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들 잃고 '환자안전법' 제정 이끈 김영희씨

중앙일보 2014.12.25 00:56 종합 13면 지면보기
담뱃값 2000원 인상, 환자안전법 제정 등 의료·과학 분야에 세상을 놀라게 한 일들이 적지 않았다. 가수 신해철씨의 사망으로 의료 안전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종현 엄마’ 김영희씨의 열정이 빛을 발했다. 김씨는 의료사고로 아이를 잃고 나서 재발 방지 장치 마련을 위해 4년 반 동안 환자안전법 제정 운동을 벌였는데, 이게 국회 통과를 앞두게 됐다. 갑상샘암 과잉 검진을 고발한 고려대 의대 안형식 교수, 담뱃값 인상을 이끌어온 서홍관 국립암센터 전문의, 공룡 데이노케이루스 미리피쿠스의 미스터리를 푼 이융남 지질박물관 관장이 새뚝이로 뽑혔다.





의사의 항암제 투여 실수로 아홉 살 아들 종현이를 잃은 김영희씨가 대구 반야월성당에 설치된 예수성심상 앞 추모비를 만지고 있다. 전공의들이 모금한 돈으로 5월에 만들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10월 말 가수 신해철씨 사망 사고는 환자가 얼마나 무력한지, 안전한 진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줬다. 이달에 환자안전을 강화하는 획기적인 계기가 마련됐다. 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24일 법사위에서 환자안전법(일명 ‘종현이법’)이 통과됐다. 29일 본회의 통과가 확실시된다. 4일 종현이 엄마 김영희(38·대구 동구)씨는 국회 방청석에서 법 통과 과정을 지켜보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채였다.



 “종현이 같은 피해자를 막을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감격스러웠습니다. 말로는….”



 김씨는 2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아이 생각에 말을 잇지 못했다. 아홉 살 종현이는 2010년 5월 대구의 대학병원에서 백혈병 치료를 받다 숨졌다. 의사가 정맥에 주사해야 할 약(빈크리스틴)을 척수에 잘못 투여하는 바람에 열흘 만에 숨졌다. 병원 측은 사망 원인이 뇌수막염이라고 둘러댔다.



 외국 논문을 뒤지고 유사 사고 피해자를 만나면서 빈크리스틴 사고임이 분명해졌다. 그해 9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동대구역에서 10여 차례 1인 시위를 하고 국민신문고를 두드렸다. 김씨는 병원 내부자의 주사 오류 증언을 확보했다. 주변에서 “증거가 있는데 병원과 의사를 왜 고소하지 않느냐”고 다그쳤지만 공개하지 않았다. 제보자에게 피해가 갈 게 뻔해서다. 2012년 8월 결국 병원 측이 사과했고 빈크리스틴 주사를 맞았던 장소에 종현이 사진이 걸렸다.



 그때부터 한국환자단체연합회(대표 안기종)와 함께 환자안전법 제정에 본격 나섰다. 김씨의 진심이 알려지면서 1만 명이 입법청원에 서명했다. 지난해 4월 국회를 시작으로 토론회가 줄을 이었고 올 1월 새정치민주연합 오제세 의원과 새누리당 신경림 의원이 환자안전법을 발의했다.



 김씨는 매달 한두 번씩 서울을 오가면서 일곱 차례 국회 회의에 참석했다. 여기에 전력하느라 운영하던 수학학원을 접었다. 아이 배상금 중 2400만원을 환자단체연합회에 기부했다.



 김씨는 “환자안전법 덕분에 의료사고가 준다면 종현이에게 ‘네 죽음이 헛되지 않았구나. 고마워’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곽순헌 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법률 제정 과정에서 몇 차례 고비가 있었는데 재발방지 시스템을 마련하려는 김씨의 진심이 전달되면서 고비를 넘겼다”고 말했다.



 환자안전법은 의료사고가 나거나 날 뻔한 일을 의료진이 자발적으로 보고하면 정부가 원인을 분석해 제도적 해결책을 제시해 준다. 병원에 환자안전위원회를 설치하고 전담 인력을 둬야 한다. 보고자 신상 누설 금지 조항도 담고 있다.



신성식 선임기자



◆새뚝이=기존의 장벽을 허물고 새 장을 연 사람을 말한다. 독창적인 활동이나 생각으로 사회를 밝히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 또는 단체다. 중앙일보는 1998년부터 매년 연말 스포츠·문화·사회·경제·과학 분야에서 참신하고 뛰어난 성과를 낸 이들을 새뚝이로 선정해왔다.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