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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에너지 전쟁’은 기회다

중앙선데이 2014.12.28 03:02 407호 31면 지면보기
‘격동의 한 해였다’는 표현이 가장 어울릴 만한 산업은 올해의 경우 단연 에너지 분야다. 연초 배럴당 100~110달러를 오르내리던 국제원유 가격은 50달러대까지 폭락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증산을 주도하면서 2009년 5월 이후 가장 낮은 가격대에 머물고 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아내 펑리위안의 어깨에 담요를 둘러 주던 장면에 많이 가려졌지만, 지난달 바로 그 만남에서 중·러는 초대형 계약을 성사시켰다. 러시아 서부 시베리아와 중국 서부지역을 가스관으로 연결해 연 300억㎥의 가스를 30년 동안 공급하는 프로젝트다. 양국은 5월엔 시베리아 극동과 중국 동북지역을 가스관으로 연결해 연 380억㎥씩 공급하는 4000억 달러(약 440조원)짜리 계약을 성사시킨 바 있다. 지난해 350조원 규모의 원유 거래를 포함하면 중·러는 2년간 3차례에 걸친 계약서 사인으로만 1000조원 이상의 현금과 에너지를 교환하게 된다. 천문학적인 금액이요, 어마어마한 물량이다.

사우디 증산과 중·러의 밀착은 동전의 양면이다. 별개의 사안이 아니라는 얘기다. 사우디 증산은 미국 셰일가스뿐 아니라 러시아 에너지 수출도 동시에 공격한다. 러시아는 에너지 생산 세계 3위, 수출 1위(2011년 기준) 국가다. 에너지는 러시아 세수의 50%, 수출의 70%를 차지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러시아가 자국 재정의 손익분기점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야 한다. 사우디 공격이 러시아에 치명적임을 보여 주는 수치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미국의 경제 제재에 이어 사우디 증산이라는 공격을 받은 러시아는 중국에서 탈출구를 찾고 있다. 중국 내륙 깊숙이 파이프라인천연가스(PNG)을 건설함으로써 미국 액화천연가스(LNG)로부터 아시아 시장을 지켜내려 하고 있다. 지난달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과 에너지경제연구원이 함께 개최한 에너지 학술대회에 참석한 국제에너지 전문가 백근욱 옥스퍼드에너지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 현상을 “PNG를 앞세운 러시아의 ‘피벗 투 아시아(Pivot to Asia·아시아 중시 정책)’와 LNG를 앞세운 미국의 ‘피벗 투 아시아’가 중국에서 강하게 충돌하는 양상”이라고 진단했다.

메이저 산유국들의 경쟁은 원유·가스 수입국인 우리나라에 새로운 자원외교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중동산, 미국의 셰일과 LNG, 코앞 중국 산둥반도까지 들어오는 러시아 PNG라는 세 개의 꽃놀이패를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은 러시아 PNG와 미국 LNG 간에 가격 경쟁을 부추길 움직임이다. 우리도 좋은 패를 거머쥔 지금을 ‘산업의 쌀’ 에너지를 확보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에너지 분야에서의 ‘격동’은 새해 상반기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올해 다소 미흡했더라도 시간은 있다. 그래서 에너지 당국에 묻고 싶다. 새해엔 우리 ‘산업의 쌀’ 창고가 과연 두둑해지는지, 에너지 해피 뉴 이어를 기대해도 되는지 말이다.


박태희 경제부문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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