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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장그래에게 기회를 !

중앙일보 2014.12.23 00:03 종합 36면 지면보기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드라마 ‘미생’이 끝났다. 많은 시청자가 고졸 계약직 장그래의 도전을 응원하고, 그가 부딪히는 벽에 분노했다. 특기가 노력이라고 대답할 정도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누구든 응원받을 자격이 있다. 그리고 노력뿐 아니라 결과로써 능력을 증명했는데도 기회를 박탈하는 시스템은 분노의 대상이 되어 마땅하다. 현실도 그리 다르지 않다. 대기업 임원, 중간 간부들을 상대로 미생 캐릭터 중 부하 직원으로 선호하는 사람을 묻는 기사를 봤다. 대다수가 파마머리 김 대리를 꼽았다. 무난하고 원만하기 때문이다. 장그래같이 판을 흔드는 아이디어를 불쑥 내곤 하는 부하는 부담스럽단다. 그 이전에 대기업 사무직으로 아무 스펙 없는 고졸을 뽑을 가능성 자체가 없다니 뭐.



 물론 장그래는 평범하지 않다. 스펙만 없지 직관이 뛰어나고 운도 따른다. 노력과 열망 자체도 쉽지 않은 재능이다. 현실에는 그중 아무것도 갖지 못한 미생들이 더 많고, 사회는 이들에게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장그래 같은 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건 의미가 있다. 이 사회에 공정한 기회가 있다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노력하고 결과에 승복한다.



 장그래를 막는 학벌의 벽은 왜 존재할까. 먼저 인재를 평가하는 안전한 방식이어서다. 개개인의 다양한 능력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입시 경쟁의 승자라는 징표가 우수한 두뇌, 성실성, 인내심을 증명한다고 보고 거기에 만족하는 것이다. 대체로는 맞을 수 있다. 그런데 최고 스펙 집단의 일원으로 살아온 자로서 고백하건대, 스펙은 ‘탁월함’까지 증명하지 못한다. 수많은 법조인이 일하는 걸 봤고, 파산부에서 대기업 임직원들을 관리 했고, 조정위원들을 직접 선발했다. 내가 본 최고의 감동적인 판사, 가장 수완 좋고 유능한 파산관재인과 임원, 최고의 분쟁 해결능력을 보인 조정위원은 모두 소위 스카이(SKY, 서울·고려·연세대) 출신이 아니었다. 실제 사회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능력은 다양했고, 그 능력의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기업은 더할 것이다. 그런데 이미 자리를 차지한 이들이 벽을 강화한다. 동질적인 존재가 편하고 선후배의 위계질서에 편입시키기 좋다. 이윤 극대화라는 기업 목표의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대리인 비용이다. 학벌 타령은 이 글로벌 경쟁시대에 우리 기업이 아직 배가 덜 고프다는 증거다. 소위 ‘오너 경영자’들은 뭐하는 걸까. 이런 벽을 과감히 깨고 패러다임을 바꾸기는커녕 회사에 손해 끼치는 일만 벌이고 있다면 왜 그들이 필요한 걸까.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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