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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영 기자의 '오늘 미술관'] 피에타

중앙일보 2014.12.26 08:00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론다니니 피에타, 1552∼64년경, 대리석, 높이 195㎝, 밀라노 스포르체스코 성.




뜻깊은 성탄절 보내셨는지요. 이제 우리가 알고 있는 결말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죠, 2000년도 더 된.

예수의 탄생을 그린 많은 예술가들이 예수의 죽음 또한 다뤘습니다.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오열하는 성모, 피에타로 알려진 주제죠. 위의 조각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가 89세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붙잡고 있었던 미완성작, 론다니니의 피에타입니다.





론다니니 피에타 부분.




미켈란젤로는 돌을 깎아 그 안에 숨은 형체를 보여줬다고 평가받는 천재입니다. 그의 유작이 된 피에타에는 절규도 오열도 없습니다. 더이상 울 힘도 남지 않은 것 같은 어머니가 먼저 간 아들의 육신을 들어올리려 하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죽은 아들의 몸에 겨우 기대어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돌에서 나오다 만 듯한 성모자가 품은 슬픔이 500년 뒤의 우리에게까지 전해지는 듯합니다.



미켈란질젤로 부오나로티, 피에타, 1498∼1500년, 대리석, 174×195㎝,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




미켈란젤로가 20대에 만든 걸작, 피에타 중의 피에타로 자리잡은 이 조각을 함께 보실까요. 아들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어머니는 장성한 아들의 시신을 가볍게 무릎에 얹고 있습니다. 비현실적일만큼 궁극의 아름다움입니다. 미켈란젤로는 그저 현상을 미화하기 위해 이렇게 했을까요. 성모의 얼굴에 대해 신준형 서울대 교수는 “이 모든 수난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거대한 계획이고, 고통은 일시적인 것, 영광의 순간이 곧 오리라는 것을 굳게 믿는 의연한 표정”(신준형, 『뒤러와 미켈란젤로』, 사회평론)이라고 설명합니다. 세상의 슬픔, 인간의 슬픔을 넘어서는 궁극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 당시 피렌체 예술가들의 목적이었습니다.



50여년 사이에 미켈란젤로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예술가가 나이를 먹으면서 성모 또한 원숙해진 걸까요. 여러분은 어떤 피에타에 감응하시나요.



권근영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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