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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은 기자의 노래가 있는 아침] S.E.S ‘I'm your girl’

중앙일보 2014.12.30 05:00


1997년 겨울, 코 묻은 용돈을 들고 레코드숍에 들어가 ‘S.E.S’ 1집 테이프를 샀던 기억이 납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비닐 포장을 뜯고, 가사집을 펴든 뒤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첫 경험이었어요. 음악이 ‘소유의 영역’으로 넘어온 순간이었죠.



왜 S.E.S였냐고요? 96년 이전엔 초등학생이었므로 돈이 없었습니다. 불법 최신가요 모음곡을 사듣거나 친척언니 테이프를 빌려 들었죠. 97년 그러니까 중학생이 되고 나서 용돈이 몇 천원 올랐을 즈음, S.E.S가 데뷔를 했습니다.



처음엔 H.O.T 오빠들과 같은 소속사라 마냥 싫었어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예쁜 척을 안 해도 예쁜 애들을 봤을 때의 그 당혹스러움. 바다 언니의 노래, 유진 언니의 미모, 슈 언니의 귀여움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I'm your girl’은 간주부터 어찌나 신나는지요. 양팔을 휘저으며 "나를 믿어주기 바래"를 부르면서 성장기의 주체할 수 없는 흥을 분출했지요.



1983~1985년에 태어난, 그러니까 H.O.T세대라 부를 수 있는 동료와 친구들에게 물었습니다. 제일 처음 돈을 주고 샀던 테이프가 무엇인지. 역시 H.O.T 1집 ‘We hate all kinds of violence’(1996)가 가장 많더라고요. '전사의 후예'와 '캔디'가 수록된 앨범이죠. S.E.S 1집을 비롯해 룰라 4집(1996), 김성재 1집(1995), 패닉 1집(1995) 등이 있었습니다. 조숙했던 친구들은 서태지와 아이들 1집(1992), 김건모 2집(1993) 등을 처음 샀다고 했습니다. 대부분 초등학교 고학년 때 음악에 눈을 뜨기 시작해 중학생이 되어 ‘팬심’을 꽃피우는 단계를 밟았더군요. (역시 유행의 첨단엔 중학생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모두들 처음 산 테이프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것도 매우 또렷하게, 가슴 벅차게 말이죠. 음악의 힘을 처음으로 체감했던 신비로운 순간이었을 겁니다. 지난 주말 ‘무한도전’(MBC) 90년대 특집방송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를 보며 울컥했던 건 그 때의 생경한 열정 같은 게 떠올랐기 때문이겠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인생의 첫 번째 테이프, CD, 혹은 LP는 무엇이었나요?



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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