혼인생활이 파탄 난 이후라면 불륜 상대방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결한 상황에서 간통죄마저 폐지된다면 부부 관계를 지킬 보호막이 전부 사라지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는 “법이 국민의 이불 속까지 들여다보고 규제하는 것은 성적(性的) 자기결정권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것”이라며 “간통죄 처벌 효과도 사실상 사라진 상태”라고 말했다.



전영선·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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