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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수능 영어 절대평가, 공염불 안 되려면

중앙일보 2014.12.30 00:03 종합 29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기환
사회부문 기자
고교 영어교사 박모(48·대전시 서구)씨는 요즘 고민에 빠졌다. 현재 중3 학생들이 치를 2018학년도 수능부터 영어를 절대평가로 바꾼다는 교육부의 발표(25일) 때문이다. 교과서와 EBS 교재는 그대로인데 교육부 방침에 따라 내년부터 말하기·듣기·쓰기 위주로 수업 방식을 바꿔나가야 한다. 이 학교에는 원어민 강사가 없어 회화를 가르치기도 쉽지 않다. 지금도 고3 영어회화 수업은 사실상 이름만 걸어놓고 문제를 푼다. 학생들의 반응이 더 걱정이다. 박 교사는 “수능에 안 나오는 내용을 가르치면 아이들이 ‘시험에도 안 나오는데 왜 배워야 하느냐’는 말부터 한다. 절대평가를 도입하면 학생들의 영어 수업 열의가 떨어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절대평가=실력저하’는 아니다. 하지만 현재 교육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수능만 절대평가로 바꿔 쉽게 내면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중3 학부모 이수연(43·서울 강서구)씨는 “조금만 노력하면 수능 영어 1등급을 받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아 앞으로는 영어보다 수학 공부에 더 집중하도록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교육부가 중·고교 교사와 학부모, 대학 입시관계자 1만1449명에게 ‘영어 절대평가 도입 시 보완점’을 물었다. 가장 많은 58%가 “의사소통 능력을 높일 수 있는 교과서를 개발하고 학습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응답했다. 교육부는 영어 수업을 문제풀이에서 말하기·듣기·쓰기 위주로 바꾼다는 방침을 내놨다. 실질적인 영어 실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교육부 생각대로라면 교육과정을 정비하고 교사 직무능력도 끌어올려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 당장 예비 고교생들이 내년부터 시험대에 오른다. 예산도 부족하다. 윤재옥(새누리당) 의원이 공개한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원어민 강사를 배치한 전국 초·중·고 비율은 2011년 86%에서 올해 65%로 줄었다. 고교 영어교사 김모(33·서울 서초구)씨는 “수능은 이렇게 낼 테니 현장은 알아서 따라오라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올 초 박근혜 대통령이 “영어 사교육 부담을 줄여야 한다”며 대책 마련을 지시하자 허겁지겁 임기 말(2017년)까지 추진계획을 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치원부터 시작되는 영어 사교육 과열은 문제다. 교육부가 영어 절대평가를 도입하는 이유다. 하지만 사교육비 경감이 국가 교육정책의 궁극적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교육부는 ‘공교육 경쟁력 강화를 통한 영어 실력 향상’이란 영어 교육 철학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학교 수업을 어떻게 바꿔 학생들의 영어 실력을 높일 건지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대안을 내놔야 한다.



글=김기환 사회부문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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