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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 스님의 여운이 있는 만남] "불안하면 관계 속으로 도피하게 돼요"

중앙일보 2015.01.02 00:03 종합 27면 지면보기
혜민 스님과 김정운 교수가 중앙일보사 건물 옥상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두 사람은 옥상에 쌓인 눈에 가로로 ‘재미’, 세로로 ‘의미’를 새겼다. ‘삶은 재미있고 의미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 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만나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왠지 즐겁고 유익하고 행복해질 것 같은 사람이 있다. 나에겐 김정운 교수님이 그런 분이었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에서부터 『남자의 물건』 『노는 만큼 성공한다』까지 김정운 교수님의 책은 유머러스한 제목만큼이나 흥미로우면서도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어느 순간 나는 교수님의 팬이 되었다. 최근 『에디톨로지』라는 책을 내고 일본 유학 중에 잠시 귀국한 김정운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하얗게 눈이 내리는 날, 빨간색 머플러를 두르고 나타난 김정운 교수님은 삶의 재미와 포인트를 정확히 아는 분 같았다. 과거에 비해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즐거움을 모르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위한 좋은 조언의 말씀을 듣고 싶었다.

김정운 교수와 함께



-교수님 반갑습니다. 일본 생활은 어떠신지요?



 “일본에 있으면 좀 쓸쓸하고 외롭다가 한국에서 바쁘게 지내다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면 ‘여유가 있는 여기가 좋구나’ 하고 느껴요.”



 -처음에 어떻게 일본 유학을 가시게 되셨지요?



 “나이가 만 50세가 되었을 때 내가 다 소진된다는 느낌이 들어서 일본으로 안식년을 신청해서 갔어요. 그해 다이어리 첫 장에 ‘한 해에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써보았는데, 나도 모르게 ‘올해부터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한다’라고 쓴 것이에요. 왜 그런가 보니 제가 그동안 하기 싫은 것을 너무 많이 하고 살았더라고요. 하기 싫은 일을 하고, 만나기 싫은 사람들을 만나고, 읽고 싶지 않은 책들을 읽고. 하기 싫은 일은 가능하면 그만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생각하니,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전문적인 화가는 못되더라도 글과 그림을 같이하면 내가 남들과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더 많아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중에게 항상 유쾌한 모습만 보였던 교수님이었기에 조금은 의외의 답이었다. 아마 인지도가 높아질수록 찾는 곳이 많아지고, 넓어지는 관계와 모임 속에서 자신이 소진된다고 느끼셨던 모양이다. 지금은 삶의 주도권을 되찾으셨다고 하니 다행이다. 최근엔 글과 함께 그림을 같이 그리시면서 논리로만 쓰는 글이 아닌 감성을 공유하는 글쓰기로 행복하시다 했다. 그래서 이번엔 행복에 관해 여쭈어 보았다.



 -매년 조사에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부탄이나 필리핀보다도 낮게 나옵니다. 그리고 집단 불안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심리적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교수님이 보시기에 왜 그런 것 같습니까?



 “한국 사회가 옛날과 비교해서 경제 수준이라든지, 정치적 민주화라든지 이런 형식적인 틀은 어느 정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그 틀을 채워나갈 수 있는 ‘삶의 내용’들이 풍성하지 못해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면 즐거운지 모르는 채로 그냥 살다 보니, 자기가 느껴지지 않아 불안하고, 그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괜한 적을 만들어 정치적 이념을 가지고 싸우거나, 아니면 연예인 이야기하는 것밖에는 대화거리가 없는 삶을 살고 있어요.”



 -어떻게 해야 풍성한 삶의 내용을 만들어 갈 수가 있을까요?



 “삶의 내용을 채우기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주체적으로 공부해보는 것입니다. 내 삶의 관심사들이 다양해지는 공부를요. 제가 독일에서 13년간 지내면서 가장 부러웠던 문화는 그들이 주말판 신문을 여유롭게 읽는 모습이었습니다. 그곳의 주말판 신문은 책, 음악, 미술, 여행 등의 여러 주제를 담아 책 한 권 두께로 나옵니다.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를 읽고 저녁에는 친한 친구들을 만나 낮에 읽었던 재미있는 내용을 이야기하며 보냅니다.”



 -제가 미국에 살다 중국 유학을 하며 느꼈던 것이, 미국에서는 수많은 이야기가 사방팔방에서 다양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한곳으로 시선이 모아지기 힘든 반면, 중국에서는 누굴 만나도 다들 비슷한 관점에서 제한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해서 좀 답답하더라고요.



 “한 사회의 성숙도를 잴 수 있는 척도는 그 사회 안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삶의 주제가 얼마나 다양한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서양식 파티가 이루어지기 힘든 이유도 우리나라에선 반드시 그 파티의 주인공이 있어야 하고, 그 주인공이 가운데로 나와서 노래나 발언을 해야 하고, 결국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이게 됩니다. 각자 삶의 주제가 풍부하면 다양한 이야기가 그 파티 구석구석에서 펼쳐질 텐데 그 삶의 내용이 빈곤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단순화됩니다.”



 두 시간이 넘는 대화의 시간 동안 김정운 교수님이 강조한 것은 삶의 의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공부’였다. 그는 자신이 교수를 그만둔 것도 그 공부를 위해서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도 교수직을 내려놓고 잠시 동안 불안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현대인들의 고질적인 문제, 불안에 대해 물어보았다.



 -지금 현대인들은 많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텐데요, 심리학자이신 교수님 관점에서 한번 분석해 주시지요.



 “우리가 불안한 이유를 단순히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만 돌리는분도 많습니다. 물론 사회 구조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 하고 다 같이 노력해야 합니다. 다만 구조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문제가 동시에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구조적인 문제의 해결은 수단적 가치이지 내 삶의 궁극적 가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수단적 가치들이 제대로 안 되어 있어 궁극적 가치에 도달하지 못하니 자유를 이야기하고 민주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즉 내 삶의 궁극적 가치에 대한 고민과 노력도 동시에 진행돼야 합니다.”



 - 그러면 궁극적 가치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왜 사는가? 이 질문에 대한 개인들의 성찰적 대답입니다. 저는 심리학을 전공했으니 명쾌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행복하려고, 즐겁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꾸 부정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 그런데 정치적으로 어두웠던 시대를 보내셨던 제 앞 세대들은 본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 약간의 죄의식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우리 세대만 하더라도 대학생 때 연애하면 나쁜 사람이었어요. 사랑도 동지적 사랑을 해야 한다 해서, 내가 감옥 가면 옥바라지해야 하는 그런 사랑,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랑도 제대로 한번 못해보고, 공부하면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여겨지고, 재미있으면 불안하고,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면 죄의식을 느끼고. 이것이 압축성장과 시대가 남겨놓은 어두운 측면입니다. 형식적인 민주주의는 이루어졌고 경제적 성장도 세계 10위권까지 이뤄냈지만 내 안을 들여다보면 아무 내용 없이 텅 빈 것 같고 불안한 거예요. 수단적 가치가 이뤄지면 궁극적 가치도 실현될 것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이에요.”



 -혹자는 삶의 내용을 풍성하게 하고 행복하기 위해 재미있는 무언가를 배우라고 하면 배부른 소리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셔요. 하루하루 살기도 바쁘다고요.



 “저 역시도 한때는 정말 바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빴나를 보니까 최소한 절반은 제쳐낼 수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먹고살기도 바쁘다고 내 삶의 내용을 채우지 못하는 것을 합리화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그렇게 합리화하면 내 미래의 삶은 누가 책임질까요? 앞으로는 은퇴하고도 30년은 더 산다고 하는데 나중에 늙어서 어떻게 하시려고요? 우리는 불안하면 관계 속으로 도피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꾸 퇴근 후 저녁 약속, 술 약속 만들어서 관계로 도피하려 하지 말고 주체적으로 자신이 즐거운 일을 찾아서 한 가지씩 배워보세요.”



 관계 과잉 사회. 김정운 교수님은 우리의 불안이 관계로의 도피를 만들고, 그 관계 의존적 문화가 자기 스스로를 잃어버리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가 잘나가던 교수 자리를 내려놓고 일본 유학을 떠난 것도 새로운 공부를 통해 삶의 내용을 좀 더 풍성히 채우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은퇴까지 30년의 시간을 일합니다. 하지만 은퇴 후 30년의 시간이 더 남아 있어요. 우리는 그 나머지 30년의 시간을 위해 무슨 준비를 하고 있나요?” 자신에게 되묻는 듯 말하는 김정운 교수님. 이번엔 그의 최근작 『에디톨로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새로 내신 책 『에디톨로지』를 보면 창의적 아이디어는 기존에 있는 데이터와 데이터 간의 새로운 관계 설정을 통해 편집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나온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주 훌륭한 통찰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쉽게도 쌓아놓은 데이터는 많지만 정작 창의적 아이디어는 잘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 왜 그런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삶이 여유롭지가 않아서 그래요. 각 데이터 간을 연결하는 새로운 메타언어는 미학의 분야이지 논리의 분야가 아니거든요. 즉 삶이 즐겁고 재미있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때 창의적 아이디어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사회 지도자들부터 여유를 가지고 좀 쉴 줄 알아야 변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 열심히만 하자’ 하는 구호는 평균 연령 50세 때 맞는 구호였지 지금처럼 100세 시대에 맞는 구호가 아닙니다.”



 -경직된 사회에서 자라서 그런지 지금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자기 본인 생각을 창의적으로 잘 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젊은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가요?



 “제가 독일에 가서 보니까 학생들이 수업 중에 노트 필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카드에다 필기를 하더라고요. 노트는 한번 써놓으면 찢을 수가 없기 때문에 여러 데이터 간의 관계를 주체적으로 새롭게 설정하는 편집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카드에다 필기를 하면 그것이 가능해집니다. 그것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카드를 사용하게 되면 카드 위에 본인의 언어로 키워드를 쓰게 되고 그 키워드를 가지고 또 자기 식으로 정리를 하게 됩니다. 바로 이 과정에서 본인만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고 실력이 쌓이는 것입니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키워드를 뽑는 것, 그것이 진짜 실력입니다.”



 -제가 『에디톨로지』를 읽으며 공감했던 부분이 ‘일관된 자아에 대한 요구가 심리적 억압을 낳는다’라는 부분이었습니다. 인간은 원래 모순적인 존재이지만, 본인이 때론 받아들이기 힘든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면도 같이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모순을 발견했을 때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안의 여러 가지 나를 용납하지 못하고 억압하면 다른 사람들을 못 받아들이고 억압하려고 합니다. 반대로 성찰을 통해 내 안에 다양한 내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면 타인을 좀 더 너그럽게 대할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심리학에서는 내 안의 다양한 모습들 간의 관계가 나와 다른 사람들 간의 관계와 동일한 구조로 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 여기 오는데 앞에서 차를 막고 안 비켜주더라고요. 이럴 때 ‘저 사람은 왜 저럴까?’ 하면서 화만 내지 말고 생각을 돌려 ‘나는 안 그랬나?’ 하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교수님은 삶의 어느 순간 행복하다고 느끼시나요?



 “저는 음악을 좋아합니다. 음악을 듣다 감동해서 눈물이 날 때가 있는데 그때가 저는 제 삶 속에서 큰 행복의 순간입니다. 특히 산책할 때 음악을 들으면 나에게 처해진 상황과 내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이 음악과 함께 가슴이 트이면서 새롭게 보이는 순간들이 있는데 이때가 참 행복합니다.”



 김정운 교수님과의 만남은 예상대로 유익하고도 즐거웠다. 새해를 맞아 한번 올해에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 한 가지와 ‘정말로 하기 싫은 일’ 한 가지를 다이어리에 적어보자.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그것들을 내 삶 가능한 범위 내에서 노력하고 실천해보자. 그저 남들의 요구만 들어주면서 끌려다니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닌, 김정운 교수님처럼 내 인생의 주도권을 내가 갖고 남의 시선을 덜 의식하며 사는 것이 바로 행복의 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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