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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지 응용한 스타일 미국·영국서도 인기죠

중앙일보 2015.01.02 00:01 Week& 6면 지면보기
음력 정월 초하루, 설날이면 을미년(乙未年)이 시작된다. 양(羊)띠 해다. 명품·패션·화장품 분야에도 양띠를 주제·소재로 한 상품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쥐·소·호랑이·토끼 등 십이지(十二支)는 한국·중국 등 동양의 문화다. 하지만 요즘 십이지 모티브 상품은 서양 브랜드에서도 꽤 많이 나오고 있다. 양을 닮은 스타일 상품, 이유와 경향을 살펴 봤다.


서양 브랜드들, 양띠 해 관련 상품 내는 까닭

강승민 기자



동양 문화와 서양 브랜드



십이지는 영어로 ‘차이니즈 조디악(Chinese Zodiac)’이라 불린다. 서양 천문학에선 별자리의 움직임, 황도(黃道) 십이궁(十二宮)을 12가지 동물에 비유해 조디악이라 부른다. 동물에 빗댄 것과 숫자 ‘12’라는 공통점 때문에 십이지 영어 명칭이 이렇게 정해졌다. 브랜드 ‘MCM’은 2011년 신묘년(辛卯年)에 그 해를 상징하는 토끼로 가방 장식과 인형 등을 냈다. MCM은 독일을 기원으로 삼는 브랜드여서 동양의 전통 문화 십이지와 별 관계가 없다. 그런데도 MCM은 왜 십이지를 디자인 소재로 택했을까. MCM 코리아 마케팅 그룹장인 류지연씨는 “십이지가 아시아 문화에서 비롯했지만 이를 응용한 상품은 아시아뿐 아니라 미국·영국·두바이 등지에서도 인기가 많다”고 전했다. “동물 형상이라 귀엽고 예쁜 디자인 요소로 활용할 여지가 많아 소비자의 문화적 배경에 크게 구애 받는 것은 아니다”라고도 했다. 류 그룹장은 “중국에선 연초에 매장 윈도 디스플레이도 십이지를 기본으로 연출한다”며 “특히 중국 고객이 십이지 상징에 호응이 큰데다 십이지 디자인 상품은 특정 연도에만 출시되기 때문에 한정판이란 의미도 있어 더욱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MCM처럼 서양 브랜드인데도 십이지 관련 상품을 내는 곳은 프랑스 브랜드 ‘루이비통’, 스위스 브랜드 ‘스와로브스키’, 영국 브랜드 ‘캐스 키드슨’, 미국 브랜드 ‘에스티로더’, 덴마크 브랜드 ‘판도라’ 등이 있다. 국적도 다양한 브랜드들이 앞다퉈 ‘양띠 해’를 축하하는 상품을 내고 있는 것이다. 루이비통은 올해 양을 연상케 하는 팔찌를, 스와로브스키는 다양한 양 장식품을, 캐스 키드슨은 양 프린트 기저귀 가방 등을 출시했다. 또 판도라는 양 머리를 응용한 팔찌 장식품을 판매하며 에스티로더는 콤팩트 뚜껑에 양을 돋을새김한 한정판 화장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양띠 해를 맞아 한국 브랜드도 여러 가지 형태의 제품을 냈다. 브랜드 ‘제이에스티나’는 아동용 목걸이 디자인에 양 모양을 입혔다. 브랜드 ‘비비안’은 양 프린트를 새긴 남녀 커플 속옷을, 한국도자기에선 양 그림을 넣은 접시를 만들었다.



1 피아제 `알티플라노 38㎜ 클로아조네 에나멜` 시계 2 스와로브스키 양 모양 장식품 3 MCM 양 모양 가방 장식 ‘참’ 4 에스티로더 2014 홀리데이 양의 해 기념 메탈 콤팩트 [사진 각 브랜드]


고급 시계 디자인과 십이지



서양 브랜드에서 십이지 관련 상품을 내는 분야는 고급 시계 쪽이 활발하다. ‘피아제’와 ‘바셰론 콘스탄틴’ 등이다. 바셰론 콘스탄틴은 ‘메티에 다르 컬렉션, 더 레전드 오브 차이니즈 조디악’을 내놨다. 시계판 위에 양털의 구불거림까지 느껴질 정도로 양을 생동감 넘치게 표현한 시계다. ‘알티플라노 38㎜ 클로아조네 에나멜’은 피아제의 양띠 해 기념 상품이다. 이 브랜드는 2012년 용띠 해부터, 이듬해 뱀띠, 지난해 말띠까지 매년 ‘차이니즈 조디악’을 기념해왔다.



이처럼 시계 분야에서 십이지 디자인이 주조를 이루는 건 시계라는 제품 자체의 디자인 특성에다 요즘 고급 시계의 디자인 경향이 결합한 결과다. 최근 고급 시계 분야에선 기계적 우수성을 뽐내는 기술 경쟁이 잦아들고 있다. 거대 시계 기업들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경쟁적으로 기술 개발에 몰두하다 보니 기술이 일정 수준에서 평준화했기 때문이다. 기술 평준화로 차별성이 약해진 고급 시계 브랜드들은 섬세한 수공에 눈을 돌렸다. 예술적인 표현 기법이 돋보이는 시계판 디자인에 집중하게 된 배경이다. 그래서 요즘 고급 시계엔 정교한 장식 기법을 써서 입체인 십이지 동물을 시계판과 시계 겉면에 도드라지게 표현하는 것이 트렌드가 됐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십이지 디자인 모티브가 성행하고 있지만 매년 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브랜드 ‘에르메스’는 지난해 말띠 관련한 다양한 상품을 냈다. 하지만 양의 해인 올해는 양 관련 상품이 전혀 없다. “브랜드 자체가 마구(馬具)를 만들던 가게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말의 해를 맞아 대대적인 프로모션을 한 것일 뿐, 매년 십이지 상품을 낼 필요도 계획도 없다”는 게 이 회사 측 설명이다.



같은 형상, 다른 인식



루이비통 ‘비토니트 루즈’ 팔찌
서양 브랜드가 동양의 십이지를 디자인 요소로 차용해 경쟁적으로 제품을 내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소비자 인식은 조금씩 다르다. 올해를 상징하는 양에 대한 인식부터 살펴보자. “양에 대한 한국인의 이미지는 순하고 어질고 착하며 참을성 있는 동물, 무릎을 꿇고 젖을 먹는 은혜를 아는 동물로 수렴된다. 양하면 곧 평화를 연상하듯 성격이 순박하고 온화하여 좀처럼 싸우는 일이 없다.” 지난달 17일 시작해 다음달 23일까지 ‘행복을 부르는 양(羊)’ 기획전시를 여는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의 설명이다. 천 관장은 전시 기획 세미나에서 한국 역사에서 나타난 양의 상징성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낙랑·삼국·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출토 유물, 조각, 그림 등에서 만나는 양의 모습은 위기를 만나도 당황하지 않는 여유와 멋을 느끼게 하는 평화와 순종, 정(情)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천 관장은 “‘아무리 못된 시어머니라도 양띠 해 손녀를 낳으면 며느리를 구박하지 않는다’는 속담이 양을 대하는 한국인의 태도와 일맥상통한다”고 덧붙였다. 아들을 고대하던 시어머니조차 온순하게 만드는 게 양띠 해 딸이라는 의미이다.



이웃한 중국에선 양의 이미지가 조금 다르다. 같은 세미나에서 정재서 교수(이화여대 중문과)는 “중국에서 양은 고대 유목 문화를 바탕으로 양의 다른 형태인 신과 괴물로 표현되는가 하면, 신선 등의 신화에 등장하기도 하고, 이런 전설적 존재를 둘러싼 길흉·선악과 관련한 다양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산속의 모든 짐승들이 범접하지 못하는 가장 고귀한 동물로 간주되던 영양(羚羊)”을 예로 들었다. 산속 묘지에는 말과 더불어 양을 돌로 만들어 세웠고 영양은 짐승들이 무 덤을 파헤쳐 시신을 훼손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보다 강한 이미지의 양이다.



정 교수는 양의 또 다른 특징도 꼽았다. “음욕(淫慾)이 강해 교미를 많이 행하는 동물로 인식됐다”는 것이다. 옛날에 누군가 양의 뒤를 좇았더니 어떤 풀을 뜯어 먹고는 열심히 교미하는 걸 보았다 한다. 그리고 그 풀을 복용했더니 힘이 솟아 풀 이름을 음양곽(淫羊藿)이라 지었다는 설(說)이 있다. 실제 음양곽은 정기를 북돋는 약재로 쓰인다. 이처럼 비슷한 문화적 전통을 공유하는 한국인과 중국인도 같은 동물인 양을 다른 이미지로 받아들이고 있다.



양 말고 십이지의 다른 동물을 두고도 이런 인식 차가 존재한다. 뱀이 대표적인 예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문명에서 뱀은 신(神)으로 여겨졌다. 현대 인도의 힌두교도 일부도 뱀을 숭배한다. 하지만 기독교도에게 뱀은 일반적으로 ‘악한 존재’다. 성서에는 에덴 동산에서 이브에게 선악과를 탐하도록 부추긴 게 뱀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특정 동물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는지 문화권마다 차이가 나기 때문에 십이지 디자인이 늘 각광 받는 것은 아니다. MCM 류지연 그룹장은 “글로벌 브랜드라면 전세계 소비자를 상대해야 한다. 그래서 십이지를 디자인 모티브로 할 땐 특정 동물에 대한 각 문화권·국가 별로 호오(好惡)를 감안해 상품을 기획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MCM은 뱀의 해인 2013년 계사년(癸巳年)에 “일부 국가 소비자들이 뱀을 별로 반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뱀띠 해 관련 상품을 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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