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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에 담은 한국정치

중앙선데이 2014.12.28 01:06 407호 14면 지면보기
描虎類犬<묘호류견>
호랑이를 그리려다 실패해 개와 비슷하게 됐다.

사자성어와 숫자로 돌아본 ‘2014 대한민국’

지방선거를 석 달여 남겨 둔 3월 2일,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새정치연합 안철수 의원은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일요일의 폭탄’이라고 할 만큼 느닷없는 야권발 정계 재편이었다. 제3의 정치세력이 등장하길 고대하는 지지자들의 바람과 달리 안 의원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고, 통합의 명분으로 기초선거구 무공천을 내세웠다. 하지만 통합 과정은 순탄치 않았고, 급기야 당내 여론조사를 통해 무공천을 철회하면서 안 의원의 정치적 입지는 위축됐다. 6·4 지방선거에선 선방했으나 두 달 뒤 7·30 재·보궐선거에서 공천 잡음을 이겨 내지 못하고 4대 11로 참패했다. 2012년 대선 국면을 뜨겁게 달궜던 ‘안철수 현상’도 식어 버리고 말았다.

勸上搖木 <권상요목>
나무에 오르라 하고 흔들어 떨어뜨린다.

7·30 재·보궐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물러난 뒤 새정치민주연합은 박영선 비대위 체제를 출범시켰다. 486 강경파들의 지지가 컸다. 박 위원장은 세월호특별법 처리에 공을 들였고,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의 줄다리기 끝에 극적인 타결을 이뤘다.
문제는 그 뒤였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반대하자 당내 여론은 급속히 냉각됐고, 강경파가 앞장서 ‘박영선 책임론’을 제기했다. 여당과의 협상이 당내에서 두 차례나 부결되면서 박 위원장의 리더십은 크게 손상되고 말았다. 일종의 출구전략이었던 ‘이상돈·안경환’ 영입마저 당내 강경파에 막혀 좌절되자 그는 “탈당 불사”를 선언하기도 했다. 야당 계파정치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 줬다.

狗尾續貂 <구미속초>
담비 꼬리가 모자라 개 꼬리로 잇는다. 쓸 만한 인격자가 없어 자질이 부족한 사람을 고관에 등용한다.

국무총리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 앞서 연달아 낙마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은 전관예우 논란에 휩싸여 후보 지명 6일 만에,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은 친일 프레임을 뒤집어씌운 KBS의 편파·왜곡보도에 휘말려 14일 만에 사퇴했다. 반면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부실 대응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던 정홍원 총리는 지금까지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밖에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 정성근 문체부 장관 후보자, 송광용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등이 낙마하거나 중도 하차했다. 청와대의 부실한 인사검증 시스템과 대통령의 수첩 인사에 대한 비난여론이 집권 2년차에도 이어졌다.

言過其實<언과기실>
말이 실제보다 지나치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에 대한 공감대가 어느 때보다 컸다. “개헌은 블랙홀”이라며 대통령이 진화에 나섰지만 정치권의 개헌 논의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10월 16일 중국 방문 중 기자들에게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 논의가) 봇물이 터질 것”이라며 대통령이 외교와 국방을, 총리가 내치를 맡는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하지만 그는 이튿날 귀국하자마자 “대통령께 죄송하다”고 사과해 발언을 철회했다. 7월 출범한 ‘김무성호 새누리당’은 “대통령에게 할 말은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결정적 순간마다 청와대 눈치를 보는 장면이 포착됐다.

倚門之望<의문지망>
어버이가 자식이 돌아오기를 문에 의지하며 기다린다.

서울시장 선거에 뛰어든 정몽준 의원은 4월 중순만 해도 박원순 서울시장을 뛰어넘어 차기 유력 대권주자 0순위였다. 하지만 막내아들이 “국민 정서가 미개하다”는 트윗을 올리는 순간, 승부는 갈리고 말았다. 눈물로 호소하며 당내 경선은 통과했지만 본선 무대에선 13%포인트 차의 완패였다.
고승덕 서울시 교육감 후보 역시 선거 나흘 전 미국에 거주하는 딸이 ‘자녀 버린 내 아버지, 교육감 자격 없다’는 글을 올려 큰 파문을 일으키며 고배를 들고 말았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군 복무 중인 아들이 후임 병사에게 가혹행위를 한 사실이 적발되면서 고개를 숙여야 했다. 정치인 외에도 ‘땅콩 회항’ 사건으로 인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과까지 어느 때보다 ‘자식 리스크’가 사회지도층의 주요한 화두로 등장한 한 해였다.

股肱之臣<고굉지신>
다리와 팔뚝에 비길 만한 신하. 임금이 가장 신임하는 중신(重臣)을 이르는 말.

정윤회씨가 비선 실세로 국정을 농단하고 있다는 청와대 문건이 유출돼 12월 정국을 강타했다. 세계일보의 보도를 시작으로 조응천·박관천 등 전 청와대 비서관이 전면에 등장했고, 여기에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폭로가 가세했다. 문건 유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최모 경위는 급기야 자살을 택했다. 박지만·정윤회 권력 암투설과 함께 세간의 눈길을 끈 건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인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었다. 이들이 인사를 좌지우지한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제기됐으나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문건은 찌라시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捲土重來<권토중래>
한번 싸움에 패했다가 다시 힘을 길러 쳐들어온다.

고질적인 영호남 지역구도가 마침내 균열을 일으킨 한 해였다. 신호탄은 대구였다. 6·4 지방선거에서 새정치연합 김부겸 전 의원은 40%가 넘는 득표율로 선전했다. 결실은 7·30 재·보궐선거였다. 야권의 아성인 전남 순천-곡성 지역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는 49.4%의 득표율로 새정치연합 서갑원 후보(40.3%)를 물리쳤다. 1988년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이후 광주전남에서 일궈 낸 현 여권의 첫 번째 승리였다. 이 의원 개인으로서도 17대 때 광주 서을에서 단 720표(1.04%)에 그쳤던 굴욕과 19대 때 39.7%의 득표율로 고배를 들었던 아쉬움을 떨쳐냈다. 지역주의의 피해자라 할 수 있는 호남 지역이 스스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었다는 점도 높이 평가됐다. 지금은 ‘예산폭탄’ 논란의 한가운데 서 있다.

事必歸正<사필귀정>
무슨 일이든 결국 옳은 이치대로 돌아간다.

헌법재판소는 12월 19일 통합진보당 해산을 선고했다. 헌재의 정당해산 결정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헌법재판관 9명 중 8명이 통진당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소속 의원 5명의 의원직도 박탈됐고, 통진당 잔여 재산은 국고 귀속 절차에 들어갔다. 여당은 “사필귀정”이라며 환영한 반면 야당은 “정당 자유가 훼손됐다”고 우려했다. 헌재의 보수화에 대한 우려와는 별개로 정치적 이슈가 터질 때마다 사법부가 재단하는 게 바람직한지에 대한 근본적 문제 제기도 있었다. 종북과 분명히 선을 긋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려는 진보진영의 움직임도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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