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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국제시장과 박근혜

중앙일보 2015.01.02 00:02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진국
대기자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우리가 살아온 모습을 다시 보며 향수를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덕수’라는 한 남자가 어깨에 짊어진 가장의 무게, ‘자기 인생에 자기는 없는’ 아버지들의 삶의 방식은 기성세대의 가슴에 응어리로 맺혀 있다.



 이런 영화에 눈물을 흘리다니 ‘꼰대’라는 소리를 듣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이 영화를 추천한 대학생 딸도 눈물이 났다고 한다. ‘싸구려 신파’라는 일부의 비판도 일리가 있다. 그 속에 정치체제나 경제구조의 문제점은 지워져 있다. 흥남 철수를 베트남에서 재현하는 부분도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흐르는 눈물을 어쩌겠는가. 그렇게 살아온 것을.



 “아부지예~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 그런데 저 진짜 힘들었거든예~.” 덕수의 독백처럼 우리는 힘겹게 살아왔다. 잘했건 못했건 한 가족을 건사하게 됐다. 힘은 들었지만 많이 이루었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도 올해는 우리 민족에게 특별한 해다. 광복을 한 지 70년, 남북이 갈라진 지도 70년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마따나 새로운 70년을 준비할 시점이다.



 그런데 당장 그 두 가지부터 걸린다. 종전(終戰) 70년을 맞아 세계는 변화의 소용돌이다. 특히 한반도는 변화의 중심에 놓여 있다. 이 ‘광복’과 ‘분단’ 문제를 넘어서야 새로운 시대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두 가지 모두 꽁꽁 얼어붙은 것이다. 지난 2년 악화일로를 걸었다. 상대가 있는 문제다. 그렇다고 상대가 변할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끌려다니게 된다.



 남북관계에서는 조그만 기대가 생겼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단절과 갈등의 분단 70년을 마감하고… 통일의 길을 열어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로 다음날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도 “북남관계의 역사를 새롭게 써야 한다.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화답했다.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대화를 한다고 바로 길이 뚫리는 건 아니다. 그러나 변화의 기회는 얻은 것이다.



 50년 전 한일협정을 체결할 때 전국이 시끄러웠다. 식민지 침탈의 아픔이 아직은 너무나 생생한 시점이었다. 반대 시위가 격화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김종필 총리는 서울대를 직접 방문해 학생들을 설득하며 밀어붙였다. 국제관계에서 상대국을 도덕적으로 가르치기는 어렵다. 명분보다 힘이 앞선다. 무엇이 이익인지 냉철하게 따져야 한다.



 이런 변화를 헤쳐나가는 데 리더십이 중요하다. 박 대통령은 견고한 지지층을 가진 드문 지도자다. 어쩌면 다시 그런 정치인을 만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어려운 문제를 풀어갈 적임자다. 문제는 소통과 인재 등용 방식이다.



 그런 박 대통령에게도 작은 희망이 보인다. 박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기왕 자리를 마련했으면 자유로운 질문 기회를 주면 좋겠다. 이런 자리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지난 연말 친박(親朴)계 의원들을 청와대로 불렀다. 계파 의원만 불렀다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어떤가. 앞으로 비박(非朴) 의원들도 부르고 야당 의원들도 부르면 된다. 각계 인사들도 초청해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늘려가면 된다. 소통에 대한 이런 기대가 헛된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박 대통령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의 사표를 수리했다. 이를 계기로 인적 개편을 할 것이란 관측이 무성하다. 이제 수첩과 보고서는 내려놨으면 좋겠다. 새 진용은 국정을 함께 의논해 방향을 정하고 구체적인 업무는 믿고 위임할 만한 사람을 고르면 된다. 크고 중요한 과제, 꼭 필요한 요직만 챙기고 나머지를 맡길 수 있는 장관 말이다. 모든 일을 청와대에서 챙기니 일만 생기면 청와대로 달려간다. 소통할 시간도 없다. 곳곳에서 인사 공백이 길어진다. 소속 부처의 국장·과장 인사도 못하는 장관이 영이 설 리 없다.



 임기 3년차다. 국정 과제도 정리해야 한다. 쏟아놓은 과제가 너무 많다. 의욕이 넘쳤다. 이제 임기 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가릴 때가 됐다. 올해는 선거가 없는 해다. 임기 중반, 일하기 가장 좋은 때다. 그럴수록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국민은 박 대통령의 애국심을 믿고 있다. 정치적 반대자들도 그 점은 인정한다. 박 대통령은 덕수 부부가 다투다 애국가가 들리자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것을 보고 ‘애국심’이라고 표현했다. 그렇게 해야 나라가 발전한다고 했다. 대개의 관람자는 그 장면을 권위주의 시대를 희화화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미묘한 인식의 차이다. 그걸 인정하고 끌어안으면 모두 힘이 된다. 임기 중 최고의 ‘골든 타임’이다.



김진국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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