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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삶 느린 생각] 사회 문제의 해결은 경제 안정을 위한 필수적 방법

중앙선데이 2014.12.28 02:40 407호 28면 지면보기
일러스트 강일구
그 크기를 정확히 저울질할 수는 없지만 큰 사건들이란 인상을 주는 사건들이 끊임없이 보도되고, 그러한 사건들은 삶의 환경 전체에 불안감을 증대시킨다. 최근의 ‘땅콩 회항사건’,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 등이 그러한 사건들이다. 그것들은 우리의 사회문화, 정부의 기강, 체제의 건강에 대한 불안을 증대시키는 증후로 우리 마음에 작용한다.

큰 문제, 작은 해결책들

물론 큰일이 없는 안정된 사회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한없이 많은 사람이 살고 한없이 많은 요인이 얽혀 있는 사회에는 늘 사건이 있고, 변화가 있어야 당연한 것이 아닌가? 일어나는 사건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은 보도매체의 발달로 사건 보도가 많아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역사적으로 일찍이 보지 못했던 사회 변화-그것도 여러 복합적 요인이 얽혀 드는 사회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 오늘의 한국 사회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우리는 너무 쉽게 긴장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전체적 사회 상태에 대한 불안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러나저러나 사건들을 증후적인 일로 받아들이면서 사회 전체의 상태를 진단하는 것은 사람들의 사회 인식의 관습이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생활의 범위-말하자면 동네와 같은 범위를 넘어 보다 큰 테두리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해 왔다. 바로 나라나 국가는 이러한 테두리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테두리를 이룬다. 이상향 또는 유토피아에 대한 꿈은 이 테두리 전체를 이상화해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사회 전체가 문제가 있다고 느껴질 때 더욱 강력한 이상이 된다. 마르크스주의는 유토피아의 이상이 현실 역사의 과정으로 실현된다는 것을 말한 것인데, 이와 비슷하게 자본주의적 근대화론-가령 월트 로스토의 『경제발전의 단계』와 같은 것은, 그 부제 ‘반공산주의 선언’이 말하고 있듯이 마르크스주의에 대항해 풍요사회의 도래가 역사의 현실일 수 있다는 것을 이론화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말의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은 공산주의 유토피아가 정연한 계획으로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줬다. 그런가 하면 자본주의적 발전이 드러내는 여러 사회적·인간적·경제적 모순은 자본주의의 풍요도 쉽게 인간적 풍요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 혁명론을 촉발한 원인은 자본주의가 가진 모순에 있다. 그리고 이 모순은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자유민주주의 관점에서도 이 모순은 해결을 요구한다. 현실 사회주의 실패가 보여 준 것은 그 해결이 하나의 정연한 계획에 의해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의 현실 진단 전부가 타당성을 잃었다고만은 할 수 없다. 위에서 언급한 ‘작은’ 사건들이 사회 그 자체를 넘어가는 불안감을 가지게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사회의 전체적 기반이 불안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파시즘·전통 사회주의가 대안 될 수 있을까
미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리처드 D 울프가 최근 한 인터넷 논단에 발표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분석은 현대 경제의 문제점을 전체적으로-경제적으로만이 아니라 인간 문제와 관련해, 보다 넓게 살펴보는 데 일단의 도움을 준다. 그리고 주목할 것은 전체 체제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가 생각하는 것이 혁명론이 아니라 부분적 수정의 방안이라는 점이다. 그가 지적하는바 성과와 함께 문제-근본을 흔드는 커다란 문제를 만들어 내는 것이 현대 경제라는 점은 많은 사람이 인정하는 사실일 것이다. (물론 큰 인간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결이 또 다른 문제를 배태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할는지 모른다.) 자본주의 경제가 가져오는 문제-주로 사회적·인간적 문제가 커지기 시작하면 거기에 대한 극단적인 정치 계획이 등장한다. 그러한 대안적 체제 혁명을 구상하는 것이 파시즘이나 ‘전통적’ 사회주의이다. 그것은 시장의 경제 체제를 국가가 통제하는 체제로 바꾸고자 한다. 파시즘은 국가가 자본가와 합작해, 그리고 전통적 사회주의 체제는 국가 관료조직을 통해 생산·분배·소비 등의 문제에 새로운 해결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전체주의적 계획은 이미 과거에 실패로 끝났다고 하겠지만, 그것이 다시 발호하고 있는 증후들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울프 교수는 생각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 있어서도 이러한 경향들이 대두되는 것은 물론 자본주의 체제가 가지고 있는 원천적 문제-그러면서 주기적으로 악화되는 문제로 인한 것이다. 문제들에 대해 자본주의는 그 나름의 자기 수정책을 가지고 있다. 세금 누진제, 최저임금제, 독점 규제, 관세 등을 통해 시장과 분배를 조정하려는 정책들이 그러한 시정책의 일부다. 서구식 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 체제는 이러한 보완책을 조금 더 강화한 것이다. 그것은 생산수단의 소유나 자원과 생산품 분배 등의 기능을 대체로 시장에 맡기면서 정부의 사회정책을 강화해 시장 기능을 조정하고, 재정통화정책으로 경기 순환의 문제를 완화하려 한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이러한 수정책들이 별로 성공하지 못했기에 유럽과 미국에 다시 파시즘과 ‘전통’ 사회주의가 대안으로 대두되고 있다는 것이 울프 교수의 판단이다. (이러한 사정은 일본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자본주의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정파 갈등, 정당정치의 부패 등으로 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그의 생각으로는 기업이 생산활동을 아시아·남아메리카·아프리카 등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된 데 있다. 그에 따라 기업과 금융의 이익은 극대화됐지만 고용, 사회복지 혜택, 직업 안정성, 임금 등은 전혀 향상되지 못했다.

울프 교수가 제안하는 대안은 기업 체제, 그리고 거주 공동체의 적극적인 민주화다. 그는 보다 작은 기업들의 조직화에 기초해서만 대기업이 성립돼야 한다고 본다. ‘노동자가 자결권을 행사하는 소기업’들이 산출하는 부(富)가 정부의 기초가 돼야 한다. 그리고 국가의 중요한 결정들은 이러한 소기업과 민주적인 공동체와 상호 협조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것은 생산·기술·잉여이익·투자 등에 관한 결정들을 포함한다. 울프의 생각에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는 생산시설의 위치에 관한 것이다. 민주적 결정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로부터 개발도상국으로 생산지가 이동하는 것을 방지해 노동소득의 배당률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생산과 사회의 새로운 체제에 대한 울프 교수의 제안을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그것을 평가하는 데 가장 큰 난점은 그의 제안이 어떤 방식으로 현실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후진 경제 지역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거의 전적으로 선진 지역의 자기 방어적인 목적을 가진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울프 교수의 제안의 의의는 기존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해결하지 않고는 지속될 수 없는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는 점이다.

고용문제에 둔감한 정부 경제혁신 정책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그의 제안이 부분적인 시정책이고, 열려 있는 공론의 광장에서 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비슷하게 논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생각들은 다른 데서도 발견할 수 있다. 최근 우리 정부는 경제 혁신을 위한 새로운 정책들을 발표하고 있지만, 거기에서 고용 문제는 그렇게 주목 받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여기에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워싱턴 소재 경제정책연구센터 창시자의 한 사람인 딘 베이커 교수의 고용정책에 관한 제안이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장하준 교수도 이 연구소에 관계하고 있다.)

그는 한 인터넷 논단에서 미국이 실업자 문제를 해결하고 완전고용을 현실화하고자 한다면 독일의 예를 참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제안의 핵심은 노동 분담의 개념이다. 즉 같은 일을 두고 그것을 많은 사람이 나눠 가질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있는 직장에서의 노동시간을 줄임으로써 가능하다. 간단히 생각하면, 이것은 노동자 임금의 감봉을 의미하거나 기업의 임금 지출 부담 가중화를 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은 노동시간의 단축으로 노동자가 잃게 되는 임금 손실을 정부로 하여금 보상하게 하자는 기획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부담은 어떻게 처리되는가? 고용이 줄지 않고 불어나면, 정부의 실업자 수당 지급이 줄어든다. 이뿐만 아니라 고용 증대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더 많은 세입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노동 분담을 통한 완전고용정책은 어느 쪽에도 부담을 늘리지 않는다. 이런 제도하에서 독일의 노동자들은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가족 휴가, 병가, 몇 주일의 휴가를 즐길 수 있다.

독일의 현재 상황은 베이커 교수의 제안을 그대로 뒷받침한다. 여러 연구기관의 통계를 인용하고 있는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21세기 들어 가장 낮은 경제지표를 기록한 2005년을 벗어나 현재 독일은 최고의 고용률을 누리고 있다. 그에 따라 늘어난 세수가 340억 유로다. 동시에 피고용자의 사회보장기금 기여액도 크게 늘어 150억 유로 정도가 됐다. 실업수당·주택보조금 등의 사회보장 지출은 크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정년 후의 연금이나 건강보험 기여는 어느 때보다 튼튼한 기반 위에 서 있게 됐다. 위에 든 숫자들의 의미를 여기에서 정확히 평가할 수는 없지만 정부의 세입이 늘어나고 사회보장 지출이 준 것은 틀림없다. 그러면서 베이커 교수가 말하는 바와 같이, 독일인들은 안정된 직업과 여가를 즐기게 됐다고 할 수 있다.

베이커 교수의 보고에 의하면 이미 많은 나라가 이러한 정책을 취하고 있고, 미국에서도 그러한 정책을 채택한 주들이 있다고 한다. 비슷한 사회경제정책들로서 이와 다른 여러 가지 예를 들어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스위스에서 한 사람에게 매월 2600달러를 지급하는 방안을 내년에 국민투표에 부친다고 한다는 뉴스만 언급해 본다.

이러한 제안이나 사실들이 말해 주는 것은 사회 문제 해결이 경제 안정을 위한 필수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의 시점에서 정녕코 이념이나 정파를 초월한 시대의 과제가 아닌가 한다. 그러한 과제가 풀리면, 문화의 문제나 정치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도 보다 쉬운 일이 될 것이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미국문명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 첫 저서 『궁핍한 시대의 시인』 이후 『지상의 척도』 『심미적 이성의 탐구』 『자유와 인간적인 삶』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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