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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1승" … 얼음공주 신소정의 무한도전

중앙일보 2014.12.30 00:05 종합 24면 지면보기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골리(골키퍼) 신소정은 지난해 캐나다 대학팀에 입학했다. 내년에는 프로팀의 문을 두드린다. 사람들은 ‘무모한 도전’이라는데 본인은 ‘무한도전’이란다. [오종택 기자]


아이스하키는 겨울 올림픽의 꽃이다. 한국은 2018년 평창 올림픽에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출전한다. 북미나 유럽의 강국과 상대해야 하는 한국으로선 올림픽 무대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그런데 겨울 올림픽에 여자 아이스하키도 열린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캐나다가 4회 연속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고, 미국과 스위스 등도 강국이다. 이에 비해 국내 여자 아이스하키의 토양은 척박하기만 하다. 한국의 세계랭킹은 24위.

캐나다 유학 간 대표팀 골리(골키퍼)
피겨선수 될 뻔했지만 퍽이 더 좋아
25㎏ 장비 메고 시내버스 타기도



그렇지만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의 골리(아이스하키에서 골키퍼) 신소정(24)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본고장에서 아이스하키를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지난해 캐나다로 날아갔다. 그리고는 지난해 8월부터 캐나다 남동쪽 끝 노바스코샤에 자리잡은 세인트 프란시스 제이비어 대학에서 당당히 주전 골리로 활약 중이다.



세인트 프란시스 제이비어는 캐나다 대학 1부 리그에 속한 강팀이다. 캐나다 대학 1부 리그는 모두 33개팀으로 구성돼 있는데 신소정은 캐나다 선수들도 들어가기 어렵다는 아이스하키 명문팀의 주전 골리를 맡아 올 시즌 경기당 평균 실점률 3위(1.12)를 기록 중이다. 지난 시즌 실점률 7위(1.39)에서 4계단 뛰어오른 것이다. 방학을 맞아 귀국한 그를 지난 24일 만났다. 얼굴은 생글생글 웃고 있었지만 몸은 퍽에 맞아 온통 멍투성이였다.



 - 캐나다 대학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는 이유는.



 “지난해 캐나다 선수들을 상대해 본 뒤 세계 수준과 격차를 실감했다. 그래서 아이스하키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 캐나다 행을 결심했다. 내 경기 동영상을 편집해 캐나다 대학에 보냈다. 8~9팀에서 영입 제의가 왔다. 세인트 프란시스 제이비어는 오전에 메일을 보냈는데, 당일 저녁 회신이 왔다. 감독님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주전 골리와 장학금을 약속했다. 당장 짐을 꾸려 캐나다로 떠났다.”



 - 캐나다 생활은 어떤가.



 “인천에서 토론토를 경유해 앤티고니시까지 18시간이나 걸린다. 한국의 땅끝마을 같은 곳이다. 한국인은 없고, 아시아인이라곤 중국 유학생과 네일아트점을 하는 베트남인만 봤다. 전공은 인간운동학(human kinetics)이다. 하루에 6시간 공부하고, 나머지는 아이스하키만 생각한다.”



 - 아이스하키를 시작한 계기는.



 “어릴 적 어머니 손에 이끌려 피겨선수가 될 뻔했다. 그렇지만 나는 피겨보다는 퍽을 치는 소리가 좋았다. 초등 1학년 때 클럽팀에서 취미로 스틱을 잡았다. 그러다 중1 때 성인대표팀에 발탁됐다. 열네살이던 2004년 세계선수권 디비전3에서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하지만 고3 때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다. 한국은 학교와 실업을 통틀어 여자팀이 전무하다. 나는 ‘주경야독’이 아닌 ‘주경야하(키)’를 했다. 25㎏ 장비를 메고 시내버스를 탔다. 인라인스케이트와 스키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도 했다. 숙명여대 체육교육과 4학년을 다니다 휴학하고 안양 한라 아이스하키단 인턴사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



 - 가장 뼈아팠던 패배는.



 “2007년 아시안게임에서 일본에 0-29로 무참히 졌다. 상대팀 유효슈팅이 136개였다. 우리 팀은 공격 라인을 한 번도 못 넘어갈 정도로 일방적인 경기였다. 여자 선수도 슈팅 속도가 시속 100㎞를 넘는데 나는 그날 퍽을 막다가 죽는 줄 알았다. 멍과 근육통은 참을 수 있었다. 더 아팠던 건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었다. 태릉선수촌에서 다른 종목 선수들이 ‘저 아이들은 비전도 없는데 왜 하는거냐’고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이를 악물었다. 캐나다로 간 것도 그런 이유다.”



 - 2012년 아시아 챌린지컵에선 일본에 1-6으로 졌는데.



 “일본은 2014 소치올림픽 본선 진출국(8개국)이다. 우리는 고작 세계 4부 리그 격인 디비전2 그룹A에 간신히 잔류할 만한 수준이다. 그래도 점점 발전하고 있다.”



 - 평창올림픽에서 강호들과 겨뤄야 하는데.



 “지금 캐나다와 붙으면 30점 차로 질 수도 있다. 주위에서 저를 보고 늘 무모한 도전을 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즐겨보는 TV 예능프로그램 제목처럼 내 인생도 ‘무한도전’이다. 장학금을 받으며 캐나다 대학에서 3년 더 뛸 수도 있지만 내년 8월엔 캐나다 여자 프로리그(CWHL)에 도전할 생각이다. CWHL은 5팀 뿐이고, 골리는 후보까지 10명에 불과하다. 드래프트에 떨어지면 연습생으로라도 들어가겠다. 내 목표? 남들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평창 올림픽에서 1승을 거두는 게 꿈이다.”



글=박린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신소정은 …



■ 1990년 3월 4일생. 1m66㎝·64㎏



■ 강북중-혜화여고-숙명여대 체육교육과-세인트 프란시스 제이비어(캐나다)



■ 경력 : 2007·2011 겨울 아시안게임 출전, 2012~13 세계선수권 디비전2 그룹B 베스트골리상, 2014 디비전2 그룹A 베스트골리상



■ 좋아하는 골리 : 캐나다 남자대표팀 캐리 프라이스(화려하지는 않지만 포지션 잘 지키고 침착)



■ 좌우명 : No Pain No Gain(고통 없이는 얻는 것이 없다), 캐나다 진출 후 ‘팀에 믿음을 주자’로 바뀌어.



■ 좋아하는 음식 : 닭볶음탕(집밥 생각나 요리했는데 캐나다인 룸메이트들 눈물·콧물 쏟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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