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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마친 임시완 인터뷰 "연기에서 나는 여전히 미생"

중앙일보 2014.12.29 07:00


























캐스팅 단계의 그는 ‘미생(未生)’이었다. tvN 금토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를 맡은 임시완(26) 말이다.



‘미생’의 김원석 PD는 종영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 장그래역은 20대 톱클래스 배우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결격 사유는 세 가지. 키가 작고, 아이돌 출신인데다, 미생 프리퀄에 출연했기 때문이다.



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가 고졸 학력이고 스펙이 형편없는데다 낙하산이었던 것과 엇비슷한 처지였다.



그가 캐스팅 관문을 뚫어낸 건 어찌보면 운이 좋아서다. 일단 수많은 20대 톱클래스 배우들이 캐스팅을 모조리 거절했다.



게다가 장그래의 상사인 오상식 역의 배우 이성민(46)이 ”정말 착한 친구가 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제작진의 관점을 흔들어놨다.



결정적으로 임시완 자신이 제작진에게 배역을 맡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여줬다.



당시 임시완은 캐스팅 제안에 “바둑 연구생처럼 아이돌도 데뷔 전까진 격리된 존재다. 대학도 자퇴했다. 그래서 막연한 두려움과 절절한 비참함을 잘 안다. 내가 이 역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드라마를 마친 지금은 ‘더 할 나위 없다’는 평을 받는 그다.



이쯤 되면 캐스팅의 운은 그에게 있었던 게 아니라 제작진에게 있었던 거다. 신드롬에 가까운 열광적 반응 속에서, 숨가쁘게 이어진 촬영 현장에서 그는 뭘 느꼈을까.



26일 마포의 한 고깃집에서 기자들과 만난 임시완이 지난 두 달을 돌아봤다. 화제작을 마친 배우치곤 담담하게, 그는 “연기 면에서 나는 여전히 미생”이라고 했다. 어떤 질문을 들을 때나 반짝거리는 눈망울이 인상적이었다.



-이젠 바둑판 위 필요한 돌이 됐나.

“난 지금도 내가 필요한 돌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안도감이 든다. ‘필요한 위치는 생겼구나’ 하는. 아직 필요한 돌이라고 생각지 않아서, 내가 몸담은 곳에서 필요하지 않게 됐다 하더라도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건 준비돼 있다.”



-마지막 회 요르단에서 보여준 장그래의 모습은 비현실적이었다.

“요르단 장면은 시청자에게 주는 판타지다. 물론 비현실적이고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하다. 상식적으로 장그래가 할 수 없는 걸 하니까. 차에 치였다가 벌떡 일어나서 다시 뛰어가고, 피를 흘리고 상처를 입어도 별 치료도 안 한다. 초반 지극히 사실적인 이야기가 많아서 숨 쉴 틈이 없지 않나 하는 고민을 감독과 제작진이 갖고 있었다. 해결책으로 제시된 게 요르단이다. 숨통을 트이게 하는 역할을 했다고 보면 된다. 제가 제작진이 아니라 개입하진 않았지만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까 한다. 어차피 장그래의 진짜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꿈 속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장그래가 이렇게 마무리됨으로써 장그래를 떠나보내는 이들에게 쉽게 놓아보내줄 수 있는 작업이었다고 본다.”



-시즌2에서 장그래는 어땠으면 좋겠나.

“제가 바라는 시즌2의 장그래는 지금보다 조금 더 성장했다는 걸 보여줬으면 좋겠다. 시즌3에서 더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주는 모습이다. 완생이라기보다 거기 더 다가가는 모습이 비춰졌으면 한다.”



-현장에선 누가 인상 깊었나.

“하늘이(강하늘)와 요한이 형(변요한)이다. 그들은 연기적인 부분을 갖고 장난을 치며 논다. 방금 이 연기는 이 배우의 이런 장면과 비슷하다는 식이다. 내겐 안 보이는 것이 그들에겐 형체가 있는 것처럼 보이나 보다. 보고 있으면 재미는 있는데 내가 지식이 없어서 그들의 장난을 따라가지는 못한다. 평상시에도 이렇게 연기에 대해 고민할 정도로 열정이 뛰어나니 자연스럽게 연기를 잘하는 게 아닐까 한다.”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미생 촬영 현장은 공기가 달랐다. 다른 드라마도 해 봤는데 이렇지는 않았다. 감독, 배우, 스태프 모두 연기에 미쳐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저도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이를 뛰어 넘는 열정과 그마저도 뛰어넘는 뭔가가 있어 보였다. 촬영하면서 내 캐릭터로 살아간다는 걸 즐기겠다는 입장이었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점점 책임감이 생겼다. 중반부터는 (그런 압박감을) 버티는 촬영의 연속이었다.”



-직장인의 삶을 이해하게 됐나.

“직장인은 이제까지 제가 느낄 수는 없는 직업이었다. 물론 제 친구 중에도 있고, 아버지도 직장인이지만 확인할 기회는 없었다. 어렴풋이 힘들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직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구나 느꼈다. 애환이 크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감히 공감한다고 말하긴 힘들다고 생각한다.”



-멜로가 없는 게 아쉽진 않았나.

“처음엔 멜로가 없어서 굉장히 아쉬웠다. 그렇다고 없는 멜로를 억지로 만들어서는 안 되겠지만. 멜로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이 작품으로 연기자로 인정받은 것 같은데.

“인정받았다는 느낌보다 제 연기의 밑천이 드러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중반부터 시간에 쫓기다 보니 연기 밑천이 드러나서, 들키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했다. 한계를 느꼈으니 더 가야할 길이 멀구나 생각했다. 내가 연기면에선 아직 미생이구나 했다.”



-‘미생’ 출연진과 포상 휴가갔던 세부에선 어떻게 보냈나.

“세부에선 보들레르의 ‘취하라’는 시에 충실했다. 술에, 술이라든지, 술이나, 술에 취해 있었다(웃음). 안영이 상사인 하대리 역을 맡았던 전석호 형이 분위기 메이커였다. 저희들과 더 위 선배들의 이음새 역할을 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바로 현지화가 되더라. 여자 스태프들에게도 가장 인기가 좋았다.”



-영화 ‘변호인’ 출연진과도 가끔 얘기하나.

“변호인 출연자들과도 여전히 소통한다. 김영애 선생님이 힘 빼고 하라고 말씀해 주신다. 그때와는 달라진 것 같다고도 말해주셨다. 지금 느낌 잊지 말라고.”



-존경하는 배우가 있나.

“대명이 형(김대명)과 요한이 형의 연기를 보면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15화에 찜질방에서 물건 파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들의 연기를 참고한 것이다. 그들은 정말 뜨겁게 연기하는 사람들이다. 저에게는 없는 면이다. 젊음은 뜨겁다고들 하는데 저는 차갑게 보낸 것 같다. 이성민 선배가 ‘생긴 대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도 마음에 남는다.”



-내년 계획은 뭔가.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계획을 세우진 않는다. 다가오는 걸 열심히 받아오는 것에 수긍하고 묵묵히 열심히 하려고 한다. 내년도 올해만 같았으면 좋겠는데. 앞으로 올 해 같기는 힘들 것 같다. 그저 흘러가듯 무사히 지나갔으면 좋겠다.”



-배우로 기억되고 싶나, 가수로 기억되고 싶나.

“뭐든 기억만 됐으면 좋겠다.”







이정봉 기자 mo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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