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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문화, 한국과 미국 차이

중앙선데이 2014.12.28 03:03 407호 31면 지면보기
미국에는 전통적으로 사람의 성(姓)을 그대로 사용한 거리와 건물이 많다. 이런 문화에 힘입어 대학 컴퍼스에도 개인의 이름을 붙인 장소가 적지 않다. 건물명뿐 아니라 연구소나 강의실도 그렇다. 최근에는 이름을 함께 붙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 대학뿐 아니라 박물관이나 미술관 같은 문화시설에도 이런 사례가 늘고 있다. 건물을 짓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은 기부자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서다.

미국은 기부의 사회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기부문화가 널리 확산돼 있다. 특히 미국 역사상 가장 부자였던 존 D 록펠러와 그 후손들의 기부는 엄청났다. 시카고대학, 록펠러대학, 유엔본부 부지 등 부동산 기부 외에도 록펠러 가문은 공익재단을 설립해 많은 기부활동을 하고 있다. 록펠러 외에도 앤드루 카네기, 코넬리어스 밴더빌트와 같은 기업가들도 많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2012년 통계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재원을 보유한 비영리 공익재단 30개 중 20개가 미국에 있다. 세계 1위도 2000년에 설립된 빌 & 멀린다 게이츠 재단이다.

미국에 비해 유럽의 기부문화는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혜택이 많기 때문이다. 공익재단 대신 정부가 직접 나서고 있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유럽 대학의 등록금은 아주 저렴하거나 무료인 경우가 많다. 미국 대학들의 등록금은 매우 비싼 편이다.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세계 30대 공익재단에 한국 단체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한국의 공익재단은 규모가 작아 예산도 적다. 국제적으로 기부 현황을 연구하는 영국의 세계자선지원재단(World Charities Aid Foundation)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기부 랭킹은 60위다.

물론 한국의 대학을 방문하면 대기업이 지어 기증한 건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건물 앞에는 기증 재단이나 재단 설립자 이름을 새긴 기념물이 서 있다. 대기업들은 앞다퉈 장학재단 등을 설립해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포스코가 설립한 포스텍(포항공대)과 삼성문화재단의 삼성미술관 리움이 그 예다. 이를 볼 때 한국에도 엄연히 기부문화가 존재한다. 다만 좀 더 살펴보면 한국의 경제규모에 비해 그 내용은 빈약한 편이다. 특히 사회안전망이 튼실하지 못한 것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또 한국의 기부문화는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상당수 공익재단은 지속적으로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기부 참여자의 폭에서도 차이가 난다. 미국에선 성공한 졸업생들이 자신의 출신 대학에 개인적으로 기부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한국에서 재벌이 설립한 공익재단의 역할을 미국에서는 개인들이 하고 있는 셈이다.

2012년 대통령선거 때 후보들은 너도나도 한국의 복지 시스템을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그러나 고령화가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국의 노동인구는 2016년을 정점으로 이후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체 인구도 2025년 이후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노동인구의 부족에 따른 재정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당연히 복지에 투입할 예산도 더욱 빠듯해질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이미 유럽에서 나타났다. 유럽에서는 고령화 사회로 인해 복지혜택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기부문화의 확산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대기업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기업 홍보를 위한 일회성 기부의 틀을 깨야 한다. 소외 계층을 돕고 후세를 육성하기 위한 지속적인 지원사업이 필요하다. 한국의 기부 랭킹이 세계 10위 안에 들 날을 기대해 본다.



로버트 파우저 미국 미시간대에서 동양어문학 학사와 언어학 석사를, 아일랜드 트리니티대에서 언어학 박사를 받았다. 일본 교토대와 서울대에서 교수로 재직한 후 현재 미국에서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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