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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찌라시 바늘로는 고래 못 잡는다

중앙일보 2014.12.24 00:03 종합 35면 지면보기
김 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야당과 언론이 권력을 견제하는 건 의무이자 권한이다. 이들의 견제는 파워가 막강하다.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큰 영향을 준다. 그래서 견제는 정확하고 신중해야 한다.



 ‘사실(fact)’에 관한 한 일반인은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다. 생업에 바쁘고 정보도 부족해 그들은 확인해서 말할 수가 없다. 주로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들은 걸 편하게 얘기한다. 사실 여부는 따질 시간도 방법도 필요도 없다. 일반인은 소주를 마시며 소문을 안주 삼아 열을 올려도 된다. 그들의 특권이다.



 하지만 야당과 언론은 다르다. 국가에 미치는 영향력 때문에 그들은 프로페셔널(professional)해야 한다. 그들에겐 그럴 수 있는 방법과 수단이 있다. 정윤회 사건에서 드러난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프로페셔널리즘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야당과 언론은 취임 직후부터 ‘불통과 비밀’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처음 1년 동안은 공세의 방향이 옳았다. 그런데 2년차부터 달라졌다. 대통령의 문제를 비선실세 의혹과 결부시킨 것이다. 급기야 야당은 만만회(박지만·이재만·정윤회)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야당과 언론의 공세는 거칠고 요란했다. 그들에 따르면 정윤회는 커튼 뒤에 숨어 국정에 깊숙이 개입했다. 측근 3인 비서관은 문고리 권력을 남용해 여러 곳에 손을 뻗었다. 야당과 언론은 세상에 나도는 모든 의혹을 동원했다. 급기야 ‘십상시 회동’ 문건까지 등장했다. 이런 공세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문건은 청와대 공식보고서였다. 정윤회가 박지만을 미행시켰다는 건 박 회장 자신이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리고 전직 장관이 “이재만 비서관과 문체부 차관은 한 몸”이라는데 어떻게 이를 외면하겠는가.



 하지만 사실을 확인하려는 노력은 별로 없었다. 음식점과 관련자를 탐문하면 문건이 찌라시 수준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미행자 자술서’가 있다고 하니 이를 공개하라고 요구하면 될 일이었다. 이재만과 문체부 차관은 “모르는 사이다. 최근 국무회의에서 만난 게 처음”이라며 유착설을 부인했다. 그렇다면 이를 발설한 유진룡 전 장관을 추궁했어야 했다. 다른 것들도 이런 식이었다.



 야당과 언론의 주장대로 그렇게 오랫동안 국정농단이 있었다면 흔적이 많이 남았을 것이다. 특히 야당에는 많은 제보가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제대로 확인된 사례는 별로 나온 게 없다. 보통 진실게임에서 당당한 쪽은 적극적인 사람이다. 정윤회는 모든 걸 걸었다. 소송을 제기하고 거짓말탐지기와 대질신문 그리고 자술서 공개를 요구했다. 그는 “하나라도 나오면 감방에 가겠다”고 했다. 반면 상대방들은 뒤로 숨었다. 대통령 동생도, 전직 장관도, ‘제보의 달인’ 야당 의원도, 찌라시 비서관과 경찰관도 모두 피했다.



 이제 진실게임은 거의 끝나가고 있다. 불순하고 무책임한 청와대 비서관과 경찰관의 찌라시 놀음에 모든 국민이 사기당한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도대체 이들은 왜 이런 사기극을 벌였나. 그 이상한 동기야말로 파헤쳐야 할 음모다.



 권력으로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고래다. 고래를 잡으려면 작살을 던져야 한다. 그런데 공격자들은 바늘을 썼다. 찌라시와 ‘카더라’라는 바늘이었다. 고래잡이는 실패했다.



 고래를 잡는 작살은 무엇인가. 그것은 대통령의 3대 문제점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가장 심각한 건 대통령 집무실이 비서실과 500m나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는 구중궁궐(九重宮闕) 속에서 부속비서관 2명만 데리고 고독한 여왕이 되어 있다. 대통령은 2인을 데리고 비서실 건물로 옮겨야 한다. 미국 백악관처럼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야 한다.



 ‘수첩’과 지역편중 인사는 대통령이 인물의 평판과 세상의 불평을 제대로 듣지 못해 생기는 것이다. 외부 인사도 잘 안 만나고 내부의 대면보고도 적으니 대통령은 세상 이야기에 떨어져 있기 쉽다. 야당과 언론은 대통령의 귀를 세상 쪽으로 잡아당겨야 한다.



 낙하산도 문제다. 개혁을 내세우면서도 이 정권은 낙하산 잡음이 여느 정권 못지않다. 새누리당을 비롯한 하부 권력이 감투와 이권을 어떻게 주무르는지 대통령은 모를 수가 있다. 아니 대통령 자신부터 이상한 인사를 하지 않는가. 78세 전직 재미동포 코미디언이 왜 공기업 감사를 맡아야 하는가.



 대통령의 3대 문제점은 A라는 영역이다. 비판자들이 A로 몰아붙였다면 대통령은 피할 곳이 없었다. 그런데 공격자들은 정윤회와 3인이라는 B의 가설을 만들었다. B는 결국 작살이 아니라 찌라시 바늘로 드러나고 있다. 그들은 실패했고 고래는 여전히 대양을 헤엄치고 있다. 웃으면서···.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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