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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불능’ 조롱받던 브라질, 정치개혁 후 성장궤도 진입

중앙선데이 2014.12.28 00:38 407호 10면 지면보기
지난 10월 26일(현지시간) 브라질 대선 결선투표에서 근소한 차이로 승리한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왼쪽)이 전임자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과 함께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AP]
헌법재판소가 지난 10월 말 현행 국회의원 선거구의 인구 상·하한선 비율(3대 1)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림에 따라 대대적인 지역구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정치학계에선 이 기회에 비례대표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온다. 국회의원들은 반대 입장이다. 군소정당의 출몰로 정치 불안이 심화되고, 통치 불능이 된다는 주장이다. 그럼 완전한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한때 통치 불능에 빠질 것으로 예견되던 브라질은 어떤 길을 걸었을까. 최근 유가 하락으로 브라질 경제가 다소 흔들리곤 있지만, 10년 주기로 보면 펀더멘털이 확실히 개선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브라질의 정치경제에서 시사점을 찾아본다.

‘남미 대국’에서 배우는 불황 탈출의 지혜

 브라질은 영토·인구 양면에서 세계 5위의 대국이다. 작곡가 필립 글래서는 브라질을 ‘아마존의 물’과 ‘호시냐의 낮과 밤’이라는 음악으로 형상화했다. 글래서는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의 신비함을 전통악기로, 남미 최대 빈민촌 호시냐의 처연함을 관현악으로 묘사했다. 뉴밀레니엄 시초부터 아마존과 호시냐에서 대변화가 시작됐다. 1980년 세계 15위였던 브라질의 국민총생산은 2014년 7위로 올라섰다. 경제대국의 반열에 든 셈이다. 다극체제 국제질서에서 라틴아메리카 패권국으로 지칭될 정도다.

민주화 후 남은 건 외채와 인플레
역사적으로 브라질은 다양한 정치경제적 변화를 겪었다. 70년대 후반까지는 ‘경제 기적’을 달성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부(富)가 고소득층으로 몰리도록 방치하는 이른바 ‘상향 재분배’ 정책과 수입 대체화 전략으로 내수 시장의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이게 경제위기를 부른 배경이다. 이후 80년대부터 브라질은 경제 침체와 외채 위기의 함정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현재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브라질의 배가 넘지만, 80년 당시엔 브라질이 우리의 1.3배 정도였다. 이를 감안하면 브라질의 장기 침체를 실감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권위주의 정권이 몰락하고 민주화를 이뤘지만, 과거 정권은 과다 외채와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유산으로 남겼다.

 88년 민주화 신헌법이 만든 정치제도는 대통령제와 개방형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결합이었다. 후자는 국내에서 논의되는 독일 또는 오스트리아식 비례대표제와는 달리 개별 후보자의 선거비용이 높기 때문에 정치적 부패의 근원이 됐고, 군소정당이 극도로 난립하게 됐다. 민선 대통령들은 경제 침체, 과다 외채, 하이퍼인플레이션, 극단적인 양극화와 같은 산적한 사회경제적 난제들을 2000년대 초까지 해결할 수 없었다. 정치와 경제 양면에서 고조된 위기를 계기로 학계는 ‘브라질이 통치 불능(ungovernability)에 빠졌다’고 빈정거렸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학계는 갑자기 브라질에 통치 불능 개념을 적용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몇 년 만에 정반대의 결론이 도출된 이유는 뭘까.

 브라질은 35년부터 우파정권의 군사독재가 계속되다가 2002년 노동자당의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좌파정권이 처음 출범했다. 룰라 대통령 취임 이후 브라질은 2005년 대외부채를 청산했고, 고도성장도 달성했다. 브라질의 경제성장은 국제학계의 성장-분배 논쟁에 파장을 줄 만큼 의의가 있다. 소득 양극화의 완화와 사회 발전이 동반된 경제성장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브라질의 지니계수는 국제적으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2002년 0.589에서 2009년 0.547로 낮아졌다. 경제성장률은 90년대 연평균 2.9%에서 2000년대 4.5% 이상을 달성했다. 최근엔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의 여파로 성장세가 주춤하곤 있지만, 잠재력은 여전히 크다.

 브라질의 사회경제적 대변화의 요인들은 열거하기도 복잡하고 그 요인들 간의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따라서 브라질의 장기 침체가 시작된 시기의 내수·성장과 대비해 요인들을 규명해보자.

 우선 브라질이 막대한 대외부채를 조기에 상환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특수로 인해 무역흑자가 증대됐기 때문이다. 물론 수출 호조와 대외부채 청산은 성장의 한 조건일 뿐이지 결정적인 동인은 아니다. 브라질은 20년대에도 원료품의 수출확대 추세 속에서 산업 생산의 성장 부진을 겪은 바 있다.

 학계에선 시각이 엇갈린다. 한쪽에선 ‘룰라가 전임자 페르난두 카르도주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계승·유지한 것에 불과하다’는 견해, 다른 한쪽에선 ‘룰라가 신자유주의의 벽을 넘어섰다’는 입장이 극명하게 대립한다. 카르도주가 95년 재무장관 시절부터 추진한 ‘헤알 계획’이 만성적 초인플레이션을 퇴치해 물가 안정을 이룬 것은 사실이다. 수출 호조처럼 물가 안정도 경제성장의 주요 조건이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다. 이외에 룰라가 8년 재임을 한 카르도주의 경제정책을 부분적으로 지속한 것도 사실이다.

 결정적인 차이점은 사회정책과 고용정책에 있다. 룰라의 적극적인 사회정책과 고용정책에 의거해 내수가 역동적으로 활성화되면서 경제성장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그에 앞서 카르도주는 시장 조정 기능에 의존해 임금 정체를 고용 확대라는 관점에서 수용했다. 반면 룰라 정부하에선 90년대 중반 이후 처음으로 실질임금이 오르기 시작했다. 고용창출 프로그램이 적극 추진되면서 실업률도 60년대 이후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 룰라는 사회정책의 공공부조인 가족수당을 확대해 3000만~4000만 명의 인구를 절대빈곤층에서 중간계층으로 상승시켰다. 이로써 빈민촌 호시냐에서 흙·판자 움막이 사라졌고, 모든 가정에 처음으로 전기와 상수도가 공급됐다.

 최근 성장세가 둔화되고 양극화 갈등이 재발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난 10월 대선에서 룰라의 후계자 지우마 호세프가 당선된 것은 바로 그 같은 사회경제적 성과 덕분이다. 중도 좌파 호세프는 2차 투표까지 가서 카르도주의 후계자인 중도 우파 사회민주당 아에시우 네베스 후보를 꺾었다. 호세프는 1차 투표에서는 좌파인 사회당 마리나 시우바 후보에게도 승리했다.

 노동자당의 16년 장기 집권이 가능해진 이유는 빈곤층의 압도적인 지지 때문이다(빈곤층 유권자가 많은 브라질에선 거의 모든 정당이 좌파 냄새가 나는 당명을 걸고 있어서 당명만으론 노선을 알기 어렵다). 마리나 시우바는 원래 룰라 정부의 환경부 장관이었으나 룰라의 아마존 개발과 노동자당의 부패를 비판하며 그와 결별한 환경주의자다. 브라질 국민이 환경 보호, 부패 문제보다도 최소한의 인간 존엄성에 대한 희망을 더 우선시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면 노동자당의 장기 집권을 이해할 수 없다.

임금상승 없는 투자 확대론 성장 한계
브라질의 사회경제적 성장의 핵심 요인은 결국 하위계층에 변화를 준 정책에서 찾아야 한다. 경제구조와 발전 단계는 다르지만 브라질이 한국의 장기 불황에 주는 교훈도 여기에서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장기간 정체된 실질임금의 향상, 그리고 노동소득 분배율의 반전을 도모하지 않은 채 기업에 일방적으로 투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식의 정책만으론 내수 활성화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나아가 국민의 다양한 정치적 의사를 정교하게 반영하고 대표하는 방향으로의 정치 개혁이야말로 긴 안목으로 경제적 변화를 가능하게 만든다는 게 브라질의 경험에서 잘 드러난다.



이국영 성균관대에서 학부 때 경제학을, 대학원에선 정치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독일 콘스탄츠대학에서 사회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노무현 정부 사회정책 비판』『공황』『자본주의의 역설』등이 있다. 현재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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