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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기업인 사면의 흘러간 옛노래

중앙일보 2014.12.26 00:02 종합 35면 지면보기
선사가 제자들에게 물었다. “두 사람이 굴뚝에서 나왔다. 한 사람은 얼굴에 그을음이 잔뜩 묻었고 다른 사람은 깨끗했다. 누가 얼굴을 씻겠느냐.” “당연히 더러워진 사람이 씻지요.” 입을 모으는 제자들에게 군밤을 한 대씩 먹인 뒤 선사가 말했다. “재 묻은 사람은 깨끗한 사람의 얼굴을 보고 제가 더러워진 줄 모르고, 깨끗한 사람이 상대를 보고 자기도 더러울 거라 생각하며 씻게 되니라.”



 성탄절 아침에 뜬금없이 스님들 얘기가 떠오른 건 조간에 실린 두 기사 때문이다. 하나는 미국의 3분기 성장률이 5%로 11년 만의 최고치에 달했다는 외신이고, 또 하나는 정부·여당 일각에서 기업인 사면·가석방의 군불을 때고 있다는 국내 기사다.



 세계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나 홀로 성장’을 하고 있는 미국에 그러잖아도 배 아픈 참에, 우리네 저질 경제 체력의 해법을 죄 지은 기업인들을 풀어주는 데서 찾아야 하는 현실에 거룩한 날 아침부터 인상이 찌푸려졌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까닭에 더 그렇다. 이럴 때마다 등장하는 레퍼토리를 외우고 있을 정도다. “경제위기 극복 차원” “혼날 만큼 혼났으니 선처해야…” “오너 결심 없이는 기업이 투자 못한다.”



 범죄 기업인이 나오지 않으면 위기 극복이 불가능하다는 건지, 그가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경제위기가 없었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형기를 남겨뒀는데 혼날 만큼 혼났다면 법원이 지나치게 형량을 많이 매겼다는 것과 다름아니다. 오너들은 왜 죄를 짓고 감옥에 가야만 투자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지도 궁금하다. 그런 흘러간 옛노래는 다시 부르지 말 일이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진정 있다면 말이다. 오히려 ‘기업인 범죄에 선처 없다’는 원칙을 이제라도 만드는 게 우리 경제에 보약이 될 터다. 범죄 기업인 회사에도 마찬가지다.



 미국 경제에 기업인 사면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들이 잘나가는 건 글로벌 금융위기를 선제적 구조조정으로 이겨낸 결과다. 그래서 저유가 호재를 제대로 탈 수 있는 건강 체질이 됐다는 말이다.



 제자들이 볼멘소리로 물었다. “똑같이 굴뚝에 들어갔는데 어찌 한 사람만 재가 묻을 수 있습니까?“ “똑같이 악 속에 있어도 악에 물들지 않는 사람이 있느니라.” 악에 물든 기업인보다 물들지 않은 기업인들의 어려움에 귀를 기울이는 게 낫다는 얘기다. 깨끗한 사람이 다시 씻으면 더욱 예뻐지지만 재 묻은 걸 놔두고 옷 치장만 해준다고 태가 날 리 없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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